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와 세금’이라는 큰 줄기에서 이번에는 CEO가 왜 세금을 잘 알아야 하는지, 물론 세무사나 조세 전문 변호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감은 있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이 연재의 가장 궁극적인 주제일 것 같다. 월드스타 싸이의 ‘롸잇 나우(Right Now)’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1. 예수도 세금을 냈다
이태리 피렌체에 있는 브랑카치 예배당(Brancacci Chapel, S. Maria del Carmine)에는 아래와 같이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가 그린 유명한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 ‘세금을 바치는 예수’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로마인 관리가 예수의 길을 막고 세금(Tribute Money·미술사 교과서 등에서는 ‘성전세’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이른바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이유로 내야만 하는 인두세’와 같은 세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을 내라고 하자, 예수가 베드로를 시켜 강가에 있던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꺼내게 한 다음 그 돈으로 세금을 내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미술사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당시 거의 처음으로 원근법이 제대로 구사된 작품일 뿐만 아니라, 3개의 서로 다른 시간이 하나의 그림에 동시에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그림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3명의 베드로를 유심히 보라. 예수에게서 세금을 걷으려 하는 관리에게 욱하고 달려드는 베드로(물론 예수가 그런 베드로를 말리고 있다), 예수의 말을 듣고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돈을 꺼내고 있는 베드로(제일 왼편), 그리고 그 돈으로 Tribute Money를 지불하는 베드로(제일 오른편)가 그렇다. 물론 여기서 필자는 마사치오의 원근법 등 그 미술사적 가치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심지어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다만 세법을 업으로 하는 변호사로서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이 그림은 마태복음 17장 24-17절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마태(Matthew)가 누구인가?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이고, 신약성서의 하나인 ‘마태복음’을 기술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마태의 원래 직업이다.
바로 마태 또한 위 그림에서 예수를 막아서고 있던 자와 같은 세리(세금을 징수하는 관리)였다. 예수가 가버나움(Capernaum)의 세관을 지날 때 예수의 부름이 있자 곧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12사도의 한 명이 됐다고 하는데(Caravaggio의 유명한 그림 ‘The Calling of St Matthew’이 바로 그 장면이다) 그림에서 예수의 뒤에 12명이 서 있는 것을 보면, 마태 또한 그 자리에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어쩌면 예수는 조세 전문가(?) 마태로부터 “이런 경우에는 세금을 내시는 게 맞습니다”라는 조언을 미리 들은 다음 침착하게 물고기의 입에서 동전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미리 준비했을지 모른다.
2. 당신은 고담시티의 브루스 웨인이 아니다
당신은 물고기의 입에서 Tribute Money를 꺼내는 기적을 만들 수가 없고, 슈퍼히어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재력을 자랑하는 미국 코믹스의 대명사 배트맨(민간인인 사업가로서의 이름이 바로 ‘브루스 웨인’이다)만큼의 독점적인 사업가도 아니다.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의 회사 ‘웨인 엔터프라이즈’가 고담시티로부터 세금을 맞더라도, 고담시티는 웨인 엔터프라이즈 없이는 도로 하나 만들 수 없고, 결국 그 돈은 다시 웨인 엔터프라이즈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브루스 웨인 또는 배트맨이 배트카를 몰고 고담시티 도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더라도, 고담시티는 결국 웨인 엔터프라이즈와 보수 계약을 해야만 할 것만 같다.
그런데 당신은 세금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 브루스 웨인이 아니다. 당신은 경쟁이라는 날 선 일상에서 늘 최선의 효율과 수익을 생각하면서 이를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재력이 넘쳐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매 순간의 ‘합리적인 경영 판단’과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초조함’은 시험장에서 상기된 얼굴로 문제지를 풀고 있을 수험생의 긴장감과도 같다.
그런데 그런 긴장감 속에서 매번 놓치고 틀리는 문제를 또 놓치고 틀리는 수험생의 실수와도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세금이다. 심지어 예수도 세금을 냈고 예수를 따랐던 12사도 중에서는 세금 전문가 마태도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떠한가?
3.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
흔히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으로 잘못 인용되기도 하지만 원래 손자병법에서는 ‘백전백승’ 대신에 ‘백전불태(白戰不殆)’라고 되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이긴다고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어떤 CF에서 기억에 남는 카피 하나를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당신의 오답 노트에도 분명 ‘세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오답 노트에 적어야 할 답이 바로 이 같은 문구다.
