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10년 2월 리콜사태 때, 미국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문자 그대로 수모를 당했던 모습이다. 의도적인 편집인지 몰라도 부자연스러운 영어로 그가 인사발언을 하는 모습과 의원들의 질책성 질문에 바로 답을 못하고 우물거리는 모습만 계속 뉴스 화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이어서 그가 세 시간 여의 고문과 가까운 청문회를 마치고 도요타 공장으로 와서 직원들을 만나 눈물을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말주변과 사교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일본샌님 같은 인상이었다.
대학으로 간 도요타 CEO
작년부터 도요타의 실적이 회복되면서 언론에 나오는 경우가 좀 는 것 같았으나, 대외활동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일본의 한 유명 논픽션 작가는 그를 ‘매스컴 혐오자’라고까지 표현했다. 실제 그는 단독 기자회견을 한 적이 거의 없으며, 심지어는 리콜사태 때도 기자들과 거리를 유지하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 미국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오고, 직장생활까지 한 인물로는 상당히 의외의 모습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직접 레이서로 참가한다든지, 500대 한정인 1억엔짜리 스포츠카를 3분의 1 가격에 팔아버리고, 심지어 회장이 되기 전에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쪽이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떠드는 유형은 결코 아니었다. 갑자기 그가 메이지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에게 공개강연을 한다는 소식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니 그가 자발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고, 일본 자동차업계 전체가 준비한 것이었다. 요즘 한국에도 그런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일본은 젊은이들이 자동차에 관심 자체를 가지지 않는 것이 업계의 오래된 고민이다.
이는 경제적 형편도 힘들고, 대중교통이 발달하여 굳이 차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이브가 아닌 다른 취미 활동거리도 많아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결과적으로 예전처럼 성인으로서 자신을 과시하는 제품으로의 자동차는 감성적 효능이 매우 떨어진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자동차를 사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자동차에 대한 관심 자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車離(구루마바나레)’라는 이 현상을 지칭하는 신조 용어까지 나와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래서 도요타를 비롯한 8개 일본 자동차 기업의 대표들이 각기 대학교를 찾아가서 학생들과 직접 만나 강연도 하고 얘기도 나누는 소위 ‘토크 콘서트’ 비슷한 것을 했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지난 9월 말에 1번 타자로 나섰던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여 그 반응이 어떨지는 미지수다.
젊은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라
한국은 아직까지 자동차와 젊은이들이 멀어지는 현상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향한 자동차 기업들의 구애 활동은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2011년 현대차에서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벨로스터를 출시하는 이벤트를 열어 대형 클럽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공간에서 진행했다. 이후 젊은이들이 즐기는 ‘클럽’이 자동차 마케팅의 키워드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새로운 모델 출시이벤트를 아예 실제 클럽에서 진행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젊은 고객들에게는 직접 찾아가야 한다. 구직을 위한 때를 제외하고는 젊은이들이 기업을 먼저 찾고, 호의를 가지려는 경우는 없다. 그들에게 직접 얘기를 건네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토크 콘서트’는 기업 이외에도 한국에서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치인으로서 안철수의 출발점도 바로 그런 형식이었다. 기업으로는 삼성그룹이 ‘열정樂서’라는 제목으로 유명인과 삼성그룹 내의 최고경영자를 묶어서 강연을 하는 방식으로 전국의 주요 대학을 찾아다니는 행사를 2011년부터 3년째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포맷으로 몇 년째 하다 보니 신선함이 떨어지고, 우월적 지위에서 일방적인 강연에 치우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쉽게 싫증을 내는 게 젊은이들의 특징이기도 한만큼 이들이 움직이는 곳을 계속 체크하여 빠르게 찾아가고, 프로그램의 형식도 계속 바꾸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활동은 길게 보고 해야 한다. 바로 수확을 하려고 직접적인 구매를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지나치게 기업을 노출했다가는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키기 쉽다. 나무를 심는 듯이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한다.
노인을 위한 마케팅은 있다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라고 한다. 14%를 넘기면 고령사회, 20%를 초과할 경우에는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들어섰고, 2018년에 고령사회,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것이 예측된단다. 세계 유례가 없이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란 예전 정부에서 자랑스럽게 쓰던 구호처럼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도 현재 통계청의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세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 구매력이 있는 고령 소비자가 늘었다. 둘째, 이들은 윗세대를 대비하여 자신의 지갑을 열 태세가 되어 있고, 자신만의 소비 패턴이 있는 상대적으로 소비지향적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비적으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노후 생활에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최근 노년연금을 둘러싼 사태는 이런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고령층의 소비자, 소위 실버 타킷을 향한 마케팅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는 것은 커지는 소비자층과 구매력을 감안할 때 당연하다. 그리고 이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금융업종에서 활발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금융기업들의 활발한 노년마케팅
작년부터 ‘서울국제시니어엑스포’라는 행사가 열리는데 금융권 기업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삼성생명의 ‘은퇴연구소’ 등 노년층 연구를 위해 기관을 설립한 금융기업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더불어 노년층에 맞게 특화된 금융상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신용카드 부문을 예로 들어보자.
하나SK의 ‘행복디자인카드’는 고령층에 대학병원, 일반병원, 한방병원, 치과, 한의원, 건강진단센터, 약국 등에서 전월에 사용한 금액에 따라 최대 10%까지 할인되는 혜택을 제공한다. 그리고 장기우량 고객에게는 종합건강검진권을 무료로 제공한다.
