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글로벌 공동기획] 세계의 건축·건축사마리오 보타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성곽같은 붉은 벽돌, 빛을 끌어당기다
입력 : 2013.03.07 16:01:22
수정 : 2013.03.26 14:37:54
금문교(Golden Gate Bridge)와 언덕을 오가는 전차로 유명한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 아름다운 경관과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SFMoMA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San Francisco)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는 1846~1847년 멕시코와 미국의 전쟁에서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텍사스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북쪽 산맥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들었고, 1860년 이후 서부 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LA와 함께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도시의 미술관답게 SFMoMA는 규모나 기획력, 개성 있는 컬렉션으로 유명하며 동부에 MoMA, 서부의 SFMoMA라고 이야기를 한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현대미술관으로 2만7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 서부 최초의 현대미술관
이 미술관은 미 서부에서는 최초로 20세기 미술의 소장과 전시를 목적으로 1935년에 시빅 센터의 참전군인 회관에서 문을 열었다. 뉴욕을 제외한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관으로, 미국 서해안 지역에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출발했다. 1985년 개관 50주년을 맞았을 때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측은 계속 늘어나는 수집품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1988년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에게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완전히 새로운 미술관을 지어 달라고 주문했다. 개관 60주년인 1995년, 조각 작품 같은 이 건축물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건축가는 각종 재료와 색으로 가득 찬 거대한 매스 덩어리인 현대 도시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래서 이 미술관은 마치 성곽처럼 대지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미술관 뒤쪽의 높이 솟은 고층 건물의 혼란함에 맞서고 있다. 미술관의 외관은 따뜻한 느낌의 붉은 벽돌로 마감된 거대한 상자를 쌓아 놓은 형태이며, 중앙 상부에 얼룩말 무늬의 비스듬한 원통형의 채광탑이 있어 파격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패턴화 된 외벽의 붉은 벽돌 및 채광탑에 적용된 검은색과 흰색 돌로 교차되는 띠로 이루어진 외관은 마리오 보타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채광탑의 상부에는 태양을 올려다 보는 듯한 거대한 해바라기 모양으로 디자인된 원형의 유리 채광창이 눈길을 끈다. 채광창은 미술관 안으로 자연광선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며, 채광창 구조물을 떠받치고 있는 가느다란 기둥이 서 있는 홀은 종교적인 느낌을 자아내도록 디자인됐다.
실내는 자연채광이 유입되는 중앙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한 열린 공간을 특징으로 한다. 중앙 아트리움은 원통형 채광탑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아트리움의 상부에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상적인 트러스 브리지가 설치돼 있다. 아트리움의 바닥과 저층부 기둥은 거친 캐나다산 화강석으로 마감돼 있다. 결과적으로 활력 넘치는 광장과 같은 공간이 되며 건축가는 이곳을 “미술관 내 중력의 중심”이라고 지칭했다.
미술관 벽에는 어떠한 창도 없지만 빛은 전체 건축물 구조를 타고 들어가는데 그것은 중앙의 채광탑을 통해서다. 일반적으로 창은 건축물의 외벽에 있어야 하지만, 마리오 보타는 건물 상부의 채광탑으로 빛을 들여오고 다시 이 빛을 실내로 확산시킨 것이다.
건물은 전체 5층으로 구성돼 있고, 관람객들은 중앙 아트리움 계단을 이용해 각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 미술관의 모든 소장품은 정기적으로 로테이션 되는데 1층에는 상점과 강당, 특별 행사 공간이 들어서 있으며, 2층은 회화와 조각 수집품이 전시돼 있고 건축 및 디자인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이 있다.
3층에 있는 보다 개별적인 전시실에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더욱 통풍이 잘되는 환경을 가진 4층과 5층은 특별전시물, 미디어 아트 및 소장품 중 큰 규모의 현대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2009년 옥상정원을 오픈했는데 개방공간과 유리 구조물은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과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전망을 제공한다.
SFMoMA는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증축을 계획하고 있으며, 갤러리의 면적은 2배로 확장될 예정이다.
마리오 보타, 기념비적 건축 이미지의 부활
마리오 보타 작품의 중심 테마는 기념비적 건축이미지의 부활이다. 그는 현대건축물에 이러한 특성들을 부여하려 노력해왔다.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에서도 보타는 이를 위해 간결하고 절제된 공간, 벽돌이나 석재로 구축된 거대한 구조물 등의 기념비적 건축요소를 적용했다. 건물에는 일반적인 형태의 창문이 설치돼 있지 않으며, 빛은 벽체의 틈이나 구멍을 통해 유입되도록 디자인됐다. 각 실들은 중앙부의 아트리움으로 연결돼 방문객들은 자신의 위치를 쉽게 인식하고 원하는 공간으로 찾아갈 수 있다. 보타는 주요 실에 자연 채광을 사용하고자 했는데, 계단식 단면형태와 천창을 사용함으로써 이를 실현했다. 이 건축물로 마리오 보타는 미국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현대미술의 각 분야를 포괄하는 소장품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다른 유명 미술관과는 다르게 미국이나 유럽의 명작 컬렉션에 집착하지 않고,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남미와 아시아권의 미술을 소개하는 기회를 자주 마련한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900년 이후 현대까지의 회화와 조각 작품 7000여 점은 야수파, 입체파, 팝 아트, 미니멀리즘을 포괄하고 있으며 특히 추상표현주의, 개념주의, 독일 표현주의, 캘리포니아 예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클리포드 스틸, 엘스워스 켈리, 프랭크 스텔라, 필립 거스턴,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으며, 마티스와 피카소, 몬드리안의 작품도 있다.
