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되고 어리석다!’x
효성그룹 故 조홍제 창업주의 호인 ‘만우(晩愚)’의 의미다. 이처럼 겸손한 호를 썼지만 조홍제 창업주의 삶을 살펴보면 결코 늦되거나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파란만장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조홍제 창업주는 청년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고 해방 이후에는 경제인으로 국내 산업계의 기틀을 세웠다. 특히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삼성물산을 설립해 삼성그룹사에 족적을 남겼고, 56세의 나이에 홀로서기에 나서 효성그룹을 설립했다.
경영능력 외에도 조홍제 창업주는 자녀들의 혼사를 통해 국내 최고 수준의 명문가를 이뤄냈다. 경남 함안의 대지주였던 그의 혼맥에 전현직 대통령이 3명이나 등장하고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정재계 최고의 명문가로 손꼽히는 효성그룹의 혼맥을 살펴봤다.
삼성물산 키운 뒤 효성을 창업하다
울산의 동양나이론 건설 현장을 찾은 조홍제 창업주
효성그룹 창업주인 故 조홍제 명예회장은 경상남도 함안 대지주였던 부친 조용돈 씨와 모친 안부봉 여사의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교적 가풍을 따라 15세에 진주의 명문가인 하세진 가문의 하정옥 여사와 결혼했다.
한학을 공부하던 조 창업주는 결혼 이후인 17세에 신식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신학문을 배웠던 하정옥 여사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후 19세에 고등 보통학교(당시 중·고교)에 입학했고 30세가 돼서야 대학을 졸업했다.
40대에는 故 이병철 회장을 만나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물산을 창업했다. 조홍제 창업주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의 형인 이병각 씨와 친구관계였던 조 창업주는 당시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에게 자금을 빌려준 뒤 사업을 같이 했다. 당시 자산규모 1700만원의 삼성물산은 조 창업주의 합류 이후 3년 만에 48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단 10년 만에 삼성물산을 국내 최고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창업주는 56세의 나이에 홀로서기에 나선다. 이병철 회장이 동업 청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조 창업주는 결국 3억원을 받는 것으로 삼성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이후 자신이 설립해놨던 효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날의 범효성그룹을 일궈냈다.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조홍제 창업주는 자녀들의 혼사도 알차게 꾸렸다. 조 창업주는 하정옥 여사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이 중 장녀와 차녀인 故 조명숙 씨와 명률 씨는 조 창업주가 사업에 나서기 전에 인근 대지주 집안으로 출가시켰다. 장녀인 명숙 씨는 진주여고를 졸업한 후 경남 진양의 대지주였던 허정호 씨와 결혼했다. 당시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대) 학생이던 정호 씨는 서울신한병원 원장을 지냈다. 명률 씨는 경남 산청의 대지주인 권동혁 씨의 장남 병규 씨에게 시집갔다. 병규 씨는 과거 효성건설 회장을 지낸 바 있다.
권문세가의 셋째 사위 효성 조석래 가문
효성그룹의 혼맥은 장남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에서 출발한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였던 32세에 결혼한 조석래 회 장은 송인상 전 재무부장관의 셋째 딸인 송광자 여사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송인상 전 재무장관은 수출입은행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조홍제 창업주는 조석래 회장의 혼사를 통해 곧바로 신동방그룹, 단암산업 등과 사돈이 된다. 신동방그룹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단안산업 이봉서 회장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사돈을 맺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사돈가문 중 하나인 신동방그룹이다. 조석래 회장과 동서지간인 신명수 신동방그룹 전 회장의 아버지인 신덕균 신동방그룹 창업주는 김영자 여사와 결혼했는데, 김영자 여사의 남동생이 바로 故 김종대 효성기계 전 회장이다. 농림부 장관을 지낸 김종대 전 회장은 막내딸인 김은주 씨를 조욱래 DSDL 회장에게 출가시켰다. 결국 조석래 회장과 조욱래 회장이 사돈의 사돈이 되는 셈이다. 조석래 회장과 송광자 여사는 슬하에 3형제(현준-현문-현상)를 두고 있다. 효성가 3세인 이들 역시 모두 결혼했다.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은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의 막내딸인 이미경씨와 결혼했다. 조석래 회장 가문은 이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와 연결된다. 이희상 회장의 장녀인 윤혜 씨가 전 전 대통령의 3남인 재만 씨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석래 회장과 마찬가지로 조현준 사장 역시 신동방그룹일가와 동서지간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희상 회장의 둘째 사위인 신기철 씨가 신명수 전 회장의 동생인 신영수 서울대 의대 교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차남인 조현문 ㈜효성 부사장은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인 여진 씨와 결혼했다. 여진 씨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거쳐 국제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다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일하기도 했다. 조현문 부사장은 서울대 재학시절 가수 신해철과 함께 ‘무한궤도’라는 밴드를 결성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조석래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현상 부사장은 비올리스트 김유영 씨와 결혼했다. 김유영 씨는 예일대 음대를 졸업한 후 26세에 뉴욕대 조교수로 임용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의 비올리스트로 알려졌다. 조현상 부사장의 장인은 국내 최대 특장차 제조업체인 ㈜광림의 김여송 대표로 행남자기 김용주 회장의 사촌이다.
