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기관인 인터브랜드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704억 달러가 넘는다. 그리고 이 가치 가운데 코카콜라 ‘병(용기)’의 가치는 총 브랜드 가치의 10% 수준이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단순한 유리병을 넘어 코카콜라 브랜드를 대변하는 아이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러한 평가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코카콜라 병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그 배경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1915년 코카콜라 사장이었던 캔들러는 루트 글라스사의 용기 디자이너 얼딘에게 ‘어둠 속에서 손으로 만져만 보고도 코카콜라임을 확신할 수 있는 병’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코카콜라 병은 멋진 외양은 기본이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독특한 촉감이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택인지 코카콜라 병의 촉감은 곡선미를 강조한 매끈한 병 모양과 더불어 90년이 넘도록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식되고 있다.
우리 브랜드만의 고유한 촉감이 있는가? 향기는? 소리는? 최근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오감 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성공적인 기업들은 오감 브랜딩을 활용해 고객과 브랜드의 결속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효과적인 감성 마케팅 기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오감 브랜드의 현황과 성공 전략을 살펴보자.
고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오감 브랜딩
오감 브랜딩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인간의 신체 감각을 통해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하는 감성 마케팅 활동이다. 오감을 자극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브랜드에 관한 호감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과 브랜드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든다.
싱가포르 항공사는 오감 브랜딩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싱가포르 항공사는 세계 최고 항공사라는 명성을 십수 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에는 무엇보다 오감 브랜딩이 큰 기여를 했다. 싱가포르 항공사는 기내에서 스테판 플로리안 워터스라 불리는 매력적인 향기가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싱가포르 항공사는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기 위해 유명 향수 업체의 도움을 얻어 스테판 플로리안 워터스를 직접 기획, 제작했다. 스테판 플로리안 워터스는 뜨거운 물수건은 물론이고 기내 전체에 퍼져나간다. 싱가포르 항공을 이용한 사람들은 누구나 기내의 독특한 향기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최근 오감 브랜딩의 대상인 인간의 감각은 그 활용 범주가 시각, 청각을 넘어 촉각, 후각, 미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지 않고 시각 또는 청각 위주의 브랜딩 활동을 수행했다.
이러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그동안 기업들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TV 등 매스미디어 중심의 광고 활동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또 마케팅에서의 혁신 활동이 제품 성능 및 디자인(컬러, 외관) 개선 등에 치우침에 따라 상대적으로 촉각, 후각, 미각 등을 활용하고자 하는 동기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인터넷, 길거리 등 브랜드와 고객이 만나는 접점이 다양해지고 고객이 직접 느끼는 감성 품질이 중요해짐에 따라 시각과 청각 중심의 브랜딩 활동만으로는 고객을 유인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되는 오감 브랜딩
최근 성공적인 기업들은 오감 브랜딩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 마틴 린드스트롬은 그의 저서 <브랜드 센스>(역서: 세계 최고 브랜드에게 배우는 오감 브랜딩)에서 오감 브랜딩의 세계를 개척하는 기업들의 현황을 소개했다. 마틴 린드스트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춘> 선정 100대 브랜드들의 35%가 5년 안에 오감 브랜딩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단일 감각을 넘어 오감의 복합적 활용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산업별로 보면 자동차를 선두로 엔터테인먼트, IT, 통신, 운송, 소비재 기업들의 오감 브랜딩 활동이 가속화되고 있다(그림1 참고).
자동차 기업들은 오감 브랜딩의 개척자로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BMW의 i-Drive 다이얼은 촉감 기술이 집약된 대표적 사례다. 운전하면서 손가락 근육과 촉감만으로 700여 가지의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 또 자동차 기업들은 사람들이 새 차를 샀을 때 맡을 수 있는 새 차 냄새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휴대전화 기업들도 고객들의 오감을 공략하고 있다. 컬러, 소리(MP3, 벨소리)를 넘어 이제는 촉각, 후각,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휴대전화 산업에서 오감 융합 트렌드가 가속화되고 있다. 예컨대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은 고객의 손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치감으로 고객을 사로잡고 있다. 아이폰은 다른 휴대전화 업체들이 선보인 터치 방식, 즉 스타일러스 펜으로 누르는 휴대전화에서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휴대전화로 새로운 촉감의 변화상을 보여준 혁신 제품이다.
왜 오감 브랜딩인가?
최근 오감 브랜딩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감 브랜딩은 감성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소비자들의 제품 선택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을 느끼는 감각적 판단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둘째, 오감 브랜딩은 브랜드 충성도 및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 마케팅 전문가인 마틴 린드스트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이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활용할수록 브랜드 결속과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브랜드 가치는 더욱 증가한다(그림2 참고). 사람들은 제품을 보는 것보다 냄새 맡고 직접 만지는 것을 더 좋아하고, 이러한 경우 제품에 대한 호감도 더 커진다.
