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의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흡사 가리비를 연상케 하는 도시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마지막 목적지로 삼을 만큼 유서 깊은 장소인데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종교적 이념이 빼곡히 각인된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해체주의 건축의 거장인 피터 아이젠만의 작품이 있어 유명하다. 순례의 경로로 형성된 이 도시의 도로는 격자형으로 만들어졌다. 거기서 건물은 형상이 되고 도로와 공지는 배경이 되는, ‘형상과 배경’(Figure·Ground)의 형태를 갖춘 데카르트적 모델의 도시이다. 그런 줄무늬 형상은 이 도시의 상징인 가리비 모습과 흡사해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도시의 모습을 인식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이 도시가 이런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 것은 1999년에 시작됐다. 당시 갈리시아 자치주 정부는 이 중세 도시에 박물관과 기록보관소, 도서관, 전시·공연과 학술연구 등의 기능을 가지는 광범위한 프로그램의 갈리시아 문화시설을 기획하면서 디자인을 국제 공모했다. 여기서 창의적이고도 지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한 피터 아이젠만이 전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건축가로 선정되었다.
피터 아이젠만은 ‘형상과 배경’으로 이루어진 기존 도시 구조를 해체하여 개별 건물들을 지표면에 새겨 넣음으로써 건물과 지형의 통합을 시도해 배경이 형상으로 바뀐 ‘형상과 형상’(Figure·Figure)의 도시구조 모델을 창조하였다. 그는 부지의 지형적 요소를 변수로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도시 구조 모델의 그리드와 기존 도시의 그리드를 교차시킴으로써 건물과 도로의 3차원적 변형을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도시의 전체 건물 형태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냈다. 그는 종교적 기능을 가진 기존 도시의 중심부를 차용해 건물 중심부를 디자인하고 세속적으로 이 건물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기존 도시와의 유전적 유사성과 차별성을 모두 내포시켰다. 그 결과 건물은 부지의 원래 지형인 경사진 언덕이 지질 작용을 통해 분열된 듯한 형상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 도시의 상징인 가리비와 유사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지금까지 어떤 건축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이다.
안타까운 미완의 프로젝트
피터 아이젠만이 심혈을 기울여 마무리한 기존 계획안은 갈리시아 박물관과 국제아트센터, 음악·공연예술센터와 중앙행정빌딩, 갈리시아 도서관과 기록보관소 등 총 6개 건물이 3개의 짝으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찾아온 유럽과 스페인의 경제위기는 이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쳐 2012년 국제아트센터와 음악·공연예술센터의 건립이 취소됐다. 2013년 3월 살아남은 4개의 건물이 모두 완성됨으로써, 이 프로젝트는 그가 상상했던대로 실현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그 중 갈리시아 박물관은 4개의 건물 중 가장 높은 건물로 갈리시아의 역사와 유산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특별한 전시공간으로 계획되었다.
43m 높이의 장쾌한 입면과 1만6000㎡에 이르는 넓은 면적을 가진 박물관은 지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새로운 전시 개념을 담고 있다. 전시공간은 3개 구역으로 분할됐고 6600㎡의 특별 전시공간을 갖춰 지역의 다른 박물관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각종 대규모 기획 전시가 가능하다. 다양한 교육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개방성이 가미된 기능적 건물이면서도 관람객이 층간을 이동하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내부 공간의 역동적 변화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매우 극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국제아트센터와 음악·공연예술센터의 빈 자리로 인해 박물관과 드넓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갈리시아 도서관은 이 지역 도서관 시스템의 핵심. 갈리시아의 문헌적 유산을 충실하게 보존함과 동시에 지역 사람들이 도서관 기능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설계되었다. 도서의 열람과 보관을 위한 공간이 6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방형 서가인 열람실과 전시 기능을 가진 중정과 강의실, 강의용 홀 등이 주요 층에 포진하고 있다.
또 열람실을 중심으로 그 아래층에는 연구·보존 기능을 담당하는 전문 영역과 현대적 멀티미디어 센터가 배치되었으며 위층엔 가상도서관(Virtual Library)의 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열람실을 중심으로 아래위 3개 층에서 유리로 둘러싸인 희귀본 보관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도서관은 그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혼합된 복합적인 성격의 공간이기도 하다. 원래부터 도서관과 짝을 이루도록 디자인된 기록보관소의 형태는 도서관과 유기적 연결을 가진 듯 보인다. 시민들을 위해 문서, 비디오, 사진과 오디오 등 모든 매체의 개인 및 공공 기록들을 보관하고 제공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기록보관소는 기본적인 보관과 열람의 기능을 지원하기 위하여 첨단의 강력한 무선 네트워크 환경과 디지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 시설 면에선 연구 활동을 지원함은 물론 다양한 시청각 이벤트와 워크숍을 개최할 수 있는 120명 수용 규모의 오디토리움도 갖추고 있다.
