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12월 서울 지역 한 정신병원에서 박상길 씨(가명·43)가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지난 1990년 정신병을 이유로 24살의 나이에 집에서 버려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만 14년 만이었다. 지난 2004년 경찰이 신원조회를 통해 박씨의 가족을 찾았으나 그들은 박씨를 냉정하게 외면했다. 당시 담당 경찰은 “가족들은 처음에는 (박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며 “다시 신원조회 결과를 언급하자 나중에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사망 후에도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아 관할 구청은 박씨를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했다. 결국 그는 가족들이 있음에도 화장 후 한 무연고자 납골당에 묻히며 초라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 해 무연고자 장례비용으로 책정되는 비용만 1억8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2 최씨(70·여)는 남편이 병사한 이후 평택시 팽성읍에서 3평 남짓 쪽방에 홀로 살고 있다.
다행히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한 달에 30여 만원의 정부 지원을 받곤 있지만 거의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동네를 돌며 신문과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팔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들어오는 돈은 몇 천원 뿐. 최씨는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오래 산 것 같은데…”라며 인생을 곱씹었다.
전통적인 삶은 곧 가족사다. 본인이 태어나면서 처음 맞는 독신 전기, 혼인으로 부부가 하나 되는 부부 전기, 자녀가 태어나면서 겪는 친자동거기, 막내 아이마저 분가하면서 나타나는 부부 후기, 그리고 배우자가 사망하면서 홀로되는 독신 후기…. 이른바 ‘가족생활주기(family life cycle)’론이다. 하지만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면서 전통적 가족 이미지는 붕괴되고 있다.
굳은 혈연으로 뭉친 운명 공동체, 혼인 공동체적인 결속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37세 아버지, 33세 어머니, 8세 딸, 5세 아들이라는 전형적인 표준가족을 발표했지만 지금은 중단했다. 1980년 4.69명에 달하던 가구원 수는 2010년 현재 2.33명으로 줄었다.
가족의 해체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가족상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통적인 가족틀이 붕괴되면서 어떤 존재도 그 역할을 대신 채워주지 못하는 데 있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4분의 1은 혈연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비혈연가구(1인가구 포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혈연가구가 4분의 1을 차지한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2010년 현재 전체 1733만9000가구 중 혈연가구수는 1299만5000가구로 74.9%를 차지했다. 1980년 93.7%에 달하던 혈연가구수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83.3%로 줄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75% 밑으로 하락했다.
가족의 해체는 광범위하다. 핵가족마저 감소하는 추세다. 부부 또는 부부와 미혼자녀 또는 편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비중은 1980~2000년까지 68%를 줄곧 유지했지만 2005년 65%로 줄어든 데 이어 2010년 61.6%로 감소했다. 조만간 10가구 중 6가구도 안될 것으로 보인다.
대가족은 사라지는 추세다. 부부와 양친 편친 또는 부부와 양친 편친 자녀로 구성된 좁은 뜻의 대가족(직계가족) 비중은 1980년 5.2%에서 2010년 2.3%로 급감했다. 전체 100가구 중 2~3가구 꼴로 주변에서 찾기도 쉽지 않은 비중이다. 범위를 다소 넓혀 조부모와 손자, 기타 혈연까지 포함한 대가족은 같은 기간 25.4%에서 13.3%로 감소했다.