셋째, 오감 브랜딩은 경쟁사들이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다. 오감 브랜딩의 감각 요소는 경쟁 상품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자사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예컨대 할리 데이비슨의 엔진 소리는 자유와 낭만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경쟁사들이 흉내낼 수 없는 브랜드 고유의 특성이 되었다.
그렇다면 오감 브랜딩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오감 브랜딩의 성공 방안을 알아보자.
고객의 잠재된 오감 욕구를 발견하라
기업이 오감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품에 대해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오감 욕구가 무엇인지 간파하고 이를 충족시켜야 한다. 특히 고객들의 입으로 표현되지 않고, 지금까지 충족되지 않은 오감 욕구를 간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이 고객들의 오감에 대한 욕구를 간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마케팅 조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활용하는 마케팅 조사 방법은 기본적으로 정량조사와 정성조사가 있다. 하지만 서베이 리서치 등과 같은 정량조사는 소비자의 오감에 대한 심리 및 가치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소비자의 감성과 체험이 중요시되면서 정성적 조사의 필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소비자 조사방법론의 권위자인 하버드 경영대 잘트먼 교수는 인간의 사고는 95%가 무의식중에 일어나며 나머지 5%조차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기업은 표적 집단 면접법(FGI), 래더링(Laddering) 테스트, 참여 관찰법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는 고객들이 영화 관람 도중 갑갑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조사를 통해 CGV는 그 해답을 향기에서 찾았다. 이에 따라 전국 상영관에서 편백나무 향을 이용한 산림욕 공조시스템을 운영하게 되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는 갑갑함을 극복하기 위해 심신에 좋은 향기를 뿌려주는 것이다.
일본의 혼다자동차는 40여 년 전부터 자동차 소리 전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에는 음향 기술자와 상품 디자이너, 심리학자 등까지 포함되는데 그들은 문닫는 소리, 엔진 소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최적의 소리를 찾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기술에 오감을 입혀라
기업은 첨단 기술이 인간의 오감을 최대한 담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첨단 기술을 넘어 기술에 인간의 감성을 융합한 휴먼테크놀로지의 구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탁월한 성능을 위주로 해 기능적 품질만으로는 더 이상 고객을 유인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보다는 고객이 오감으로 느끼는 감성 품질이 구매와 고객 만족을 좌우하고 있다.
최근 IT, 음향기기 등 다양한 기업들이 고객의 손끝을 만족시키기 위한 촉감 기술에 눈을 뜨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촉감 등 오감을 접목한 기술은 첨단 디지털 기기와 인간의 감성이 융합된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명품 오디오 및 가전업체인 뱅앤올룹슨은 첨단 기술의 오감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사례로 유명하다. 전화기의 예를 들어보자. 요즘 전화기는 작아지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하지만 뱅앤올룹슨은 전화기의 기본은 걸고 받는 것인 만큼 무조건 작다고 좋은 것은 아니며, 전화기가 얼굴에 닿는 제품이므로 촉감이 중요하다는 제품 개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철학을 반영해 뱅앤올룹슨은 ‘세계 최고의 촉감을 가진 전화기’를 개발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디자이너와 연구원들이 한데 모여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의 장점을 고루 가진 새 재질을 만든 뒤, 표면에는 유리 가루를 압착시킴으로써 최고의 촉감을 가진 전화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자신만의 감각을 트레이드 마크화하라
성공적인 오감 브랜드들은 고객의 마음속에 제품 고유의 감각을 새기고 있다. ‘OO 브랜드 하면 떠오르는 감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고객이 자사의 브랜드를 연상할 때 떠올리고 싶은 감각을 정하고, 이를 고객들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객에게 각인된 감각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 비용 대비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기업은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감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무의식 속에 브랜드가 각인되도록 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브랜드를 매개로 한 기업과 소비자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광고, 프로모션 등 고객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일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의 일관성은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가 흐려지지 않도록 하고 일관된 콘셉트로 캠페인을 전개함으로써 어느 경쟁사도 따라올 수 없는 브랜드 파워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많은 사람들은 앱솔루트 보드카를 떠올릴 때 ‘투명 유리병’을 연상한다. 이러한 결과는 앱솔루트 보드카가 오랫동안 일관되게 실행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공이 크다. 1981년 출시 이후 광고대행사인 TBWA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면서 선보인 앱솔루트 광고는 30년 가까이 핵심가치인 ‘완벽(Perfection)’을 유지하면서 수백 편에 달하는 시리즈로 연재됐다. 앱솔루트 광고의 법칙은 투명 유리병 자체가 크리에이티브(광고 활동 중에서 창조적인 부분)의 중심에 있고, 앱솔루트 할리데이 등 ‘앱솔루트 OOO’ 형태의 두세 단어로 된 광고 카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많은 광고들이 해마다 콘셉트가 바뀌고 캠페인의 방향이 틀어지는 상황에 비추어볼 때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오감 브랜딩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감성 마케팅 활동이다. 성공적인 브랜드들은 인간의 오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명심하자. 기업들이 다양한 감각의 세계로 눈을 떠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