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K7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K7은 현대차 그랜저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준대형차 경쟁에 불을 붙였다. K7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수한 성능, 디자인 등 자동차 자체의 혁신이 성공의 기본 요인이지만 브랜드 네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K7'이라는 이름은 뉴로 마케팅의 결과물이다.
기아차는 준대형 신차의 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국내외 20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활용한 결과 K7이 세련되고 혁신적이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를 브랜드 네임으로 채택했다.
최근 뇌연구에서 도출한 결과를 바탕으로 고객의 구매 태도를 연구하고 이를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 적용하는 뉴로 마케팅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심리학, 뇌과학, 마케팅 등이 새로운 융합 학문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뇌 반응을 통해 고객의 심리를 읽는다
지난해 KBS 교양 프로그램 '과학카페'는 ‘뇌의 욕망-바람기의 비밀’을 방영해 주목받았다. 자신이 바람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작진은 fMRI 실험을 했다. 익숙한 사람(배우자 또는 애인)과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고 뇌의 활성화 차이를 알아보았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배우자를 볼 때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뇌 영상이 연예인 사진이나 처음 보는 매력적인 이성을 볼 때는 변화를 보였다.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인 변연계의 반응이 활발해지고, 애정 등과 관련된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의 분비가 촉진됐던 것이다.
최근 뇌연구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은 매우 크다. 마케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뇌신경을 의미하는 뉴로와 마케팅이 결합한 ‘뉴로 마케팅(Neuro Marketing)’이 부상하고 있다.
뉴로 마케팅은 뇌 영상 촬영, 뇌파 측정, 시선 추적 등 뇌과학 기술을 이용해 소비자의 뇌 세포 활성이나 자율신경계의 변화를 측정해 소비자 심리 및 행동을 이해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다. 뉴로 마케팅의 본질은 소비자의 잠재의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다. 즉 소비자 구매 행동의 상당 부분은 잠재의식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관점이다.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도 뉴로 마케팅의 잠재력을 인정했다. '포춘'은 뉴로 마케팅을 미래 10대 기술로 선정했고, '뉴욕타임즈', '뉴스위크' 등은 음료, 식품, 화장품, 패션, IT, 자동차, 영화 등 다양한 산업에서 뉴로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카콜라, 피엔지, 유니레버, 로레알, 나이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혼다, 20세기 폭스 등은 뉴로 마케팅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특히 코카콜라는 뉴로 마케팅 활용에 선도적이다. 소비자의 뇌 반응을 연구해 브랜드에서 얻는 효용이 상품의 품질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뇌 반응의 활성화를 위해 광고 등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
국내에서 뉴로 마케팅은 아직 초기 단계다. 의학적 차원에서의 뇌신경 과학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뇌신경 과학의 연구 성과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고 이에 기반을 둔 화장품, 자동차, 전자, 인터넷 포털 서비스 분야의 대표 기업 등을 중심으로 뉴로 마케팅이 확대되는 추세다.
뉴로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성의 측정’에 있다. 감성은 이제 기업 경영 활동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감성 마케팅이 대표적인 예다. 감성 마케팅은 시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해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하는 활동이다.
감성 마케팅에 임하는 기업들의 궁금증이자 고민거리는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가 ‘감성의 측정’이다. ‘우리 제품의 촉감이 경쟁사와 비교해 어느 정도 좋을까?’ 등과 같은 문제다. 뉴로 마케팅은 이러한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된다. 오감의 자극을 받은 소비자의 뇌 영역에서 뇌세포 활성 정도를 보여주고, 자율신경계의 변화 상태를 측정해 소비자의 흥분이나 집중, 각성 등의 감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최근 뉴로 마케팅이 부상하는 배경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뉴로 마케팅은 전통적 소비자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용하다. 사실 소비자들은 자신도 잘 모르는 이유로 어떤 제품을 구매하거나 어떤 광고에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기존의 조사 방법으로는 소비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알아내지 못한다.
둘째, 뇌 영상 기술의 발달이다. 뉴로 마케팅에서 가장 유용한 기술은 fMRI라는 뇌 영상 장치다. fMRI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동하면서 혈액이 모이는 현상을 마치 불이 켜지는 것처럼 보여준다. 자극을 주면서 뇌 영상을 촬영하면 소비자의 무의식적인 반응을 파악할 수 있다. 또 뇌파 조사(EEG), 시선 추적(Eye tracking), 피부 전도도 반응(GSR) 등과 같은 자율신경계 반응 조사 기술의 발달도 뉴로 마케팅의 부상을 견인하고 있다.
셋째, 뇌신경 과학과 다양한 학문들의 융합이다. 의학•생물학의 분야를 넘어서서 정치, 경제, 정보기술, 마케팅,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뇌를 중심으로 서로 통합되고 융합 연구가 가속화 되고 있다. 뉴로 마케팅은 의학, 생물학, 마케팅, 심리학의 융합 연구로 볼 수 있다.