그 자리를 빠르게 메운 것은 1인 가구였다. 1980년대 4.8%에 불과했던 1인 가구 비중은 2010년 23.9%를 차지했다. 독신 남녀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부모를 모시지 않은 자녀들이 늘면서 독거노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꾸리지 않는 독신전기와 가족 없이 지내는 독신후기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는 뜻이다. 1인 가구는 2010년 처음으로 4인 가구를 앞질렀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에 4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31.7%를 차지해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그 이후 감소하면서 2010년 22.5%까지 하락했다. 통계청은 2035년에 4인 가구는 9.8%까지 급감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에 반해 1인 가구는 34.3%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가구 변화는 가족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꾸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반면 애완동물을 가족이라고 인식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 범위를 묻는 질문에 23.4%만이 친조부모를 가족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2005년 63.8%에 비해 크게 감소한 것이다. 또 친손자녀를 가족에 포함한 응답자도 26.6%에 그쳤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범위를 좁게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며 “가족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면서도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만큼 연락을 주고받는 친지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0 세대 간 가족의식 비교조사에서는 청소년 57.7%가 오랫동안 길러 온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볼 수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매일경제신문과 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이 공동으로 전 국민 2000명(만 13~59세 남녀)을 대상으로 가족관을 조사한 결과는 더 암담했다. 부모에 대한 봉양관을 묻는 질문에 대다수 응답자들은 노부모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시설만 좋다면 양로원에 모셔도 좋으냐’는 질문에 국민 100명 중 38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는 2001년 27명이 응답한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장남이 모신다는 생각도 크게 무너졌다. ‘장남이 모셔야 하냐’는 질문에 27.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11년 전 38.6%가 찬성한 것에 비해 더 줄어든 셈이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41.4%가 찬성했는데 이는 2001년 45.5%에 비해 소폭 하락한 것이다.
출산 자녀관도 크게 달라졌다.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자녀는 부부를 유지해주는 끈이었지만 갈수록 이러한 가치관은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있어도 좋아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는 응답은 절반에 가까운 49.4%를 차지했다. 이는 2001년 45.3%에 비해 늘어난 것이다.
또 ‘결혼 후 자녀가 없어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답변은 46%에 달했다. 11년 전 35.4%에 비해 크게 높아진 수준이다. 또 자녀 수는 금전적인 요인이 좌우했다. ‘능력만 된다면 자녀를 많이 갖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무려 64.6%에 달했다. 2001년 절반인 50.2%에 비해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
결혼에 대한 전통적 관념도 붕괴됐다. ‘결혼하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답변은 57.6%로 2001년 45.7%에 비해 높아졌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결혼 전 성관계를 갖는 것이 무방하다’는 응답도 59.9%로 11년 전 47.3%에 비해서 높아졌다. 이에 반해 ‘혼수는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한다’는 답변이 25.4%를 차지해 2001년 19.3% 보다 증가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경제 현실을 반영하듯 직업관도 달라졌다. ‘주부도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78.6%로 4분의 3 이상을 차지했다. 이밖에 ‘여성의 행복은 남편에 달렸다’는 답변은 50.3%로 나타났다. 이는 예전 조사 57.7%에서 소폭 감소한 수준이다.
최인수 엠브레인 대표는 “예전보다 이혼에 대해 관대해졌다”며 “부모에 대해서도 양로원에 모셔도 좋다는 생각이 늘어 효에 대한 인식도 다소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선택일 수 있다는 인식이 늘었다”며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을 반영하듯 주부도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세상은 독거노인, 노숙자, 입양아, 독신자와 같은 말들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심지어 갓 태어난 어린 아이들이 버려지는 것도 모자라 가족 없이 죽음을 맞고 묘지에 묻혀도 찾아오는 가족조차 없다.
우선 경기 악화로 신(新)빈곤층이 늘어나며 버려지는 아이들이 한 해 8000명을 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요보호아동은 8436명에 달한다. 요보호아동은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보호자가 보호를 할 수 없는 아이를 말한다. 지난해 전체 출생아 수(47만1400명)을 감안할 때 산술적으로 태어난 아이 50명 중 1명은 가족의 품을 떠난 셈이다. 이 중 953명은 부모에게 돌아왔지만 7483명은 결국 갈 곳을 잃은 채 양육·보호시설에 맡겨졌다. 복지부가 원인을 조사한 결과 미혼모 등 한부모가정의 아이들이 버려진 경우가 251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부모 이혼(1695명)과 아동학대(1125명)가 그 뒤를 이었다.