미술관은 출범부터 사진 작품에도 주목해 1830년대부터 유럽 아방가르드, 미국 모더니즘까지의 사진 작품 1만4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에드워드 웨스턴, 안셀 아담스 등의 작품이 있다. 건축, 가구 디자인, 상품 디자인 등도 전시하고 있는데 버나드 메이벡, 레베우스 우즈 등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비토 아콘치, 매튜 바니 등 1970년대 초반 이후 미디어 아트 작품들도 소장, 전시하고 있다. 매년 20회 이상의 기획전시회를 개최하고 300회 이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리오 보타
마리오 보타는 1943년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15살이 되던 해에 학교를 그만두고, 16세 때 그의 첫 번째 집을 지었다. 18살이 되던 해까지 후일 그의 건축 작업의 본거지가 되는 루가노의 건축사무소에서 제도사로 일하다가 건축 수업을 받기 위해 밀라노의 예술학교를 1961년부터 4년간 다니게 된다. 1965년부터는 베니스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 사무소에서 일하며 자신의 건축세계를 성숙시켜 나갔다.
1969년에 베니스에서 루이스 칸과 함께 베니스 의회건축물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베니스 UIA를 졸업했다.
이후 루가노로 가서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개설했으며 1990년대 초기까지는 주로 주택을 설계했다.
이후 파리 에브리 신도시의 성당이나 여러 도시의 업무용 빌딩 등을 설계하며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최근에는 동경이나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대규모 프로젝트 설계를 수행하고 있다.
그의 건축세계는 직선이나 곡선으로 구성된 인상적인 기하학적 형태, 홈이 파인 띠로 구성되는 파사드, 그리고 철저하고 완벽한 디테일의 3대 요소로 특징이 지어진다.
그는 그 지역의 자연에서 얻은 소재, 돌이나 흙과 같은 변치 않는 재료, 그리고 빛이 주는 극적 효과를 건축물에 구현해 왔으며, 건축물을 통해 지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견고한 중량감과 강렬한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해 왔다.
국내에는 2003년 강남 교보타워,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을 설계했다.
브리 성당(Cathedral in Evry)
프랑스 에브리(Evry) 신도시에 위치해 있다. 직경 38m, 높이 34m의 원통형 건물이다. 건물 외관은 마리오 보타 건축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벽돌로 마감돼 있다. 원통형 몸체의 상부에는 생명의 상징인 24그루의 나무가 왕관형태로 심어져 있어 우리의 관념에 있던 성당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내부는 원형의 평면 형태이며 천장에는 천창이 설치돼 상부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만들어졌다.
강남 교보타워
지상 25층, 지하 8층 규모로 1987년 시작해서 10년 동안 17번의 수정을 거쳐 1996년 설계를 완성했다. 이처럼 설계 작업이 늦어진 것은 건축에 관한 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 받는 교보그룹 창업주 신용호 전 회장의 관심 때문으로, 결국 마리오 보타는
끈질기게 수정안을 가져와서 최종 승인을 받아냈다.
건물 외벽이 붉은 벽돌 패널로 구성돼 주변의 유리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가벼움과는 다른 단단함과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건물이 완성된 후 건물에 창문도 없고 너무 고압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마리오 보타는 “서울은 회색 건축물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도 거의 고층건물입니다. 특히 교보타워 근처는 강남대로와 사평로라는 2개의 도로가 교차하고 있는 지점으로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힘 있는 건물이 필요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타일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낸 건물은 장중하고 육중한 느낌과 함께 섬세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삼성미술관 Leeum
삼성문화재단이 2004년 설립한 미술관으로 서울 한남동에 위치해 있다. 전체 2400평 대지에 뮤지엄1, 뮤지엄2 및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로 구성됐다.
3개의 건축물은 각기 다른 해외 유명 건축가에 의해 설계됐는데, 뮤지엄1은 마리오 보타, 뮤지엄2는 장 누벨,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렘 쿨하우스가 설계를 담당했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뮤지엄1은 미니멀하면서도 둔중한 입체로 구성됐다. “미술관 건축은 과거에 종교건축이 했던 역할, 즉 경건함과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의 건축 철학이 형상화된 작품이다.
건물 외관은 붉은 색상의 테라코타 벽돌로 구성돼 한국의 도자기를 상징하며, 견고한 형태는 성곽을 연상시킨다. 건물의 옥상부에는 나무들이 식재돼 요새의 깃발과 같은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