“자비스, 아침에 먹던 블루베리와 아이스티 한 잔 부탁해.” “네, 주인님(Sir)!”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토니스타크의 충직한 비서인 공업용·생활보조로봇 자비스는 그야말로 만능이다. 로봇팔 형태의 간단한 모습만 노출되는 자비스는 토니스타크의 손짓과 몸짓 음성에 따라 움직여 첨단수트를 설계하고 제작하며 각종 집안일을 거든다. 몸 상태를 포함한 생체정보를 파악해 음식을 대령하거나 감정상태를 인지해 우울한 주인공에 말을 거는 친구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영화 속 미국정부는 실상 하늘을 날아다니며 적을 때려 부수는 용도의 아이언맨 수트에 탐을 내기보다 그것을 컨트롤하는 첨단기술의 결정체인 자비스에 더욱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
‘로봇’이라는 두 글자에 연상되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영화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한 슈퍼히어로 일수도 있고 산업현장에 24시간 돌아가는 집채만한 설비로봇이 될 수도 있다. 공통점은 일반적인 우리네 삶과 조금은 동떨어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속에 로봇은 이미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손이 닿지 않는 침대 밑 구석구석까지 쓸고 닦는 로봇청소기는 매일 같은 시간 집안 곳곳을 누비고, 앞마당 정원이나 공원에는 들쭉날쭉 자라난 잔디를 정리해주는 로봇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세대용 주택이 많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수영장 딸린 대저택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수영장 청소 로봇이 대중화 되어 있다. 30만원 내외에서 시작하는 저가형부터 공식 경기가 열리는 수영장을 청소하는 7000만원대 고가 형까지 다양한 모델이 판매되고 있다.
사무실에는 원격주재 이동로봇도 많이 사용된다. 이동용 바퀴가 달린 몸체에 모니터와 카메라를 부착한 간단한 구조로 제작된 이 로봇은 원격조종을 통해 움직여서 회의에 참석하거나 산업현장을 살펴보는 용도 등으로 사용된다.
골프장에는 캐디 로봇도 등장했다. 트렁크에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캐디로봇은 골프가방을 싣고 주인의 동선을 졸졸 따라다니도록 설계됐다. 집안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의 배변을 자동으로 청소하고 먹이를 자동공급해 주는 로봇도 등장했다. 로봇자체를 애완용으로 만들어 가족들을 구별하고 간단한 감정을 동작으로 표현하는 애완용 로봇도 인기가 좋다. 애완용 로봇의 경우 주인의 간단한 구두 명령을 알아듣고 반응하며 사진 촬영기능을 내장하고 있어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침입자를 촬영하는 감시역할도 한다.
글로벌 IT기업들 로봇기술 선점전쟁 中
점차 인간의 생활의 여러 부분을 관여하기 시작한 로봇은 전통적으로 산업현장에서 공작기계 형태로 발전해 왔다. 사람이나 가축이 하던 반복적인 단순노동을 대체하거나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불량품을 판별해 내는 등 생산성향상 등의 역할을 하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1차 로봇혁명이라고도 한다.
그러다 정보화 사회를 거쳐 지식기반사회로의 발전에 따라 전통적 로봇개념을 넘어서 지능형 로봇으로 변화 발전하며 차세대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능형 로봇은 말 그대로 외부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지능을 갖추고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방식의 기계장치 정도로 정의될 수 있다. 로봇청소기처럼 공간을 스스로 파악해 얼마나 효율적인 경로로 청소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판단하는 형태가 지능형 로봇의 초기단계다. 인식, 운동, 지능을 갖추도록 하는 휴머노이드(humanoid)로봇개발이 가장 궁극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최근 오랜 기간 지능형 로봇산업에 눈독을 들여온 글로벌 IT기업들은 최근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쇼핑몰 아마존은 무인 항공로봇을 통한 배송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 에어’를 오는 2015년부터 도입한다고 발표해 DHL이나 UPS 등 글로벌 택배서비스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에 앞서 아마존은 2012년 물류유통전문 로봇업체인 키바로보틱스를 인수해 쇼핑몰 사업과 함께 로봇시스템 판매를 차세대 먹거리로 삼고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애플도 지난해 상반기에 WiFiSLAM(실내위치인식)사, 하반기에 Prime Sense(동작인식)사를 인수하며 로봇사업 분야에 점차 다가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0년 이후 지능형 로봇용 애플리케이션 개발도구인 ‘마이크로소프트 로보틱스 디벨로퍼 스튜디오(MS RDS)’를 선보이며 로봇산업 진출채비를 마쳤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계열사인 아스라텍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운영체제 ‘V-Sido’ 등의 개발과 판매를 추진하던 소프트뱅크는 손정의 사장의 미래 비전에 따라 2018년까지 컴퓨터 CPU 트랜지스터 수가 인간 뇌 세포 수(300억 개)를 넘어서는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가장 돋보이는 곳은 역시 구글이다. 구글은 자율주행자동차(로봇카)인 ‘구글카’개발에 나서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통틀어 가장 앞선 로봇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반기에만 총 8개의 로봇 전문기업을 잇따라 인수했다. 평범한 기업들이 아니다. 보행로봇 관련분야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빅독(Big Dog)으로 불리우는 보스톤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와 지난해 DARPA Robotics Challenge(DRC)에서 우승한 일본의 샤프트(Shaft)가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 고성능 바퀴를 만드는 홀롬니, 특수효과 제작에 사용되는 자동카메라 시스템 개발사인 봇앤돌리 등 모두 관련업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다.
인수된 회사의 특징을 조합해보면 두뇌(AI), 눈(카메라), 팔, 다리(바퀴) 등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비슷해 일각에서는 구글이 휴머노이드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로봇 관련 총 책임자로 안드로이드 OS를 만든 앤디 루빈(Andy Rubin)을 선임하고 에디슨 이후 최고의 발명가라 평가받는 레이먼드 커즈와일을 임원으로 영입했다는 점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이 가능한 획기적인 로봇개발에 나섰다는 예측도 있지만 구글이 인수배경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이전부터 ‘지표면과 우주공간을 연결하는 궤도 엘리베이터’ 라든지 ‘보관된 식품을 모니터링해서 부족한 물품은 자동으로 주문하는 냉장고’ 등 기상천외한 연구를 실체나 예산이 극비에 부쳐진 ‘구글X’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온 탓에 구글이 탄생시킬 로봇의 모습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 구글은 로봇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반면 올해 1월 모토로라 홈 사업부문을 레노버에 넘겼다. 2011년 당시 인수금액이 125억달러인데 비해 판매가액은 23억5000만달러에 불과하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3년도 안되는 사이 10조원 넘게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예상외로 구글의 결정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먼저 구글은 스마트폰 생산에서는 물러섰지만 레노버와의 매각 협상 조건은 모토롤라 특허권을 대부분 구글도 소유하는 계약인지라 애플, MS등과의 특허 분쟁은 방지하고 그동안 껄끄러웠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생산업체들과의 관계도 정상화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더 큰 이유는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들어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을 이끌어 온 애플과 삼성전자의 성장정체가 눈에 띄고 화웨이 등 중국 제조사가 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래리 페이지 구글CEO 역시 이번 결정에 대해 “스마트폰 시장은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웨어러블 디바이스 및 홈 마켓 분야 새로운 제품을 구축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가 전 세계 스피드전 전쟁을 발발시킨 것처럼 구글을 비롯해 어떤 기업의 로봇이나 관련시스템이 다시금 전시상황을 재현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