MB사돈 한국타이어 조양래 가문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가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조홍제 창업주의 차남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은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장의 딸인 홍문자 여사와 결혼했다. 이후 한국타이어에는 조 회장의 처남들인 故 홍용희 전 외환은행장과 홍건희 씨가 경영에 참여했다.
조양래 회장과 홍 여사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이 중 장녀인 희경 씨는 미국 뉴욕에서 수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세대 법대 교수인 노정호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차녀인 희원 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지주부문 사장은 차동환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차진영 씨와 결혼했다. 차 교수는 故 설경동 대한전선그룹 창업주의 둘째 사위(차녀 설영자 여사와 결혼)다.
막내아들인 조현범 한국타이어부문 사장은 2001년 9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현 대통령의 3녀 수연 씨와 결혼했다. 수연 씨의 큰아버지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은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의 아들인 구본천 대표를 사위로 두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은 지난 4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조양래 회장에 이어 3세 경영 체제에 들어설 준비에 나선 것이다. 재계에서는 한국타이어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이 사실상 후계구도를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매출의 97% 이상이 타이어 부문에서 나오고 있어 지주회사 전환으로 혜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금조달과 지분승계에 유리해 이번 지주회사 전환이 3세대 인 현식·현범씨에게 그룹을 물려주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비춰지고 있다.
20대에 그룹 승계한 조욱래 DSDL그룹 회장
대전피혁을 방문한 조홍제 창업주
조석래 회장
조홍제 창업주의 막내아들인 조욱래 DSDL 회장은 28세의 젊은 나이로 당시 효성그룹의 3대 주요계열사 중 하나였던 대전피혁을 물려받았다. 이에 조 창업주는 조욱래 회장의 장인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김 전 회장이 대전피혁 경영에 참여했다. 김종대 전 장관은 앞서 밝힌 것처럼 신덕균 신동방그룹 창업주의 부인인 김영자 여사의 동생이다. 형님 조석래 회장과 동생인 조욱래 회장이 신동방그룹을 거쳐 겹사돈이 되는 부분이다.
김종대 전 장관은 3공화국 당시 내무부 장관을 지낸 故 김치열 씨와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김치열 전 장관은 인제대학교 백병원재단을 설립한 백인제 씨의 조카인 백낙서 교수를 사위로 두고 있다. 여기에 맏며느리는 옛 조양상선그룹 박남규 회장의 딸인 박재숙씨다. 김치열 전 장관은 사돈인 박남규 회장을 통해 농심그룹과 연결된다.
장인의 보살핌 아래 대전피혁 경영에 나선 조욱래 회장은 이후 효성기계공업, 동성개발 등 그룹 확장에 나섰다. 특히 효성기계는 대림기계와 함께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고, 현재는 DSDL(구 동성개발)이란 부동산개발임대업체를 통해 프레이저플레이스 호텔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조욱래 회장은 부인인 김은주 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현강 씨는 금융권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다 현재는 프레이저플레이스의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강 씨는 경기도 수원 일대의 한 교육가 집안의 자제와 결혼했다. 장녀 윤경 씨는 신라컨트리클럽으로 잘 알려진 삼공개발 홍준기 회장의 아들인 홍석융 신라저축은행 전무와 결혼했다. 홍준기 회장은 딸을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아들인 정민 씨에게 시집보냈다.
조욱래 회장의 막내아들인 현우 씨는 형인 현강 씨와 함께 프레이저플레이스에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내실 있는 방계 형제 혼맥
조홍제 창업주의 동생인 故 조성제 대전피혁 전 사장의 혼맥 역시 탄탄하다. 조욱래 DSDL 회장에 앞서 대전피혁을 경영했던 조 전 사장은 정정윤 여사와의 사이에 5남 3녀를 두고 있다. 조성제 회장 3남인 경래 씨는 홍재선 전 전경련 회장의 자제인 애수 씨와 결혼했다. 경래 씨의 손윗동서는 故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차남인 故 구자승 LG상사 사장이다. 눈에 띄는 점은 故 구인회 창업회장의 4남인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과 사돈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조석래·조욱래 회장이 신동방그룹을 통해 겹사돈을 맺고 있는 것처럼 경래 씨 역시 LG그룹을 통해 사촌인 조양래 회장과 겹사돈을 형성하고 있다. 이밖에도 조 전 사장의 4남인 익래 씨는 원용필 전 한국타이어 사장의 딸인 정선 씨와 결혼했다. 원 전 사장은 원용석 전 경제기획원 장관의 동생이다. 장녀인 정숙 씨는 정종철 전 서울시장의 아들인 창순 씨와 혼인했다. 재계에서는 효성그룹의 혼맥에 대해 “3명의 전현직 대통령, 그리고 여러 명의 장관을 비롯해 학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화려한 가문을 키워냈다”면서 “자녀들을 대부분 출가시킨 현재, 범효성가의 당면과제는 3세 체제로의 경영승계”라고 평가했다.
그래서일까. 조석래 회장의 효성그룹과 조양래 회장의 한국타이어그룹 등 범효성家 3세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조홍제 창업주의 3남인 조욱래 DSDL 회장은 이미 자녀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모두 넘겨 사실상 경영승계를 완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