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융단폭격… 썰렁해진 식당’
지난 2월 20일 모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소위 ‘채선당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일은 인터넷과 SNS가 지닌 여러 가지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고 전개됐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채선당은 전국에 270개 가맹점을 둔 샤브샤브 전문점이다. 2월 17일 오후 1시 30분경 천안시 불당동에 있는 채선당 가맹점에 임산부 손님이 왔다가 종업원과 다투고 나갔다. 임신부는 그날 밤 10시 임신과 육아 카페인 ‘맘스홀릭베이비’에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글을 올렸다. 이어서 새벽 1시에는 카페의 글을 널리 알려달라고 독려하는 트윗을 올렸다. ‘채선당’은 순식간에 네이버 검색어 1위가 되어 18일 하루 내내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날 오전 9시 30분 채선당은 본사 홈페이지에 사과 글을 올렸다. 임산부가 경찰에서는 무조건 합의를 종용한다고 글을 올려 경찰까지 비난 대상이 되자 천안경찰서장은 트위터를 통해 ‘의혹 한 점 없이 신속히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오후 6시에는 다음 아고라에서 채선당 불매운동 서명이 시작됐고, 유명가수인 신해철이 자신이 당한 채선당의 불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트윗을 날리면서 비난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다음 날인 19일 오후엔 채선당 대표이사와 직원이 임산부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를 했다.
사흘 후인 2월 22일 채선당은 ‘손님과 종업원 간에 물리적인 시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임산부 손님을 발로 차지 않았으며, 점주는 적극적으로 싸움을 말렸고 무엇보다 손님의 언행이 지나쳤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CCTV와 동료 종업원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7일 경찰의 공식발표도 다툼은 있었으나 배를 찬 사실은 없다고 채선당의 말을 뒷받침했다. 그러자 피해자인 손님으로 사건의 발단이 됐던 임산부가 이제는 가해자로 낙인이 찍히면서 그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시작됐다.
임산부 손님이 채선당을 갔던 17일부터 2월 말까지 2주 남짓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소위 ‘채선당 사건’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속도이다. 처음 임산부가 카페에 글을 올리고 채 12시간이 되지 않아 아침에 바로 채선당이 공개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릴 정도로 소식이 빠르게 전파된다.
인터넷이 처음 대중화되기 시작할 때부터 전파의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질 것이라고들 얘기했다. 그리고 대중의 직접 참여 행위가 늘 것이라고도 예측을 했다. 그런데 SNS라는 무기를 장착하면서 그 확산의 범위와 속도에 더욱 가속도가 붙었고, 채선당 사건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유명인이 여론 조성에 미치는 힘을 보여준 것도 바로 이 사건에서 눈여겨 볼 부분의 하나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진실처럼 퍼지고, 신상털기 등의 사생활 침범 행위로 쉽게 번질 수 있다는 것도 채선당 사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기업에게 SNS는 양날의 검이다. 소비자의 불만이 빠르고 통제가 불가능하게 확산되는 공포의 도구이면서 반대로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특정한 행동을 촉구하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SNS를 통한 대응에는 좀 미흡한 면이 있었지만 채선당의 경우 1차 신속한 사과, 2차 진실 규명, 3차 공식 기관의 발표 수용 등의 수순을 속도나 내용에서 제대로 밟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초기의 상처를 완전히 회복할 순 없었다. 모든 기업들이 눈여겨 볼 사례이다.
채선당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올 한 해 마케팅 업계에서 가장 회자된 단어 중의 하나가 ‘빅 데이터(Big data)’이다. 소비자 빅 데이터의 보고가 바로 SNS이다.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기록하고,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올리면서 SNS는 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조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 올해 초의 국회의원 총선 과정에서 공천자를 확정하기 위한 조사에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조사 과정에서의 부정으로부터 시작된 모 유력 정치인에 대한 의혹은 그와 함께 그가 속한 정당까지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 근래 몇 년간 업계에서는 꾸준히 집 전화를 주로 사용해 조사를 진행하던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편의상 혹은 관성적으로 또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그대로 진행해오다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문제점이 노출돼 버렸다. SNS를 소통의 도구를 넘어서 빅 데이터의 산실로, 마케팅 자료의 원천으로 삼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앞으로 나오리라 기대한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의 등장
미국의 컨슈머리포트는 소비자에게는 가장 믿을 만한 제품 평가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 기업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컨슈머리포트에서 평가한 결과가 좋다면 최고의 원군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소비자원에서 3월부터 ‘K-컨슈머리포트’라는 이름으로 한국판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처음 등산화로 시작해 10월의 식기세척기까지 매월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어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물론 평가 대상 브랜드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객관적이지 않아 평가항목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3만명 이상의 하루 접속자 수나 언론에서까지 크게 다룬 논란, 화들짝 놀란 듯한 기업들의 반응에서 보듯이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TV에서 소비자고발 혹은 제품이나 기업을 검증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언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소비자 자신들이 제품의 성분을 포함한 품질과 가격 등에 대해서 자발적인 검증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가격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제도들이 도입됐다. 1999년부터 시작된 판매자가 판매 가격을 결정하고 표시하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와 금년 1월 이후의 휴대폰 가격제에 이어 4월부터는 개인서비스 업체들이 업소 바깥에 가격을 알리도록 하는 가격표시제가 일부 업종이기는 하지만 시행되기 시작했다. K-컨슈머리포트의 탄생과 그에 쏠린 관심과 영향력은 이런 검증의 열기가 검증돼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여 B급 문화여 응답하라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학번대의 학생들을 ‘문화개방의 1세대’라고 칭한 바 있다. 특히 IMF 직전까지의 1990년대는 서태지로부터 시작해 아이돌 그룹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만발하는 문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였다. 당시는 1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앨범들이 1년에도 몇 개 발매될 정도로 양적으로도 풍성한 문화 소비가 이루어졌다. 이들 90년대 세대의 선두가 40대로 들어서면서, 90년대 풍의 복고가 기왕의 레트로 열풍의 주역이었던 7080을 교체할 정도로 강력하게 등장했다. 왕성하게 문화 소비를 할 수 있는 경제력과 가정 내에서의 채널 선택권이나 언론 등에서도 크게 목소리를 내면서 이런 복고 문화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이들 1990년대 복고 문화 열풍은 이전의 것들과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전 7080의 추억이 음악에만 한정돼 있었던 반면, 90년대는 음악을 맹아로 해 다양한 콘텐츠, 매체에서 전방위적으로 동시패션으로 추억상품이 나오고 있다. 케이블TV 드라마로선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세운 <응답하라 1997>은 1세대 아이돌그룹에 대한 팬덤으로부터 시대의 감성을 살려냈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1990년대의 대학 캠퍼스를 그려내며 그 시대 음악을 관객의 추억을 되살리는 핵심 기재로 사용했다. 술과 춤이 90년대의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술집들도 단순히 LP판을 틀어주는 7080식 술집들과는 다른 90년대식 문화를 보여준다.