가족해체의 여파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돌보는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은 65세 이상 노인(565만명)의 19.9%인 112만4000명에 달한다. 지난 2000년 544만명(16%)에 비해 두 배 넘게 늘었다.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복지부는 오는 2030년이면 전체 노인 5명 중 1명(22.2%)에 달하는 1270만명은 독거노인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처럼 가족 관계의 핵분열이 계속되다 보니 가족 없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 ‘고독사’도 늘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에 따르면 매년 연고 없이 사망하는 행려환자만 400명에 달한다. 이 같은 수치는 경찰관 등에 의해 발견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인도된 사체만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매년 서울시와 경기도가 책정하는 장제 관련 예산만 4억원에 달한다. 더 나아가 핵가족화와 더불어 유교중심의 가족문화가 퇴색하면서 버려지는 무연고 분묘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시립 묘지를 대상으로 해방 이후 최초로 무연고 분묘 일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망우리 묘역을 조사한 결과 9000기 중 688기가 무연고 분묘로 판정받아 개장됐다. 오는 9월에는 용미리 묘역의 무연고 묘역 1000여 기를 개장할 계획이다. 벽제리와 내곡리 묘역도 1125기의 무연고 분묘가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용인시가 지난해 일제조사를 벌인 결과 5244기의 분묘 중 1800여 기만 연고자를 확인했다. 3400여 기는 사실상 버려진 셈이다. 실제 무연고 분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 갑자기 연고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만큼 무연고 분묘 판정은 매우 보수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립 승화원의 선우승태 팀장은 “신문 공고를 내고 전화와 편지 등으로 가족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며 “심지어 꽃 한 송이라도 놓여있는지도 매일 체크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수십 년간 꽃 한 송이 놓는 사람이 없어야 무연고 분묘로 인정된다. 가족 해체로 인해 무연고 분묘 처리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 복지부는 전국 묘지 1430만 여기의 15% 이상이 무연고 분묘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 경우 무연고 분묘 처리에만 2조원 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가족해체가 가속화되면서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보육시설 이용, 노인 돌봄, 이혼 가정의 자녀 관리 등 과거에는 불필요했던 지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가 보건복지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족 해체에 따른 비용은 모두 13조444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각종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혼으로 인한 위자료, 자녀양육비, 별거 중인 자녀를 만나는 데 드는 비용 등이 모두 2조99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11만4300건, 부부 1000쌍당 9.4쌍에 달하는 높은 이혼율 때문이다. 살인이나 성폭행 등 흉악 범죄로 가족이 고통을 겪고 해체되는 데 따른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연구원은 각종 법률비용을 포함해 7139억원이 지출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는 피해자들의 신체·정신적 피해를 치료하기 위해 사회가 부담해야 할 비용과 피해 재산가치 등이 포함됐다.
가족 해체의 사회적 비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핵가족화에 따라 노부모를 모시는 가족이 줄면서 부양 부담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떠안게 됐다. 한국 인구학회가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201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부부끼리 살거나 혼자 사는 비율은 61.8%로 지난 2000년 50.9%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이와 비례해 노인 관련 사회서비스 예산은 급증했다. 복지부가 올해 노인돌봄, 장기요양보험 등 노년층 서비스에 배정한 예산이 3조7920억원에 달한다.
또 노인 일자리 사업(1672억원)을 비롯해 독거노인 돌봄서비스(370억원), 응급안전 돌보미(21억원), 노인돌봄 종합서비스(622억원), 방문건강관리서비스(316억원), 치매 관리(8억원) 등에 3009억원이 배정됐다. 동시에 집에서 직접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줄면서 보육 관련 예산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국회가 올해 0~2세에 대한 무상보육을 도입함에 따라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3조8623억원이 예산에 반영됐다. 더욱이 보육지원이 늘면서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부모들까지 어린이집을 이용해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만 2세 미만 영아들의 경우 애착 형성 단계이므로 가정에서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시설 이용률은 30% 미만이 적정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에 따르면 어린이집 이용률은 지난해 54%에서 56%로 오히려 2%포인트 높아졌다. 시도지사협의회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2000억원이 넘는 추가 예산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더욱 크다”며 “향후 증가 추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급증하는 노년부양비이다. 노년부양비란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숫자를 말한다. 노년부양비는 조사가 처음 실시된 1970년 5.7에서 지난해 말 15.5까지 치솟았다. 더욱이 2050년이 되면 젊은이 100명이 노인 72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세계 평균 전망치 25.7의 3배에 가깝다.
이 경우 사회복지 지출도 함께 급증할 수밖에 없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사회보장 재정 추계를 통해 2050년까지 국고와 지자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 지출이 10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