모든 건물들은 논리적으로 체계화된 디자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오랜 기간 끊임없이 연구와 작품 활동을 해온 피터 아이젠만의 철학, 예술, 공학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모두 녹아 있는 놀라운 결과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로젝트가 미완의 상태에서 끝나버려 그가 남기고자 했던 작품의 파편이며 상흔이기도 하다.
갈리시아 도서관 내부 Angaros
웩스너시각예술센터 외관 OZinOH
피터 아이젠만의 다양한 작품들웩스너 시각예술 센터
실험적인 주거건축을 중심으로 활동 하던 피터 아이젠만이 처음으로 수행한 대형, 공공 건축 프로젝트로서 센터 북쪽과 서쪽 정원의 조경을 담당한 환경건축가 로리에 올린과 건축가 리차드 트롯이 공동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웩스너 시각예술센터는 캠퍼스 건물과 인접한 두 개의 기존 건물 사이 공간에 있으면서 전체적으로는 동쪽과 서쪽으로 연결되는 도시 축의 3차원 그리드 프레임을 중심으로 양측에 기능 다이어그램에 의한 실들을 가지고 있다. 도시와 센터가 연결되는 통로이며 대학 캠퍼스로 갈 수 있는 루트인 이 프레임은 부지의 중앙을 관통하면서 이미 부지에 지어져 있던 다른 건물들과 새로운 시설들을 연결해 주는 링크 기능도 갖고 있다.
이는 콜롬버스 시의 거리가 가진 격자와 캠퍼스가 가진 격자 구조를 중첩시킴으로써 대학 캠퍼스와 도시 환경을 물리적으로 연결함과 동시에 예술과 사회라는 두 매개체를 상징적으로 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아이젠만은 캠퍼스 현장에 과거와 현재를 완벽하게 연결하는 강력한 시각적 랜드마크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공모전에서 그의 건축물 디자인은 모든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선택됐다.
아로노프 예술대학 센터
이 센터는 신시내티 대학의 건축, 디자인, 설계와 예술 단과대를 통합 운영하기 위해 세워졌다. 전체 외형은 복잡한 구조의 결합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듯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고 이런 구조에서 완결성을 도출하기 위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디자인되었다. 평면과 입면의 구성에서 보이는 기하학적 조합은 건물의 외형과 공간이 복잡하게 전개되도록 하는 매개체이다.
이렇게 형성된 풍부한 내·외부 공간과 구조적 형태는 피터 아이젠만의 건축이 갖고 있는 대표적 이미지로서 그만의 해체주의적 건축 이론을 표방하고 있다.
지극히 복잡하고 딱딱한 기하학적 이론에 따라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심미적, 기능적 요소가 훼손되지 않도록 설계된 이 건물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강한 빛으로 강렬한 시각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중앙 아트리움을 두고 있다.
또 도서관과 극장, 전시장, 스튜디오, 사무실 등이 배치된 신관과 기존 구관이 기능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되었다.
1990년대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이 건물은 포스트모던적인 요소와 함께 그의 해체주의 건축이론이 혼합되어 있어 디자인의 다양성과 기능성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다.
(위)아로노프 예술대학 센터 외관 mark.hogan, (아래)아헨버스정류소 william veerbeek
아헨 버스 정류장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혁신적 이론과 스타일을 추구하며 가구와 아주 작은 장신구까지 디자인했던 피터 아이젠만에게 버스 정류장은 스트리트 퍼니처로 분류될 수도 있는, 아주 단순한 구조물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디자인 개념과 전혀 다른 접근 방법으로 이 역시 자신만의 창조력과 위트가 돋보이는 건축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아헨 중심에 있는 JC데코 버스 정류장은 금색과 짙은 회색의 금속판을 접어 만든, 간단하면서도 복잡하게 보이는 독특한 구조물이다.