지금도 열기가 식지 않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역시 90년대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에 대한 콤플렉스도, 국수주의적인 공격적 성향도 없이, 즉 다른 사람이나 권위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느끼며 스스로가 즐거운 놀이거리를 만들었다.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문화와 대비해 ‘B급 문화’가 그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스스로 저소득층이나 비주류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그들이 이러한 B급 문화에 공감하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외부로는 거창하게 ‘수출’이 어쩌고 ‘한류’ 따위 단어를 들먹이지 않았지만 세계 많은 사람들의 교감을 이끌어내며 인기몰이를 했다. 그렇게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바탕이 바로 ‘문화개방 1세대’ 90년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것이 새로운 형태로 만발하기 시작한 한 해였다. 1990년대의 정서를 어떻게 자극하고 포용해 실제 제품을 구매하도록 만들고 또 브랜드 팬으로 만들 것인지가 앞으로 마케팅의 주요한 화두의 하나가 되겠다.
국가 간 다툼과 정치바람 그리고 힐링
인터넷 초창기에 미국의 한 문화비평가가 ‘예전에는 수백만 명으로 이루어진 세그먼트가 있었지만, 이제 인터넷 시대에는 한 사람 속에 수백만 개의 세그먼트가 있다’란 말을 했다. 수백만이야 과장이라고 해도 한 사람에게서 여러 가지 모순되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보수적이지만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이 일본 제품과 문화를 즐기면서도 독도와 위안부 강제징용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폭력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성향에 대해서 모순이라고 예전의 잣대를 갖다 대는 경우를 아직도 많이 본다. 해외 정보가 자유롭게 실시간으로 유통되면서 국가 간 다툼의 요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떠나 감정을 격화시키고 폭력적 행동까지 수반하는 사태들이 많아졌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본제품에 대한 공격 같은 행동이 앞으로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6자회담의 참가국들 모두와 얽힌 문제가 있고, 어느 곳에서건 제한적이나마 물리적 충돌로까지 번질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은 스포츠 국가대항전 경기처럼 응원을 한다. 그러면서도 애플이 신제품 발표를 할 때는 음악공연을 보듯이 열광하기도 한다. 신용카드 등의 혜택만 누리는 소위 체리피킹(Cherry-Picking)이라고까지 부르기는 그렇지만, 비슷한 형태로 자신에게 맞는 부분에서 제한된 호감을 보인다. 그 호감의 정도는 열광적이나 제품이나 서비스가 일부분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안티로 변하기도 한다.
큰 변화 없이 안정됐던 라면시장에 ‘흰색 국물’ 라면들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돌풍을 몰고 온 게 작년이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농심의 점유율은 흰색 국물 라면이 시장에 나타나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됐다. 맥주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놓은 하이트나 소주시장에서 점유율이 주춤하던 참이슬이 싸이를 앞세우며 공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카카오톡의 수익성에 절대적 기여를 한 국민게임 애니팡은 싸이월드에서 먼저 서비스가 됐던 게임이다. 그것이 카카오톡이라는 무선환경이란 바람을 돛에 맞으며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간 것이다. 하이트나 참이슬 같은 경우 단순하게 모델만 새롭게 싸이로 바꾸는 정도를 넘어서, 애니팡에게 PC와 무선이 다른 것처럼 소비자들에게 바뀐 환경이란 무엇인가, 그에 따라 제품 자체와 마케팅 활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제 시장에 절대 강자는 없다. 시장의 출렁거리는 정도는 더욱 커지고 변화 속도는 엄청난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의 바람까지 타면서 규제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조건 ‘전년 실적 대비 10% 이상’이란 기준으로 그 다음 해의 경영계획을 세우는 기업들이 있다. 설사 기업들이 그런 목표를 잡더라도 외부에 직설적으로 알리던 시대는 지났다. 언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올해 꽃을 피운 ‘힐링(Healing)’을 마케팅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의 간섭과 경쟁의 예봉을 피하고 내부 임직원의 사기와 작업 효율을 위해서도 힐링을 표방하는 마케팅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