뉴로 마케팅의 활용 가능한 분야는 크게 제품 개발, 디자인 개선, 광고 효과 측정, 매장 동선 및 디스플레이 개선 등이다.
뉴로 마케팅을 처음 접하는 기업들은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뉴로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생각을 완벽히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대답은 ‘No’다. 뇌 영상 촬영, 뇌파 조사, 시선 추적 등은 소비자의 뇌에서 어떠한 영역이 활발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려줄 뿐 사고하는 내용은 알 수 없다. 즉 뇌 활성 분석을 통해 애착이나 보상 등과 같은 감성의 종류를 알게 해주고, 기억이나 판단 등과 같은 뇌 활동을 구분해줄 뿐이다. 뇌파 조사나 시선 추적 역시 흥분이나 각성 등 감성의 정도만 보여준다.
● 제품 개발
기업은 뇌 영상 촬영, 뇌파 조사 등에 나타난 뇌 반응을 통해 신제품 개발 콘셉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혼다는 뉴로 마케팅을 활용해 정면에서 보면 마치 화가 난 사람의 얼굴 같은 디자인의 오토바이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사람의 뇌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신경회로인 ‘얼굴뉴런’이 있어서 얼굴과 유사한 형태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더 빨리 인지해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뇌 영상 촬영을 이용한 실험결과 얼굴 모양 디자인의 경우 뇌가 사람의 얼굴을 봤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해 상대편 차가 오토바이를 발견할 가능성이 43%나 향상되었다고 한다.
● 매장 동선 및 디스플레이 개선
기업은 뉴로 마케팅을 활용해 매장 내 고객 경험 개선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시선 추적은 고객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매장 동선을 개선하고, 물건이 더 잘 팔릴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 디자인 개선
과연 소비자들은 디자이너가 의도한 대로 제품의 디자인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할까? 기업은 뇌 영상 촬영, 시선 추적 등에 의한 뇌 반응을 통해 디자인 개선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한 가전업체는 냉장고 소비자의 시선을 추적해 제품의 디자인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했다. 소비자가 냉장고를 보는 시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다. 가전업체는 소비자의 시선이 제품의 어느 부분을 주시하고 있는지, 각 영역별로 소비자가 집중해 본 부분은 어디인지, 시선을 가장 먼저 끄는 곳은 어디인지 등을 분석했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디자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을 개선했다.
● 광고 효과 분석
기업은 광고를 보는 동안 소비자의 감정을 뇌 영상, 뇌파 조사, 시선 추적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한 맥주 광고를 예로 들어보자. 기업은 소비자들이 맥주 광고를 보는 순간에 그들의 흥분·집중 정도를 알 수 있다. 광고를 보는 순간에 수집된 정보는 시선을 끄는 요소와 감성을 크게 유발하는 시간 파악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광고가 기획 의도대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지 여부도 검증할 수 있다.
마케팅 기법, 브랜드 전략 변화 기대
하지만 최근 학자들은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측정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구매할 것인지 예측하는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미국 뉴로 마케팅 학자들이 발표한 ‘신경세포로 본 구매행동 예측’이 대표 사례다. 소비자들이 명품과 같은 매력적인 상품을 볼 때 뇌의 즐거움과 관련된 부분(대뇌 측좌핵)이 더욱 활성화하면 그 상품에 대한 구매로 이어지고, 가격 등 뇌의 리스크와 관련된 부분(뇌섬엽)이 더욱 활성화하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실험결과였다.
뉴로 마케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도 있다. 뇌 영상 촬영의 경우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엿보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 심리를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뉴로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포인트는 무엇일까.
첫째, 잠재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소비심리의 권위자인 하버드 대학 잘트먼 교수는 ‘인간의 사고는 95%가 무의식중에 일어나며 나머지 5%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뉴로 마케팅은 ‘소비자의 선택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잠재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둘째, 뉴로 리서치와 전통적 리서치 방법의 결합이 필요하다. 뉴로 마케팅은 기존 조사 방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법이다. 뇌 영상, 시선 추적 및 뇌파 조사, 설문 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결과 등의 통합은 각각의 정보가 개별적으로 줄 수 없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셋째, 뉴로 리서치를 위한 효과적인 조사 설계가 요구된다. 먼저 뉴로 리서치에 적합한 주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뉴로 리서치로 단순 선호도 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규 매장의 고객 경험 개선 등과 같은 일반적인 조사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주제가 적합하다.
뉴로 마케팅이 향후 마케팅 기법이나 브랜드 전략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현재 뇌과학의 영역에서 아직 규명되지 못한 부분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뉴로 마케팅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