모두 다른 형태의 크고 작은 다각형 면으로 구성되었으며 정류장 기능으로 사용되는 부분과 광고 등을 위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기능성과 편안함을 동시에 이끌어낸 디자인이지만 여러 개의 다리를 통해 지탱되는 모습이 마치 도로 위의 커다란 곤충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터 아이젠만은
1932년 미국 뉴저지에서 출생했다. 코넬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우하우스 운동을 주도했던 월터 그로피우스의 건축가협동체(TAC)에서 1957년부터 활동했다. 이후 모더니즘이 득세하던 1960년대를 거쳐 본격적인 건축가로서 성장한 그는 1970년대 초 마이클 그레이브스, 찰스 과쓰메이, 리차드 마이어, 존 헤이덕 등과 함께 뉴욕의 젊은 건축가 그룹인 뉴욕 파이브에 참여했다. 뉴욕에서 개설한 건축도시연구소(IAUS)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건축적인 논쟁들을 다룬 <Oppositions>을 발행했고 House Ⅰ, Ⅱ, Ⅲ, Ⅳ, Ⅹ 등 실험적 주택과 건축이론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이론적 건축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이전에 지속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를 통해 세간의 관심을 받는 동시에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50여 년에 이르는 긴 실무기간과 세상에 알려진 그의 명성에 비해서 작품 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가 실무 건축가인 동시에 학자와 이론가로서의 연구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케임브리지, 펜실베이니아, 프린스턴, 하버드, 오하이오 주립대 등에서 강의했고 지금도 예일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1985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Castles로 Stone Lion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구겐하임 펠로우쉽과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여러 번 미국건축가협회(AIA)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웩스너 시각예술센터(1989), 고이즈미 조명회사 사옥(1989), 콜럼버스 컨벤션 센터(1993), 아로노프 예술대학 센터(1996)와 아헨 버스 정류장(1996) 및 베를린 국제 건축전을 통해 건설된 집합주택과 막스 라인하르트 하우스 등이 있다.
20세기 이후 건축의 해체주의 경향
건축사를 통해 이어져 기존 양식을 따르는 건축물들은 형상이 복잡하고 양식이 다양하더라도 익숙한 인식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할 수 있는 형태와 디자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성향의 건축물들은 각종 양식들이 차용되었음에도 형태를 직관적으로 인지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분석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그 디자인 개념도 전통적 건축 양식의 체계 안에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른바 건축에 있어서 해체주의 경향이 등장한 것이다. 건축의 해체주의 경향은 1988년 봄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해체주의 이론 창시자인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와 건축가인 피터 아이젠만, 베르나르 츄미, 프랑크 게리 그리고 자하 하디드 등이 함께 참여한 심포지엄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 심포지엄에서 해체에 대한 철학적 토론과 건축 및 예술분야 전반에 걸친 해체주의 경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후 같은 해 여름 건축가 필립 존슨과 마크 위글리가 공동으로 기획해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개최한 ‘구성적 해체주의 건축전’에 피터 아이젠만과 베르나르 츄미, 프랑크 게리, 자하 하디드, 쿠프 힘멜브라우, 램 쿨하스,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건축가 7인의 10가지 작품을 모델과 계획안으로 전시하면서 그것은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건축에서의 해체주의 경향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새로운 건축 양식으로 볼 수는 없다. 필립 존슨이 MOMA 전시회 카탈로그 서문에서 밝혔듯이 해체주의 건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해체주의적 현상과 그에 대한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에서의 해체주의 경향을 편의상 해체주의적 건축이라 표현하며 이런 건축은 지금까지 존재해 온 양식에서 형태와 이념간의 결합을 해체할 뿐 각각의 양식 그 자체를 해체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해체된 각각의 형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념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 새로운 디자인에 다시 인용되며, 이 때 해체에 전제된 재구성의 개념을 디자인 과정에서 사용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해체주의적 건축은 재인용을 위해 해체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이념과 관습이 제거된 기존의 형태를 이후 디자인 과정에서 건축가의 이론화된 규범을 통해 다시 사용한다.
결국 해체주의적 건축은 해체를 통해 재구성되는 디자인의 과정을 즐기면서 그것을 이론화하는 작업이라도 할 수 있다. 피터 아이젠만은 해체주의적 건축을 추구하는 여러 건축가 중에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디자인 과정을 체계화하는데 가장 치밀한 건축가이다.
해체주의적 건축의 특성상 그의 건축도 디자인 결과로서 완료된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 건축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통해 설명된다. 그 과정을 뒷받침하는 그의 학문적 이론이나 일련의 절차와 방법이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진행한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인 ‘갈리시아 문화의 도시’를 디자인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건축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예술 분야에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은 해체주의적 경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