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대통령 당선에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 각계각층의 시각이 달라졌다.
재계 곳곳에선 ‘2013년은 여성 경영인 시대’란 말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각 기업의 인사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실제 경영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대기업들의 대외홍보 등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여성 임원과 경영인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여성 인력의 발탁은 꾸준히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3년 여성시대를 이끌어 갈 이 시대 여성 경제인을 조명한다. Power 1대기업 인사 트렌드는 ‘여성임원 발탁’
“다른 나라는 남자와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1997년 발간된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에세이를 통해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이에 따라 당사자가 겪게 될 좌절감은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기회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라고 반문한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여성 임원 승진자와 함께한 오찬에서 “우리 그룹은 여성 인력이 발휘하는 능력 덕을 잘 보고 있는데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회사와 나라의 손해”라고 이야기했다.
비단 이 회장뿐만 아니라 지난해 국내 대기업 총수들의 경영 지침 중 하나는 여성 인재 발굴과 기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12월 10일 개최된 ‘2012년 롯데WOW(Way Of Women) 포럼’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롯데가 열어가는 차별 없는 여성의 길’을 부제로 진행된 여성 간부 리더십 포럼에서 신동빈 회장은 “롯데 그룹의 여성 인재들이 오늘 행사를 통해 그 역할과 중대성에 대해 자각하고 큰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며 “그룹에서도 여성 인재들의 차별화된 역량이 맘껏 발휘될 수 있는 시스템과 조직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재계, 여성을 보는 눈이 확 달라졌다
(왼쪽)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 (오른쪽)심수옥 삼성전자 부사장
(왼쪽) 윤심 삼성SDS 전무 , (오른쪽) 홍정란 상무 현대백화점 일산킨텍스점장
지난해 말 각 기업들의 정기 인사 트렌드는 세대교체와 성과주의, 여성 중용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중 여성파워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삼성그룹의 정기 임원 인사를 살펴보면 총 임원 승진자 485명 중 여성 임원 승진자가 12명이다. 남녀 비율만 놓고 보면 미미하지만 지난해 9명보다 3명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공채 출신 혹은 연륜보다 능력을 택했다. 특히 화장품 마케팅 전문가였던 이영희 전무의 삼성전자 부사장 승진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2011년 첫 여성 부사장(심수옥 부사장)을 낸 데 이어 이영희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차세대 여성 사장군을 보강했다. 역대 두 번째 여성 부사장이다.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윤심 삼성SDS 전무는 사내 모바일 정보서비스 개발과 마케팅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여성으로는 드물게 엔지니어로 한 길을 걸었다. 조인하 삼성전자 신임 상무는 중남미 TV 시장점유율 1위와 전년 대비 매출 12% 성장 등 성과를 인정받아 3년이나 앞서 30대 임원으로 발탁됐다. 지난해 3월 부장으로 승진한 후 10개월 만에 단행된 파격 인사다. 2년 빨리 상무직에 오른 오시연, 김경아 삼성전자 상무, 1년 미리 승진한 박종애, 곽지영, 홍유진, 조수진 상무 등 6명은 삼성전자 소속. 여성 신규 임원 가운데서도 삼성전자의 약진이 돋보였다.
다소 보수적이라고 소문난 LG그룹도 여성 인력의 중용이 화제로 떠올랐다. LG생활건강의 이정애 전무와 김희선 상무, 백영란 LG유플러스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재계에선 2011년 단 1명의 여성 임원이 선임된 것과 비교해 파격 인사란 평이다. 그룹 안팎에선 구본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반응이다. 구 회장은 지난 2002년 신입 여사원과의 간담회에서 “업적과 능력이 탁월하다면 남성과 여성의 구별 없이 합당하게 보상하고 과감하게 발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코오롱그룹은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략사업본부장(전무)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1954년 창사 이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이 대표는 2003년 코오롱그룹 웰니스TF에 차장으로 입사한 이래 2005년 상무보, 2011년 전무로 초고속 승진하며 주목 받은 인물이다. 이 대표의 선임은 여성 인재 육성과 양성 평등 등 코오롱그룹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코오롱그룹은 2002년 여성인력 할당제를 업계 최초로 도입했고 최근 3년 간 그룹 대졸 공채 여성 채용 인원이 평균 39%에 달할 만큼 여성 인력 채용을 확대해 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업계 최초로 여성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신촌점 식품팀장이던 홍정란 부장을 상무로 승진시키며 일산 킨텍스점장으로 임명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급변하는 유통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부사장급 승진자를 대폭 확대하고, 백화점 업계 처음으로 여성 점장을 발탁하는 등 진취적 인재를 중용했다”고 밝혔다.
남성 중심의 공기업 문화가 강했던 KT그룹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커뮤니케이션 실장에 여성 임원인 김은혜 전무를 발탁했다. KT의 커뮤니케이션실은 기존 대외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실과 사내 소통을 담당하던 GMC(그룹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략실을 통합해 조직의 규모와 중요도를 키웠다. MBC 기자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KT로 영입된 김 전무의 홍보분야 경력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KT그룹은 신사업본부장에도 여성 임원인 오세현 전무를 임명했다. LG CNS와 IBM 등을 거쳐 2011년 신사업전략담당 상무로 영입된 오 전무는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여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