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일정 규모까지 성장하고 사업이 성숙단계에 들어서면 임원들은 추가 성장을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각화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1960~1970년대의 미국과 같이 극단적인 경우, 핵심 사업에만 집중적으로 주력하던 기업조차 낯선 자들과 동거를 한 사례가 있다.
당시 어떤 글로벌 석유 업체는 컴퓨터 업체를 인수하고 다른 석유 업체는 유통 업체를 인수했던 유명한 예가 있다. 미국의 어떤 메이저 유틸리티 업체는 보험회사를 소유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수의 인재들이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의 임원과 이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 연결점이 없는 사업으로부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상호 관련성이 없는 사업의 조합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다. 미국을 예로 들면 2010년 말 진정한 의미의 기업집단이 22개에 불과했고, 이후로도 3개 기업집단이 분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임원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스킬도 없이 관련 없는 산업으로 다각화함으로써 투자자의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다거나,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시장(평균)보다 다양한 사업에 걸쳐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스킬을 갖춘 기업은 거의 없으므로 다각화는 오히려 주주가치의 상승 잠재력을 제한하면서 무한대의 하락 리스크를 초래한다. 매니저들은 다각화를 고려할 때 미국을 비롯한 선진시장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집단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은 이들이 다각화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핵심 산업이 아닌 사업에서도 최고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상승 잠재력은 제한적, 하락 리스크는 무한대
다각화를 하면 변동성이 줄어들어 주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저비용 뮤추얼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기는 한다. 소규모 투자자들도 다각화를 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량 수준에서 따져보면 실물경제(성장률이나 투하자본순이익률(ROIC) 기준)와 주식시장 모두에서 대부분의 기업집단이 특정 업종에 특화한 전문 기업에 비해 성과가 낮게 나왔다. 예를 들어 2002~2010년 기업집단의 매출은 연평균 6.3% 증가했지만, 전문 기업의 매출은 연평균 9.2% 증가했다. 규모의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전문 기업들의 성장이 더 빨랐다. 여기에선 고객, 유통망, 기술 또는 제조설비를 공유하지 않는 사업부가 3개 이상인 기업을 기업집단으로 정의한다.
전문 기업의 투하자본순이익률은 3% 포인트 상승했으나, 기업집단은 1% 포인트 하락했다. 마지막으로 주주총수익률(TRS) 중앙값은 기업집단이 7.5%, 전문 기업이 11.8%였다.
물론 중앙값이 전체 상황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전문 기업에 비해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집단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기업집단 수익률의 중앙값은 전문 기업에 비해 낮은데, 여기서 분포도를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상승 잠재력은 제한적이지만 하락 리스크는 무한대다. 상승 잠재력이 제한적인 것은 다각화된 기업집단의 모든 사업이 동시에 전문 기업 대비 나은 실적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나은 실적을 낸 사업부의 실적이 그보다 못한 실적을 낸 사업부의 실적에 의해 위축되어, 기업집단 전체의 수익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기업집단은 대개 비교적 성숙한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예상치 않은 수익을 기록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그러나 기업집단의 성숙한 사업은 상승하기보다는 하락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기 때문에 하락 리스크는 무제한적이다. 한 가지 간단한 수학적 사례를 들어보자. 한 기업집단 가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사업부가 벌어들이는 TRS가 20%이고, 다른 사업부의 TRS가 10%라면, 가중 평균은 14%가 된다. 그러나 해당 사업부의 TRS가 -50%라면, 가중 평균 TRS는 다른 사업부가 영향을 받기 전에도 2% 정도로 내려간다. 또한 총량적인 성과가 부진하면 전사적인 동기부여나 고객, 협력업체, 잠재적 임직원의 기업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각화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매니저들이 서로 경쟁하는 투자 대상에 자본을 배분하거나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상호 관련 없는 산업에 속한 사업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스킬이 있느냐다. 지난 20년 동안 22개 기업집단 중에서 높은 성과를 낸 회사와 성과가 낮은 회사의 TRS는 분명히 이러한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통계적 분석을 실시하기에는 모집단이 너무 작지만, 큰 실력을 낸 회사에서 공통된 3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때로는 역발상 투자
높은 성과를 올린 기업집단은 시장에서 저평가됐다고 여겨지는 기업을 사들여 자사의 포트폴리오를 끊임없이 재조정한다. 한 예로 Danaher는 인수 대상을 물색할 때 유명한 Danaher Business System을 활용해 이익률이 높은 회사만을 후보로 삼았다. Danaher는 이 전략을 적용함으로써 지난 20년 동안 피인수 기업의 마진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판매시점관리(POS) 솔루션 업계의 선도업체인 Gilbarco Veeder-Root나 코딩 및 마킹 장비와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인 Videojet 테크놀로지즈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인수 후 이들 기업의 마진은 700bp 이상 개선됐다.
