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비는 자그마한 수제 초콜릿 회사다. 2010년에 설립됐으니 업력도 짧다. 그런데 올해 100억원대 매출을 노리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중소기업이 대박을 친 비결은 무엇일까. 서희 초코비 사장은 경쟁사들이 국내 시장을 겨냥할 때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해 특수를 만났다고 소개했다.
“초콜릿 사업을 시작하면서 제주도에 자주 가서 봤는데 제주도 초콜릿은 한물 간 것 같았어요. 맛없는 초콜릿을 너무 많이 팔았죠. 제주도엔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객이 80%를 차지하고 있어요. 특히 중국 관광객들은 양떼기로 가져갑니다. 4~5평 가게에서 하루 수천만 원씩 팔 정도죠.”
기존의 제주 감귤 초콜릿으로는 중국인의 구미를 계속 끌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새로운 감귤 초콜릿을 개발했다. 말린 감귤에 달콤한 초콜릿을 입힌 것이다. 새 상품은 감귤의 신선함과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두 살렸다. 덕분에 많이 먹어도 계속 당긴다. 게다가 상품의 부피도 커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해외여행 나온 중국인들이 줄을 서서 그 초콜릿을 사기 시작했다.
그 바람을 타고 대형 판매업체와 5년 계약을 했고 CJ의 OEM업체로 선정돼 매출이 급증했다. 설립 초기 제로였던 매출은 이듬해 5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3배나 되는 15억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계약분만 70억~80억원이나 되기 때문에 신규 판매까지 더하면 100억원 매출은 무난할 것이란 게 서 사장의 설명이다.
처음 직원 2명으로 시작한 초코비는 현재 33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시즌이 한창일 때는 임시직까지 100여명이 작업을 하고 있으며 연말엔 정직원만 55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초코비는 본사 소재지인 성남 시콕스타워의 1·4층 공장 외에 광주 태전동에 새 공장을 마련해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있다. 최근 중진공서 벤처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있는 것이다.
경리사원 출신 사장
지금은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이지만 그는 경리사원 출신이다. 금융결제원에 다니다 아이 때문에 그만둔 뒤 매일항운에 들어갔다가 외환위기 때 회사가 어려워져 퇴사했다. 그 뒤 13년에 걸쳐 두산타워와 신촌세브란스병원 등의 분식집을 운영했다.
“IMF 때 식당을 했는데 외환위기가 무엇인지 몰랐을 정도로 잘됐어요. 어려서부터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틈새시장에 블루오션이 있을 것으로 보고 시작한 게 적중했죠.”
그는 당시 김밥집은 대한민국 최고였다고 소개했다. “IMF 때 김밥 한 줄에 3000원을 받았어요. 어느 아주머니가 김밥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묻더니 맛보고 나선 3000원 줄 만하다고 그러더군요. 식품은 청결하고 맛있으면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명품이 별거인가요. 많이 팔리면 명품이지.”
말이 분식집이지 정직원과 아르바이트를 합해 20명 이상을 둔 대형 식당이었다. 서 사장은 차원이 다른 식당을 운영하며 일찌감치 사업 감각을 익혔다. 게다가 실패의 경험도 쌓았다.
“저는 직장 다니면서 항상 2~3개 잡을 가지고 있었어요. 화장품 대리점이며 슈퍼 등을 크게 했죠. 가난 때문에 대학을 늦게 다녔어요.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죠. 결혼하고 돈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편 혼자 버는 것으로는 그 이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늦깎이로 대학엘 갔기에 그는 눈에 불을 켜고 공부에 매달렸다.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억척은 사업에서도 유지됐다. 직장 다니며 동생들을 동원해 통닭집을 차리는 등으로 돈을 벌었다. 모든 게 뜻대로 되는 듯 했다. 그런데 거기에 함정이 있었다.
자신감만 믿고 벌린 완구점에서 크게 깨진 것이다.
“문을 열고서야 잘못됐음을 알았어요. 경영은 업종만 다를 뿐 다 같다고 생각하고 엄청난 의욕을 갖고 벌였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주저하지 않고 개업 15일 만에 접었죠. 당시 돈으로 중형 아파트 한 채 값을 날렸습니다.”
오래 경리를 했기에 자금흐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밑바닥부터 배운 장사로 영업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다. 그런 경험이 자신감을 갖게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경영자로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됐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게 했다.