NH농협의 ‘행복건강 체크카드’도 의료업종 할인을 특화된 혜택으로 내세우고 있다. KB국민카드의 ‘골든라이프카드’는 병원에서의 혜택에 더하여 건강 관련하여 궁금한 점을 상담해주며, ‘365일 24시간 종합건강관리서비스’와 함께 같은 금융그룹 내의 관계사와 연계된 ‘무료 보험 가입 서비스’도 제공한다.
올해 초 LG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시니어 마케팅의 출발점, 드러내고 싶지 않은 보편적 고민>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노년층 소비자의 구매 관련한 특성으로 신뢰를 중요시하고, 새로운 시도에 보수적이며, 비교구매를 한다는 세 가지를 들었다. 세 번째 비교구매는 시간이 많고 근래 정보 수집이 용이하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엮어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여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가 있고, 일단 신뢰관계를 형성하면 강한 충성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 소비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KB국민카드처럼 건강상담 등을 하면서 다른 관계사의 서비스를 소개하고 가입 유도를 하는 것이 이런 특징을 반영한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어느 자동차 기업에서 노년 운전자를 위한 모델을 내놓은 적이 있다. 차를 타고 내리기나 짐을 싣고 부리는 데 편리한 것은 물론이고 계기판도 단순화시키고 보기 쉽게 만드는 등 일본인다운 섬세한 신경을 많이 쓴 자동차였다. 하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차 때문에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심하게 자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노화를 직설적으로 알리는 제품으로 받아들여 목표고객인 노년층에서 구입을 꺼려한 게 원인이었다. 노년층을 타킷으로 글자와 버튼을 크게 하고 기능을 단순화한 와인폰이 생각보다 크게 히트하지 못한 것도 비슷한 연유로 본다.
노년 대상 제품의 광고에 노인 모델을 쓰지 않는 게 거의 불문율처럼 통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인이 모델로 등장한 광고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노년인구가 늘고 자연스럽게 노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숨어서 조용히 있는 노년이 아니라 활동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노년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어린이 마케팅은 교육효과가 있어야
‘생각나는 만화 캐릭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물으면 압도적으로 ‘뽀로로’라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 개발된 캐릭터 상품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캐릭터 완구시장에서는 인기와 관심에서 뽀로로를 압도하는 캐릭터가 나왔다. 그 주인공은 기아차와 애니메이션 업체인 레트로봇, 완구업체인 영실업이 내놓은 ‘또봇’이란 합체로봇이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처럼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방송에서 방영되고, 완구까지 나왔다. 소울을 비롯한 기아차의 자동차 모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또봇’의 성공은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관심을 끌고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가능했다. 또한 외국 자동차 모델들에 기초한 트랜스포머와 달리 기아차의 자동차 모델들이 쓰임으로써 어린이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거리에서 자신의 장난감 모델들을 실물로 보면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줄 수 있었다는 점도 효과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로봇 완구들이 거의 그렇지만 자신이 직접 손을 놀려 만드는 재미를 안겨준 것이다.
한국에 새로운 식품을 들여와서 팔 때, 낯선 느낌과 거부감의 장벽을 넘는 마법과도 같은 코드가 두 개 있다. 바로 ‘정력’과 ‘교육’이다. 남자들 정력에 좋다거나, 애들 집중력을 높여주거나 머리를 좋게 한다고 하면 성분에 관계없이 팔린다는 ‘반농담 반진담’의 얘기이다. 어린이 대상 제품에서는 교육 효과가 어떻게 표현되든 메시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또봇’도 애니메이션의 전통의 테마인 권선징악, 애니메이션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스토리에서 표현되는 순화된 정서가 가지는 교육적인 의미를 더한 것이다. 또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창조성과 손재주를 배우는 놀이·교육적인 측면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주효했다.
프로슈머-프리슈머-커스토너 다음은?
‘프로슈머(Prosumer)’란 단어가 나온 지는 꽤 되었다. 앨빈 토플러가 1980년에 발간된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썼다. 제품의 개발과 생산에 관여하는 소비자를 지칭하는데,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소비자들의 참여가 쉽고 다양해지면서 앨빈 토플러가 주창한 의미 이상으로 실현되고 있다.
요즘은 이 프로슈머에서 더 나아가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돈을 모으고 결국 실현시키는 것까지 함께 하는 ‘프리슈머(Presu mer)’와, 거기서도 한 걸음 더 진척된 단계로 소비하는 고객(Customer)과 일정 지분을 가진 소유자(Owner)의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는 ‘커스토너(Custowner)’란 말까지 등장했다. 이들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은 ‘참여’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수반되는 것이다. 기업에서 후원해서 가능하게 된 일이고 제품이라고 하여도 소비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형식을 띠고 그렇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
클럽과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젊은층 겨냥 마케팅, 할인과 같은 물리적 혜택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 제공을 통하여 노년층에게서 더 큰 기회를 모색한다거나, 교육과 재미의 두 가지를 함께 도모 하는 어린이 대상 활동의 기저가 바로 ‘참여’와 ‘자발성’이다. 이는 목표고객층의 나이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부분도 있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함께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