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커피믹스 시장에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1조2000억원대의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그동안 동서식품의 ‘맥심’과 한국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8대 2의 비율로 시장을 양분해왔다. 하지만 25년 넘게 이어진 시장 구도는 2011년 완전히 허물어졌다. 발단은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란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하면서부터다. 당시 남양은 “시장 규모가 연간 1조원인데 업체가 두세 곳밖에 없다. 10%만 가져가도 연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미 캔커피 시장의 강자였던 남양은 배우 김태희와 강동원을 앞세워 강공을 펼쳤다. 출시 1년이 지난 2011년 말, 남양은 한국네슬레를 제치고 동서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 업체로 떠올랐다. 이 같은 남양의 선전은 결과적으로 동서가 철옹성처럼 방어하고 있던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들을 끌어들였다. 라면 1위인 농심과 우유업계 선두인 서울우유가 지난해 말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업계에선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시장에 남양이 안착하며 동서의 도전자로 떠올랐다”고 이야기한다. 시장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커피사업에 올인하는 남양의 도전과 동서의 수성이 최근 2년간 커피믹스 시장의 화두”라며 “다윗과 골리앗이 연상될 만큼 두 업체의 마케팅 공방과 사업 확장이 서로를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Round 1.카제인나트륨 노이즈마케팅 공방
양사의 대립은 2010년 12월 남양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남양은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진짜 무지방 우유를 넣은 제품”이라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이는 물론 동서의 ‘맥심’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카제인은 우유나 탈지유의 단백질을 산처리해 얻어지는 첨가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허가한 유화제의 일종인 카제인나트륨은 카제인을 수산화나트륨 등으로 처리해 수용성으로 바꾼 합성첨가물이다. 카제인나트륨이 몸에 나쁘다는 조사결과는 없었지만 ‘진짜 우유를 넣은 커피믹스가 몸에 좋다’는 남양의 강공은 합성첨가물에 대한 소비자의 기피현상과 맞아떨어졌다. 결국 식약청이 나서서 카제인나트륨에 대한 안전성을 인정했고 동서식품은 “잘못된 광고로 소비자에게 불안감을 주는 노이즈마케팅”이라고 남양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남양의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는 출시 2개월 만에 이마트, 롯데마트 등 국내 4대 대형마트에 입점하며 2011년 6월 대형마트 판매 기준 11.3%의 점유율을 기록, 9.7%이던 한국네슬레를 제치고 국내 커피믹스 시장 2인자로 올라섰다.
Round 2.시장점유율 미미 vs UP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전혀 개의치 않는다던 동서의 견제가 시작된다. 이번엔 동서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2011년 말 시장점유율 자료를 배포한 동서는 “동서는 2011년 커피믹스 시장점유율 81.8%를 기록했다. 남양의 카제인나트륨 유해 논란 등 노이즈 마케팅에도 점유율은 2.9%의 미미한 하락에 그쳤다”고 밝혔다. 남양이 선전했지만 시장에는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표현을 에두른 것이다. 같은 날 남양은 반박자료를 통해 “동서는 최근 커피믹스 시장점유율이 70%대로 떨어진 것을 부정하려고 연말이 아닌 연평균 점유율 수치를 사용했다”고 발끈했다. 남양이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한 연초에는 시장점유율이 미미해 연평균 점유율을 사용하는 건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동서가 “남양의 노이즈마케팅과 스타마케팅이 맥심의 아성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오히려 커피믹스 시장의 성장 둔화를 이끌었다”고 카제인나트륨 논란을 비판하자 남양은 “커피믹스 시장의 성장 둔화는 제품가격 상승과 원두커피의 성장 때문”이라며 “겉으로는 노이즈마케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뒤로는 남양의 미투(Me Too) 상품을 준비 중”이라고 맞받아쳤다. 동서가 준비 중이던 ‘맥심 화이트골드(무지방 우유 첨가)’를 겨냥한 것이다.