아무리 커도 장사고 아무리 작아도 사업
“경영을 잘못하면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 데려다 35~36세 정도 돼서 회사가 망해 아무데도 갈 수 없게 만들면 그게 범죄죠. 그러니 허투루 할 수가 있나요. 아무리 커도 장사지만 아무리 작아도 사업이죠. 그 마음으로 합니다.”
그는 사업을 하려면 한눈 팔지 않고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당하면서 보드용품 일체를 수입해 파는 사업을 벌였어요. 10여년 했지요. 초기엔 장사가 잘됐는데 달러가 갑자기 상승하면서 역마진이 생겼어요. 그래서 다른 사업을 물색하던 차에 초콜릿을 하게 됐죠. 수년간 연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업 잘하던 친구가 망하는 것도 목격했다. 망할 수 없는 사업인데 골프에 빠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초콜릿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도 골프를 접었다.
“저도 골프 좋아하죠. 3년 만에 싱글한 실력입니다. 그런데 사업하면서 한눈 팔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접었어요. 모든 신경을 사업에만 집중해도 부족하죠. 골프 중단한 지 3년 됐어요.”
서 사장은 지금은 온 정신을 초콜릿에 쏟고 있다고 밝혔다.
“TV를 보다가도 예쁜 사람이 나오면 그에게 초콜릿을 입힐 생각을 할 정도예요. 그만큼 집중하고 있지요. 그동안 많은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뻥튀기에 초콜릿 묻혀 내놨더니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뚜레쥬르에서 인기였죠.”
라이스 크런치나 브라우니도 내놨다. 홈플러스엔 홍삼 라이스 크런치 등을 입점했고 브라우니는 아시아나의 기내식으로 선정됐다. 아이디어 제품으로 올해는 군납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농정국에서 쌀 제품 품평회를 열었는데 롯데제과 제품이 동상, 우리 제품이 은상이었어요. 상금은 100만원이었으나 그보다 더 큰 부상을 받았죠.”
서 사장은 직접 개발을 한다고 밝혔다.
“회사에 우수한 초콜라띠에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장 보는 눈이 있지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 초콜라띠에가 거기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지금은 자색고구마 초콜릿을 구상하고 있지요.”
서 사장은 자기가 개발한 제품으로 일본까지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
“일본 초콜릿 산업은 우리보다 30년은 앞서 있어요. 한 조사에선 일본의 간식 1위가 브라우니라고 나왔죠. 우리나라엔 오리온의 마켓오라는 브라우니가 있는데 우리 브라우니가 훨씬 맛있어요. 수제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그것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브라우니 외에 몸에 좋은 홍삼 초콜릿도 그가 일본을 겨냥해 연구 중인 제품이다.
매출이 급상승하고 있지만 서 사장은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외형이 큰 회사보다 내용이 알찬 회사를 꿈꾼다. 연 매출 300억원에서 500억원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는 회사를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창업 희망자에 대한 조언
경리사원서 중소기업 오너가 된 서 사장은 제조업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단단히 각오를 하라고 주문한다.
“공장은 처음에는 무조건 마이너스입니다. 감가상각이 바로 시작되기 때문이죠. 대부분이 이것을 생각하지 못해 실패합니다. 나는 경리 업무를 오래했지만 그동안 장사만 했기에 필드에 와서 뛰다 보니 이런 게 피부에 와 닿습니다.”
아울러 영업력도 갖추라고 했다.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면 뭘 합니까. 영업을 못하면 사무장 월급 주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데요. 저는 영업과 경리 모두 자신이 있었지요.”
아울러 자금 흐름도 염두에 두라고 했다. 초코비의 경우 결제 잘해주는 대기업만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 흐름 걱정은 전혀 없다고 했다.
아울러 일단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뛰라고 했다. 그래야 남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 것. 이런 점에선 남성보다 여성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는 게 서 사장의 조언이다.
초코비의 경우 새터민을 고용해 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인건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초기 사업을 안정시키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다. 경기도에선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는데 이에 따른 지원도 있다. 아울러 중진공에서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아 역시 설비확충 자금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한편 서 사장은 경제 성장에 걸맞은 소득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여성도 함께 뛸 것을 주문했다. 다만 부부가 따로 일하는 게 낫다고 했다. 부부는 밤에 만나야지 일하는 곳에 함께 있으면 여러 사람이 불편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