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영인의 원조 멘토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자본을 축적해 차례차례 새로운 기업을 개척함으로써 선진 외국과 당당히 맞서 이긴다. 그것이 내가 나아갈 길이다.”
아버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전한 말은 3남 5녀 중 막내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1967년 정재은 웨스틴조선호텔 명예회장과 결혼한 이 회장의 어릴 적 꿈은 현모양처였다. 그러던 이 회장의 사회생활은 “여자도 가정에 안주하지 말고 남자 못지않게 사회에 나가 활동하고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슬픔을 견딜 수 없어 훌쩍 미국으로 떠난 이 회장은 그곳에서 프라이스클럽과 월마트 등 창고형 점포를 보고 대형할인점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1993년 서울 창동에 테스트 점포를 오픈한 것이 오늘날 이마트의 태동이다. 1997년 삼성그룹에서 공식 분리된 신세계백화점은 1999년 ‘신 윤리경영’을 선포, 2001년 상호를 신세계백화점에서 신세계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회장은 해외출장이나 여행에 나서면 반드시 사진을 찍고 메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계 일각에선 “작은 습관이 집념을 부른다는 이 회장의 정신력이 현재의 신세계 그룹을 이끈 원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삼성그룹에서 공식 계열분리를 선언했을 때 백화점 점포 2곳과 조선호텔만 가졌던 신세계 그룹은 16년이 지난 현재 29개 계열사를 가진 국내 대표 유통 명가로 성장했다.
오지 탐험도 마다 않는 현장경영박성경 이랜드 부회장
1980년 이화여대 앞에 작은 보세집 ‘잉글랜드’가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지금의 이랜드를 상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22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이랜드는 2016년까지 중국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2조원, 현지 채용 인원 10만명을 달성해 중국 내 1위 패션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잉글랜드 시절 미국 수출용 캐주얼 옷을 가져다 팔며 시작된 이랜드의 도전은 박성수 회장이 이화여대에서 섬유예술학을 전공한 동생 박성경 부회장을 디자인 실장으로 영입하며 본격화됐다.
원단 구매에서 판매 계획까지 발로 뛰며 사업 발판을 마련한 박 부회장은 2006년 이랜드 그룹 부회장에 오르며 현재 대외업무와 기업의 패션 전략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그룹 초기부터 현장경영으로 소문난 경영인이다. 주말엔 경쟁업체 매장을 순회하고 생산기지와 소재 발굴을 위해선 아시아의 오지 탐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월매출 1억원도 안 되는 작은 가게에서 아시아의 패션 중심 그룹으로 성장한 이랜드의 결실은 박 부회장의 세심한 기획과 도전에서 비롯됐다.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사업에 대한 계획을 발표한 박 부회장은 “글로벌 SPA 브랜드를 육성해서 H&M, 자라, 유니클로를 이겨볼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번엔 전 세계를 향한 도전을 선언했다.
외유내강형 워커홀릭이부진 호텔신라 CEO
지난해 3월 삼성가 3세 중 가장 먼저 의사봉을 잡은 이부진 사장, 삼성의 첫 여성 CEO다. 2005년 경영전략담당 상무로 취임한 이후 호텔신라의 비약적 성장이 이 사장의 능력을 대변한다. 2008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영업을 시작하며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 매출액은 전무로 승진한 2009년 1조2132억원, 사장으로 승진한 2011년에는 1조4524억원을 기록하며 4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사장이 진두지휘한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루이비통 매장은 오픈 1년 만에 연매출 108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패션시장에서 단일 매장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재계에선 호텔신라의 경영을 놓고 “이 사장이 호텔신라의 중심축을 국내외 면세품으로 정확히 잡아 아시아 소매업계에서 우뚝 섰다”고 평가한다. 이 사장은 삼성 안팎에서 리틀 이건희로 통하기도 한다. 외모와 책 읽는 습관, 지기 싫어하는 습성 등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쏙 빼닮았다는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3일 만에 호텔에 나타나 근무한 일화에선 그의 워커홀릭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2010년 연말 인사에서 부사장을 건너뛰고 전무에서 사장으로 직행한 이 사장은 최근 주요 경영현장에서 이건희 회장과 동행하며 그룹 내 역할을 공고히 하고 있다.
다정다감한 카리스마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 딸 이서현 부사장은 연매출 1조7000억원대의 제일모직 패션부문 총괄 부사장과 광고업계의 부동의 1위 제일기획을 견인하고 있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이 부사장은 2005년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해외브랜드 도입과 인수를 직접 관리했다. 지난해 2월에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에잇세컨즈’를 론칭했고 국내 남성복 브랜드 ‘갤럭시’는 출시 3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와 미국 시장에 동시 진출한다. 최근엔 YG엔터테인먼트와 합작기업을 설립하며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 부사장은 제일모직의 주력사업인 케미컬 분야도 직접 챙기고 있다. 지난해 7월 여수사업장의 폴리카보네이트 제2공장 준공식에 이 부사장이 직접 참석하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 부사장은 위기의 순간,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이 이건희 회장을 닮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2009년 제일기획에 취임한 이후 칸국제광고제 수상이 이어지자 소통하는 회사분위기를 만든 이 부사장의 공이 컸다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실제로 이 부사장은 회사 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직원들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간담회를 갖고 편안한 농담을 주고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능력 중심의 인재경영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 정유경 부사장은 1996년 신세계 계열사인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입사, 2003년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상무)을 거쳐 2009년 신세계 부사장에 올랐다. 2007년 본점 본관(명품관) 오픈, 2009년 신세계 센텀시티 오픈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신세계를 월드클래스로 도약시켰다는 평이다. 특히 센텀시티점 오픈을 준비하며 수시로 두바이와 도쿄, 미국 올랜도 등지의 쇼핑몰을 찾아 벤치마킹했고,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 입점을 위해 해당 브랜드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며 경영 능력을 증명했다.
