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은 희대의 사기꾼을 일컬을 때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물을 사먹는 것이 당연해진 게 오래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이제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가방에 페리에 한 병을 넣고 다니는 것이 더 에지있다고 여길 정도다.
덕분에 생수 소비 바람이 일고 국내 생수시장 규모도 해마다 쑥쑥 성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생수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5500억원으로 매년 10%가 넘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 대형마트에서는 생수 판매량이 과즙음료를 처음으로 제쳤다. 이마트에서 지난해 생수매출은 520억원으로 오렌지주스, 포도주스 등으로 대변되는 과즙음료(510억원)를 앞섰다.
생수업체는 70여 개로 100여 개 브랜드가 시중에서 유통 중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일반생수부터 빙하수, 해양심층수, 기능성 워터, 베이비 워터, 탄산 워터 등 기능성 생수까지 천차만별이다.
생수를 음료처럼 사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백화점에는 워터바(Water Bar)가, 서울 강남 일대에는 다양한 생수나 특정 생수로 만든 음료를 판매하는 물카페도 등장했다.
최근 들른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워터 바에는 더워진 날씨로 평소보다 고객이 더 부쩍 거리고 있었다. 100여 종의 생수가 진열돼 있는 워터바에는 물 전문가인 ‘워터 어드바이저’가 상주하고 있다. 기능성 생수 수입이 늘어나면서 고객들이 소화를 돕는 물, 피부에 좋은 물 등에 대한 설명을 원하기 때문이다. 워터 어드바이저 뿐 아니라 워터 소믈리에(물맛 감별사) 같은 신종 직업군도 생겼다.
워터 어드바이저 박혜영 씨는 “물에도 트렌드가 있다”며 “해외에서 해양심층수가 인기를 끄는지 알칼리수가 유행인지에 따라 국내에서도 동일한 콘셉의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식”이라고 했다.
매장에 들른 한 고객은 할인하고 있는 생수 4병을 한꺼번에 구입했는데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테리어용으로 장식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물맛 때문이 아니라 물병 디자인 때문에 매장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 매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매장에서 가장 비싼 생수는 패리스 힐튼이 마셔 유명해진 미국 테네시산 생수 ‘블링(bling) H20’. 375㎖에 무려 7만9000원이다. 물병에 촘촘히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이 박혀있어 마치 예술품처럼 보인다. 술집에 위스키를 키핑해두고 가끔 들러 마시는 것처럼 아예 글라스를 구입해두고 워터바에 들러 물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서울 강남 일대에 생겨나고 있는 물카페에서는 생수와 함께 천연탄산수로 만든 ‘레모네이드’, 빙하수로 만든 ‘빙수’ 등 특정 생수로 만든 음료도 팔고 있다.
수원지까지 꼼꼼히 따지며 ‘고급물’을 찾는 수요층이 늘면서 프리미엄급 수입 생수시장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수입 생수 가운데는 에비앙(프랑스) 볼빅(스위스) 페리에(프랑스)가 시장을 이끌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생수 수입액은 865만달러(약 97억원)를 기록해 1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반 생수가격에 비해 수십 배 비싼데도 최근 3년 평균 수입량이 40%나 증가하고 있다.
캐나다산 빙하수로 만든 ‘휘슬러’와 프랑스산 ‘페리에’가 특히 인기를 끄는 제품. 휘슬러는 압구정 본점 e-슈퍼를 통해 가장 많이 판매되는 생수로 깨끗하고 목 넘김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리에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탄산수로 레몬, 라임 등의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다.
기능성이 강한 생수는 가격이 높다.
북극 빙하를 떠서 그대로 녹인 캐나다산 ‘버그(750㎖·6만6000원)’, 세계 3대 광천수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산 ‘노르데나우(500㎖·1만원)’, ‘괴테의 물’로 소변배출이 잘된다고 알려진 ‘슈타틀리히 파킹엔(500㎖·1만원)’ 등은 비교적 비싼 제품이다.
자작나무 수액으로 만든 핀란드산 ‘노르딕코이뷰(500㎖·1만9000원)’는 고로쇠 수액과 같이 비가열처리해 영양분 파괴가 적고 피부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끓이지 않아도 분유가 잘 녹아 강남 엄마들 사이에 인기인 베이비워터도 있다. 오스트리아산 ‘와일드알프(250㎖·3500원)’로 알프스 산맥에서 온 물이다.
수입 생수 브랜드들은 물맛뿐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승부를 걸고 있다. 명품과의 협업을 통해 한정판 제품도 내놓고 있는 것.
톰크루즈, 마돈나 등이 즐겨 마시는 탄산수로 알려진 이탈리아산 산펠레그리노는 미소니, 불가리 디자이너와 제휴해 물병을 디자인한 제품을 내놓았고 에비앙도 랄프로렌(Ralph Lauren), 폴 스미스(Paul Smith)에 이어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디자인한 생수를 선보였다.
수입생수가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자 국내 생수업체들의 물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국내 페트병의 경우 농심 ‘삼다수’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어서며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롯데칠성 ‘아이시스’, 진로의 ‘석수’와 ‘퓨리스’, 동원F&B의 ‘동원샘물’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생수시장이 커지면서 식음료 업체뿐 아니라 이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PB상품을 내놓는 등 잇따라 생수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울릉도 바다 속 1500m 깊이의 해양심층수로 만든 ‘미네워터’의 미네랄 성분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고, 신세계푸드는 남태평양 피지제도의 지하암반수 ‘피지워터’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삼다수’의 유통권을 놓고 제주개발공사와 현 유통업체인 농심이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삼다수 새 유통사업자 선정 입찰에 7개 식품업체가 뛰어든 것도 생수 시장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반증이다. 생수 붐은 대형마트로도 옮겨 붙어 지난해 이마트의 수입 생수 매출은 30억원으로 전년보다 82.4% 증가했다.
윤종대 신세계백화점 음료·주류 바이어는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생수를 판매하는 워터바의 매출이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아이들을 위한 베이비 워터나 건강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워터는 가격대가 일반 생수에 비해 2~10배 이상 높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심윤희 매일경제 유통부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