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간혹 특강을 나가 20대 젊은이들에게 종이신문 보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거의 드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신문광고는 여전히 집행되고 있다. 한 해 2000편 가량 만들어지는 TV 광고 중에서 대개 몇 편이나 기억하냐고 물으면 끽해야 10편 안팎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여전히 TV 광고는 봇물 쏟아지듯 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미디어에 대한 확신이 강한 편이다. 물론 전통 미디어를 통한 광고효과가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문처럼 미디어 자체의 접촉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TV 광고처럼 노출을 많이 하는 부자 브랜드 말고는 인지가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과연 낡은 미디어를 통해 광고 메시지를 강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꿩 잡는 매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전통적인 미디어를 통한 광고효과에 대해 의문이 증폭된 것은 꽤 된 일이다. 인터넷을 필두로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의 활용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키워드로 떠오르자 이러한 의혹의 눈초리는 더 매서워지고 있다. 광고주 측에서도 SNS를 활용한 뭔가 앞서가는 광고 활동을 펼쳐보고 싶은데, 이놈의 SNS는 너무 어렵고 다루기도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최근에 이러한 궁금증과 불안감을 해소해줄 만한 똘똘한 아이디어 하나가 선보였다. 버거킹 와퍼버거(Whopper Burger)의 ‘Sacrifice’ 캠페인이다.
버거킹은 근래 몇 년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브랜드의 인지도를 더욱 높이고 판매에도 큰 도움을 주는 데 효과를 보았다. 그래서 늘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드는 온라인 바이럴의 대표선수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버거킹 ‘Sacrifice’ 캠페인 주목
작년 하반기에 집행된 sacrifice 캠페인은 대략 다음과 같은 흐름을 가진 커뮤니케이션 활동이었다. 페이스북에 와퍼버거 무료 쿠폰을 준다는 광고가 뜬다→클릭해 들어가면 무료 쿠폰을 받기 위한 조건이 제시돼 있다→페이스북 친구 중 10명을 삭제하면 무료 쿠폰 하나를 준다는 내용이다→무작위로 팝업된 친구 사진을 클릭하면 불타듯이 없어진다→이런 프로세스로 총 10명을 삭제하면 마침내 무료 쿠폰을 갖게 된다→삭제당한 친구에겐 “네 친구 존이 와퍼버거 무료 쿠폰을 얻기 위해 너를 친구에서 삭제했어!”라는 메시지가 바로 전달된다.
이 프로젝트는 완전 개방형인 페이스북의 구조를 십분 활용한 예다. 싸이월드처럼 폐쇄된 이너서클 형식의 커뮤니티가 아니기에 페이스북에선 누구에게든 친구신청을 하고 별 문제가 없어 보이면 그 신청을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친구 수가 몇백명을 넘어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5000명으로 제한돼 있는 친구 수를 벌써 채워 어떻게 하면 친구를 더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는 글들이 종종 페이스북에 올라올 정도다. 친구 수를 더 늘리려면…? 기존의 친구를 삭제하는 수밖에 없다.
와퍼버거의 sacrifice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인사이트를 활용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페이스북에 등록된 모든 친구와 친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때론 그들을 삭제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버거킹은 이 상황을 엔터테인먼트로 치환해 그것을 회자될 수 있는 요소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삭제됐다는 메시지를 받은 친구들도 기분 나쁘기보다는 도대체 와퍼버거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궁금해하며 인터넷에서 와퍼버거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검색했다는 것이다.
와퍼버거 무료 쿠폰을 얻어 공짜로 버거를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사람들은 어떤 친구를 삭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저울질하는 즐거운 고민 게임에 몰입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엔터테인먼트가 인터넷 구전을 통해 크게 확산됐음은 물론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역시 와퍼버거야!’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주일 만에 23만3906명의 친구가 삭제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약 2만4000명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는 결론이다. 구글에 ‘whopper sacrifice’를 입력하면 8만1600개의 검색 결과가 나올 정도로 회자됐으며 가장 영향력 있는 IT 블로그인 TechCrunch엔 ‘와퍼버거 때문에 페이스북에 불이 났다’라는 글이 실릴 정도였다.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이 프로젝트는 광고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주입식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벗어나 재미있는 놀이터를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재미있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고 난 뒤 그들의 입을 통해 스스로 구전을 일으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메이커가 입 아프게 우리 제품이 좋다고 떠드는 것은 반향 없는 메아리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통적인 미디어에 실리는 메시지의 효력이 상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Let them talk)’가 이 시대 커뮤니케이션의 화두다. 사람들이 그들 입을 통해 제품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효력이 크다. 그들 스스로 홍보 전도사가 돼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마케팅인가.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급변하고 있다. 흔히 인터랙티브 커뮤니케이션이라 불리는 이러한 트렌드는 머지않아 중심에 자리할 것이다. 사람들은 흥미 있는 것에만 관심을 준다. 그 흥미를 주기 위해 광고 화법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