정 부사장은 어머니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해외출장에 동석하며 사업 감각을 키웠다. 이 회장과 비슷한 경영스타일에 ‘리틀 이명희’라 불리기도 한다. 정 부사장은 인재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인재 영입에 힘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모양처의 세심함정성이 이노션 월드와이드 고문
정성이 이노션 월드와이드 고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녀 정성이 고문은 이화여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과 결혼해 내조에 전념했다. 여기까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를 제외하고 현대가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03년 모친인 고 이정화 여사와 함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이사를 맡으며 재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정 고문이 재계를 비롯해 일반 대중에게 각인된 건 현대차그룹이 2005년 광고대행사 이노션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이노션이 등장하기 전 국내 광고시장은 제일기획의 독주체제였다. 정 고문은 박재범 전 이노션 대표이사와 제일기획 연구소장 출신의 박재항 마케팅본부장을 직접 영입하는 등 이노션의 준비 단계부터 밑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받는다. 제일기획과 양강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선 현대차그룹의 신차 발표회와 해외모터쇼 등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주요 광고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코멘트하기도 했다.
이노션의 인테리어나 사내 복지 등을 직접 챙기는 모습에선 꼼꼼하고 세심한 면을 엿볼 수 있다. 경영면에선 전문경영인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사람 중심의 인재경영론을 바탕으로 신입사원 면접 때 면접관이 되기도 한다. 특히 능력 있는 여성 인력에 대해 관심이 높다는 후문이다.
뛰어난 국제감각조현아 대한항공 전무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무는 공식 직함이 3개다. 한진그룹의 호텔사업을 총괄하는 KAL호텔네트워크 대표, 대한항공 객실을 총괄하는 객실승무본부장 그리고 기내식기판사업 본부장이다. 호텔과 승무원 서비스, 기내식까지 전반적인 항공사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다.
조 전무는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해 호텔 경영의 해박한 이론과 실무 지식을 갖추고 있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오너 전문경영인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이론과 현장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현재 국제 기내서비스협회(IFSA)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는 등 국제 감각도 뛰어나다. 그룹 내부에선 대한항공이 지난 2009년부터 추진한 미국 LA 윌셔 그랜드 호텔 재개발 프로젝트의 LA시 의회 최종 승인(2011년)에 조 전무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한다. 훤칠한 키에 활기 넘치는 조 전무의 행보가 현지 파트너들의 호감을 샀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0월 18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대한항공의 새로운 기내식을 소개한 조 전무는 동생 조현민 진에어 전무와 달리 대외활동을 자제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좀처럼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 조 전무는 인사말 외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행사에 임했다. 평소엔 차분한 성격이지만 비즈니스에선 강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가문의 DNA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딸 정지이 전무는 후광보다 능력이 부각된 재벌가 3세 중 한 사람이다. 아버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타계한 후 광고인의 꿈을 접고 2004년 현대상선 재정부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정 전무는 2005년 대리와 회계부 과장, 2006년 현대유엔아이 기획실장(상무), 2007년 전무에 오르며 차근차근 경영인으로 성장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2005년 설립 당시 매출 103억원이던 현대유엔아이는 정 전무가 취임한 기간을 포함해 5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특히 어머니 현 회장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며 대북사업을 이끌던 2005년의 강렬함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정 전무는 넓은 시야와 소탈한 성격으로 그룹 안팎에서 후한 평가를 얻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지각과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현대상선에 입사하고선 직원들과 똑같이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가해 주변에서도 그를 몰라봤다고 한다. 2005년부터 현 회장의 수행 비서 역할을 도맡고 있다.
중견기업에도 여성 파워
권지혜 IS동서 마케팅 실장(가운데)
대기업의 여성 CEO 등장과 여성 임원 증가 등의 분위기는 중견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현업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중견기업 오너들의 딸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오너의 후광에 능력을 더해 자기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IS동서, 에몬스가구, 교원그룹, 로만손 회장의 딸들은 30대 가정주부라는 공통점이 있다. 권혁운 IS동서 회장의 장녀 권지혜 마케팅실장(상무)은 삼홍테크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IS동서는 건축자재 전문기업으로 4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견기업. 유스파 비데를 생산하는 삼홍테크도 비데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2005년 IS동서의 전신인 일신건설산업에 홍보담당 과장으로 입사한 권 상무는 마케팅 활동과 디자인·제품 개발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의사인 남편과 두 아이의 엄마 역할도 열심이다. 김경수 에몬스가구 회장의 장녀 김지영 과장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2007년 에몬스가구 디자인연구소에 입사해 예쁘고 실용적인 가구를 디자인하고 있다. 김 회장의 특명으로 2010년부터 에몬스가구의 서울 논현동 직영매장 관리도 맡고 있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의 딸 장선하 차장은 노보텔앰배서더 호텔에서 호텔리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지난해 초 교원그룹에 입사했다. 장 차장의 업무는 교원의 호텔사업부문. 남편도 호텔리어 출신이다. 장 차장과 함께 지난해 초 교원 호텔사업부문장(부장)으로 입사해 그룹의 미래 먹거리 분야인 호텔·레저사업의 비전을 세우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자 김기문 로만손 회장의 둘째 딸인 김선미 팀장은 시계편집 전문매장인 ‘더와치스’에서 수입시계 담당 MD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 팀장은 현재 출산 휴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