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에서 레미콘 회사를 경영하는 A회장은 까다롭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박사학위까지 딴 학구파로 실력을 갖춘 경영자였다. 게다가 회사의 돈도 많아 은행 돈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은행 지점장이 만나자고 해도 좀처럼 시간조차 내주지 않았다. 고심하던 IBK기업은행의 담당 지점장은 본부에 이 회사에 대한 경영진단과 신사업전략 컨설팅을 신청했다.
A회장은 처음엔 ‘내가 누군데’하는 자세로 우습게 보면서 마지못해 컨설팅을 수락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서인지 공짜 컨설팅이 뭐가 있겠냐며 기업은행 컨설턴트들에게 이런저런 과제를 주며 시험했다. 그런데 컨설턴트들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자기가 보지 못한 것들을 줄줄이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A회장은 컨설팅이 끝날 때까지 외부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컨설턴트와 시간을 보냈다. 30년 이상 기업을 이끌며 느꼈던 궁금증을 수시로 털어놨다. 과제를 맡은 컨설턴트들은 저녁내 준비해 다음 날 어김없이 해답을 돌려줬다. 게다가 직원들을 설문하고 인터뷰를 해서 전문가 시각에서 회사의 문제를 집어냈다. 회장도 모르는 직원들 사정까지 샅샅이 제시한 것이다.
컨설팅이 끝나는 날 저녁 A회장은 기업은행 관계자들을 불렀다. 2차라곤 몰랐던 그는 이날 술잔을 나누며 노래까지 불렀다. 그날부터 A회장은 기업은행 컨설턴트들과 호형호제를 하고 지낼 정도가 됐다.
코스닥 상장 조선업체인 B사는 신규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3년째 지지부진 끌어왔다. 지켜보던 기업은행에서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했으나 은행이 경쟁업체를 위해 정보를 빼내려는 것은 아닌가하며 협조를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너 2세인 이 회사 상무는 미국에서 MBA까지 마치고 돌아온 터였다.
회사 측의 비협조로 제대로 된 컨설팅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업은행에선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도 이제까지 한 게 아깝다며 중간보고나 하고 그만두자고 했다.
거기서 이변이 생겼다. 방해를 한다고 할 정도로 비협조적이었던 회사 측은 컨설턴트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깜짝 놀랐다. 그제야 은행의 진심을 느낀 회사 측은 계속 컨설팅을 해달라고 했다. 결국 능력의 한계를 인식한 회사는 구상했던 신규 사업은 접기로 했다. 상무는 결례해서 미안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1년 만에 519건 컨설팅 진행
기업은행의 무료 컨설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8월 1일 시작한 이 무료 컨설팅이 8월 10일 현재 519건이나 됐다. 2013년 7월 말까지 1000개 중소·중견기업에 무료컨설팅을 하겠다는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전대성 IBK컨설팅센터 센터장(컨설팅부장)은 “무료로 컨설팅을 한다니 공짜라고 우습게 생각할 것 같아 우려했는데 컨설턴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양질의 컨설팅을 해주니 사장들이 감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료인데 기대 이상으로 효과가 크니 고마움을 느낀 것이다.
전 센터장은 “중소기업들은 재무전략보다 성장에 따른 신규 사업 전략이나 조직관리 인사관리 성과평가와 가업승계 등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소개했다.
무료 컨설팅은 1년이 약간 넘었으나 기업은행의 컨설팅 역사는 은행 창업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내부 인력으로 기술지도나 경영지도를 해왔고 이후 외부 컨설팅 업체에 용역을 주어 컨설팅을 지원했다.
2002년 컨설팅사와 계약이 끝나자 기업은행은 2003년 컨설팅센터를 발족하고 글로벌 컨설팅 경험이 풍부한 직원들을 채용해 현대식 컨설팅을 시작했다. 물론 당시엔 컨설팅 수수료를 받았다.
2011년 창업 50주년을 맞아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일체 비용을 은행에서 지원하며 중소·중견기업에 무료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고객 덕분에 기업은행이 성장했으니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줄 때가 됐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컨설팅 품질도 대폭 높이기로 했다. 컨설팅팀을 부로 승격하고 종전 25명이던 컨설팅 인원을 71명으로 늘렸다.
센터는 경영전략 수립이나 인사관리 성과관리 등을 지원하는 경영컨설팅팀과 세무진단을 비롯해 회계나 가업승계 법률 자문을 하는 전문컨설팅팀,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창업녹색컨설팅팀 등으로 구성됐다. 각 팀엔 회계사와 세무사가 배치돼 전문적 해법을 제시한다. 특히 전문컨설팅팀은 팀장 외에 8명의 세무사와 7명의 회계사 2명의 변호사로 막강한 진용을 갖췄다. 창업컨설팅팀은 1600억원의 재원을 바탕으로 연리 2.7%로 청년창업을 지원할 뿐 아니라 컨설팅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 뿐 아니라 은행에 미칠 손실을 막는 일까지 하고 있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은 인도네시아에서 탄광을 인수해 한전에 석탄을 납품하면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란 얘기에 솔깃해 돈을 붓기 시작했다. 이 사업을 앉아서 돈을 긁어모으는 화수분처럼 여긴 것.
그런데 자원개발이 생각처럼 쉬운 사업이 아니었다.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올인한 회사 사장에겐 어떤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켜보던 기업은행에선 석탄산업 성공 로드맵을 만들어 제시했다. 성공하려면 고도의 전문인력과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로드맵의 타당성을 인정한 후에야 사장은 마음을 돌렸다. 자칫 엄청난 손실을 입을 처지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전 센터장은 업무영역을 확대할 방침도 밝혔다.
“코트라나 삼성 LG그룹 계열사 등 대기업과 협약을 체결해 협력업체를 지원하는 업무도 하고 있다. 이미 일부 대기업과 협약을 체결해 그린SGM(공급망체계) 컨설팅을 받은 업체가 납품할 때 가점을 주도록 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이나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에 대한 컨설팅도 하고 있다. 현지 생산관리나 인사관리는 물론이고 철수전략까지 지원한다는 것. 더불어 여러 기업을 모아 교육도 하고 있다. 중간관리자들이 의식을 갖도록 지역을 순회하는 교육에도 착수했다.
IBK 환율비서를 아시나요
‘환율이익이 목표치를 넘어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환율이 더 내려가면 수익 관리가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소기업의 환위험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SMS 서비스가 있다. 기업은행의 환율비서(?)인 ‘헤지 메신저’다.
많은 기업들이 환율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환율이 한창 올라갈 때는 계속 올라갈 것으로 판단해 대응을 하지 않다가 기회를 놓친다. 반대로 환율이 내려갈 때도 어제는 어땠는데 하는 식으로 두고 보다가 위험을 맞기도 한다.
전정준 기업은행 자금운용부 차장은 “기업들이 환율 움직임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며 “헤지 메신저는 기업이 꼭 지켜야 할 적정이익 수준과 계약단가 등 기본 데이터만 입력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통화별 목표환율 가중치를 계산하고 환율이 기준가에 도달하면 SMS나 이메일로 헤지 타이밍을 알려 준다”고 설명했다. 캘린더 기능을 갖고 있어 만기일도 알려준다고 했다.
이 시스템은 환위험에 노출된 포지션이나 과거 추이를 반영한 손실 추정치, 환헤지 스케줄 등을 비주얼하게 보여줘 중소기업들이 환율변동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