세금이 오답 노트의 단골손님이라고 해서 당신도 세법 전문가와 같은 정도의 전문 지식을 스스로 갖추라고 주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열심히 돈을 벌고 그래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모범 납세자로 표창까지 받았더라도 국세청은 단 한 번의 실수조차 그냥 넘어가 주지 않고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어느 영화 속 대사를 그대로 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에게 필요한 일은 바로 당신이 CEO로서 내리게 되는 어떠한 결정이 국세청이 싫어할 만한 일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는 바로 회사와 당신은 별개의 인격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일군 회사 또는 내 부모님이 물려준 회사라고 하더라도 법의 세계에서 회사는 당신과 엄연히 다른 별개의 존재다. 보다 쉽게 말해서 회사는 법인세를 내고 당신은 소득세를 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특히 ‘돈’과 관련해 스스로 그 구별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다. 각종 접대비, 회계장부상 누락되어 있는 돈 등이 그렇다. 국세청이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우다. 회사와 개인의 구별이 모호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접대비의 경우 손금으로 인정되는 한도가 회사의 규모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고 회계상 누락된 돈이 있으면 이를 ‘부외자산’이라고 해 회사의 익금에 산입시키는 한편, 경우에 따라 그 사용처가 소명되지 않을 경우 그 돈이 대표이사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아 대표이사 개인에게 소득세까지 물리기도 한다. CEO와 회사는 부부 사이가 아니다. ‘니 돈 내 돈이 어딨어?’라고 하다가는 정말로 낭패를 본다. 그 때문에 ‘너도 세금내고 나도 세금내는’ 상황이 참으로 많다.
두 번째로 회사와 당신은 별개의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 ‘거래’가 있으면 항상 국세청의 주목을 받는다.
앞의 경우와 반대로 세법은 회사와 CEO 또는 주주를 별개의 인격체라고 하면서도 이들 사이의 ‘거래’는 또 다른 시각으로 언제나 주목한다. 이른바 ‘특수관계자’와 ‘부당행위계산부인’이라고 하는 세법에서도 가장 어렵고 복잡한 도구를 사용해 세법의 관점에서 거래를 재구성하고 그 재구성된 거래에 따라 세금을 매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라는 유행가처럼 특히 계열회사들 사이의 거래, 회사와 대주주 사이의 거래는 사실 애틋한 ‘님’을 위한 비정상적인 거래일 뿐이다. 서로 ‘남’인 것처럼 포장만 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시각이다.
‘합리적인’ 경영상의 판단에 따른 ‘합리적인’ 거래이고, ‘님’이 아닌 다른 ‘남’과의 거래와 다를 바 없다라는 것의 입증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언제나 쉽지 않은 과제다.
예를 들어 받을 돈이 있는 다른 회사가 현재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고, 그 회사는 그 돈을 지금 당장 전부 지급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만일 그 회사가 지금의 위기만 잘 넘긴다면 곧 회복해 내가 받을 돈에 이자까지 더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설 수도 있고, 그렇다면 지급을 유예해 주는 것이 현명하다. 섣불리 회수하려고 했다가 그 회사가 도산이라도 하면 당신의 회사 또한 그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그 상대방이 계열회사라고 한다면 국세청의 시각은 곱지 않다. 계열회사에게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별한 이익을 주고 있다고 보고, 그 지급의 유예에 따른 가상의 이자를 계산해 세금을 조정하는 과정을 밟는다. 즉 지급을 유예한 돈은 상대방인 계열회사에게 빌려 준 것과 다름없다는 전제에서 그에 따른 세무조정을 거치고, 이때 계산되는 세금과 납세의무자인 당신의 회사가 신고한 세금의 차액을 물리는 것은 물론 가산세까지 부과하고자 할 것이다. 계열회사라는 특수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때의 거래와 관련한 판단이 ‘합리적인 경영상의 판단에 따른 정상적이고도 합리적인 거래’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판단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소명 자료 등을 미리미리 염두에 두는 수밖에 없다.
실물거래가 아닌 자본거래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주주 구성 또한 단순히 경영권 확보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명의신탁이 세대를 거치면서 증여세 폭탄으로 되돌아 올 수 있고 그 지분 비율에 따라 특수 관계의 범위가 달라져서 세법상 취급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업자로부터 지분을 인수한 다음 회사를 상장시켰을 때 그 주식양수도 거래 당시의 각자 지분율에 따라 주식을 인수한 자에게 ‘상장 이익에 따른 증여세’가 과세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안 될 수도 있다.
같은 회사의 주주 또는 임원, 그리고 계열회사 사이의 거래는 그러한 관계가 없는 자들과의 거래와 달리 취급되면서 언제나 세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입장을 바꾸어서 ‘님’이 아닌 ‘남’과의 거래라고 할 때 과연 다른 사람들도 나의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줄까?라고 한 번만 쉬어가면 된다.
4. 어떤 후기
이번 연재가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에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감도 있다. 세법은 변호사들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분야 중의 하나다. 그런데 세법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오죽할까라는 생각에 조금 쉽게 그리고 조금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위한 필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필자의 잡기, 잡학만 기억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 <킬빌2>에서 주인공인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는 자신의 복수 대상이었던 빌의 동생으로부터 어이없는 일격을 당했고, 이때 키도가 죽었다고 생각한 두 명의 암살자들은 키도의 죽음(물론 키도는 죽지 않았다)을 두고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한 명의 암살자가 다른 암살자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너는 물론 두 가지 감정을 모두 느꼈겠지. 하지만 분명히 다른 하나의 감정이 더 많았을 거야. 말해봐, 그게 뭐지?”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똑같이 집요하게 묻는다면? 물론 필자에게는 그런 질문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고백할 수 있는 건 필자의 잡기와 잡학이 때마침 서서히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시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