자원배분 적극 관리
많은 대기업들이 특정 연도의 사업 자원 배분을 전년도 배분액 또는 그로부터 창출된 현금흐름에 기초해 정한다. 그러나 높은 성과를 낸 기업집단은 전사적인 차원에서 자원 배분을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운영 요건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초과하는 현금은 모기업으로 이전된다. 모기업이 잠재 성장률 및 투하자본순이익률에 기초해 기존 및 신규 사업 또는 투자 기회 전반에 걸쳐 배분 방식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버크셔 해서웨이의 사업부는 가장 생산성이 높은 부분에 잉여 자본을 배분하고, 모든 투자 건에 대해 사용하는 자본의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자본 관점에서 합리화를 이뤘다.
작고 효율적인 기업센터. 고성과 기업집단은 잘 나가는 사모회사처럼 운영된다. 이들의 기업센터는 리더 선택, 자본 배분, 전략 수립, 성과 목표 설정, 성과 모니터링에 가능한 한 관여하지 않는다. 이들 기업이 광범위한 전사적 프로세스 또는 대규모 공유 서비스 센터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예컨대 운전자본을 줄이기 위한 전사적 프로그램은 찾을 수 없다. 이것이 회사 모든 부분의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Illinois Took Works의 사업부들은 매니저가 회사의 80/20 원칙(회사 매출의 80%가 20%의 고객으로부터 발생한다는) 및 혁신 원칙만 준수한다면 막대한 자율권을 가지고 독립적 경영을 수행한다. 기업센터는 세금, 감사, 투자자 관계, 일부 중앙 집중화된 HR 기능만을 담당한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기업센터는 부서 간 직무를 통합하지 않고 운영한다.
다각화 전략의 역사를 보면 가치를 파괴한 실패 사례가 많다. 다각화를 고려중인 기업 임원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기업이 핵심 산업 바깥의 사업에서 최고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신흥시장의 기업집단
신흥시장의 경제 상황은 미국 기업으로부터 얻은 인사이트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확연히 달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기업집단 구조는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그 사라지는 속도는 국가와 산업별로 편차가 예상된다. 신흥시장의 대규모 기업집단은 선진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제적 혜택을 받는다. 이들 국가는 아직도 중소기업의 능력으로는 조달할 수 없는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은 토지를 매입하고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정부의 승인을 받거나, 공장과 수요처 사이에 상품을 이동하고 공장을 지속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전력에 대하여 정부의 보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은 일반적으로 복잡한 정부 규제를 헤쳐 나가고 비교적 원활한 운영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많은 신흥시장에서 대규모 기업집단들은 더 큰 경력 개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잠재적 매니저들을 유치하는 데도 더 매력적이다.
신흥시장에서 기업집단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이미 살펴보았다. 자본 및 커넥션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한 인프라 및 기타 자본 집약적인 사업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본 및 커넥션에 대한 접근성에 덜 의존적인 IT 서비스 및 제약 등 수출 지향적 기업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일부가 아니라 대규모 기업집단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인도의 IT 서비스 및 제약회사와 중국의 인터넷 업체들이 부상한 사실을 통해 경영 인재 확보에 있어 대규모 기업집단의 우위가 이미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신흥시장이 더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대규모 기업집단의 자본에 대한 접근성 역시 감소할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중요한 산업에서 기회가 점점 제한되면서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우위는 정부 부문에 대한 접근성 밖에 없다. 그 시기는 앞으로 수십 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기업집단의 큰 규모와 다각화는 이점이 아니라 결국 장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