해를 넘겨 지난해 초 동서가 화이트골드를 출시하자 카제인나트륨 공방은 2라운드로 접어든다. 이번엔 남양이 동서를 정조준했다. “화이트골드가 카제인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동서가 이를 의도적으로 숨겨왔다”고 주장한 것. 남양은 “동서의 맥심 화이트골드는 카제인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으나 용해성 등 문제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 1.4%의 카제인 첨가물을 계속 사용 중”이라며 “카제인 첨가물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이를 제품에 표기하지 않기 위해 복합원재료 중 상위 다섯 가지만 표기하는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양이 품목제조보고서를 근거로 내세우자 동서는 “품목제조보고서는 기업 제조 기밀사항으로 당사 외 회사가 이를 입수하는 건 불법”이라며 “제품에 표기된 바와 같이 무지방 우유가 함유돼 사실대로 광고했고 카제인을 대체해 무지방 우유만 넣었다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Round 3.투자와 규모의 경쟁에 올인
지난해 6월에는 남양이 “1800억원을 투자해 연간 커피믹스 50억 개를 만들 수 있는 커피공장을 짓는다”고 선포하며 규모의 경쟁이 시작됐다. 1800억원은 연평균 영업 이익률이 4% 정도에 불과한 남양으로선 5년여의 영업이익과 맞먹을 정도로 큰 금액이다. 그럼에도 경기불황에 커피시장 총공략을 선언한 건 커피믹스 시장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를 넘기기 쉽지 않은 반면 커피믹스는 마진율이 두 자릿수에 달할 정도다.
신축하는 커피공장은 전남 나주시 금천면 10만5700㎡ 부지에 연건평 2만6446㎡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이 공장의 연간 총 커피생산량은 7200톤(1차 3600톤, 2차 3600톤). 국내 커피믹스 시장점유율 50%를 예상한 설계다.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유가공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커피전문 기업으로, 종합식품회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이라며 “2014년 2조원 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서 측은 별반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동서는 현재 부평과 창원지역에 6만6115㎡ 규모의 커피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 공장은 연간 2만1000톤의 커피믹스를 생산하고 있다.
남양유업이 신축 예정인 나주커피공장 조감도
Round 4.커피시장 정체기 선택의 기로
동서와 남양의 경쟁은 원두 커피믹스 시장에서도 비슷한 형국이다. 2011년 10월 동서가 ‘카누’를 출시해 보름 만에 주요 할인점 판매 누적량 150만개, 2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시장을 선점하자 남양은 지난해 7월 원두 커피믹스 ‘루카’를 선보였다. 한때 업계와 인터넷 게시판에 “카누를 거꾸로 발음하면 루카”란 말이 회자될 만큼 양사의 경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사의 경쟁을 놓고 업계에선 “두 회사의 경쟁보다 정체기로 접어든 국내 커피믹스 시장이 문제”란 지적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되며 커피믹스 대신 고급 원두커피가 트렌드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해마다 늘어나던 국내 커피믹스 판매량이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했다. 시장조사업체 AC닐슨에 따르면 올 상반기 커피믹스 판매량은 5만3330톤으로 작년 상반기(5만3616톤) 보다 286톤 줄었다. 1위 업체인 동서식품 판매량이 4만3879톤에서 4만2546톤으로 줄었고, 한국네슬레(5634톤→3063톤)와 롯데칠성음료(1005톤→492톤)의 감소폭도 컸다. 2010년 12월 커피믹스 사업에 뛰어든 남양(2105톤→6369톤)만 판매량이 늘었다. 하지만 남양은 올해(1~9월 기준) 시장점유율을 12% 수준밖에 끌어올리지 못했다. 업계에선 투자대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커피믹스 시장의 정체가 예상되지만 1조2000억원대의 큰 파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며 “커피믹스의 해외수출과 이를 대체할 후속 상품 발굴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오프라인에선 카누, 온라인은 단연 G7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 원두커피믹스가 화두다. 지난해 핫이슈 상품은 동서식품의 ‘카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두커피에 대한 니즈와 스타마케팅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지난해 매출 800억원을 달성했다”며 “남양유업의 ‘루카’도 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일까.
오프라인에선 국내업체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온라인에선 사정이 다르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가 컨슈머리포트를 통해 발표한 2012년 상반기 인스턴트원두커피의 브랜드별 판매 점유율을 살펴보면 베트남 커피 ‘G7’이 점유율 51%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브라질산 커피 원두를 사용한 ‘이과수(17%)’. 두 제품의 점유율이 무려 68%로 전체 온라인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정태근 인터파크 인스턴트커피 CM은 “G7은 브라질에 이어 제2의 커피 생산국인 베트남에서 폭넓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브랜드로 국내에도 마니아층이 넓게 형성돼 있다”며 “G7, 이과수 등은 국내 브랜드와 비교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쉽게 구입하기 어려운 데다 온라인에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