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인 수출산업인 자동차와 조선업에 피크아웃(경기 정점 후 하락)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올해도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이 지속되며 지난해 거둔 현대·기아차의 호실적이 역기저효과로 돌아올 수 있고 조선업은 제한적인 수주물량 감소와 선가 인상 가능성 제한으로 실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난 2022년 이후 반도체업계 피크아웃 이후 인고의 시절을 겪었던 만큼 관련 업계는 이러한 우려를 지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차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62조6636억원, 영업이익은 15조1269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영업이익률은 9.3%로 준수한 효율을 보여줬다. 기아도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99조8084억원, 영업이익 11조6079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11.6%로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순이익은 8조7778억원으로 전년 대비 62.3% 늘어났다. 양 사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약 27조원에 육박하는 기염을 통하며 국내 상장사 최대 영업이익 1·2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모두 사상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10조 클럽을 달성하는 등 이전까지 강세를 보였던 반도체, 2차전지 업체들의 실적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뛰어난 실적에 최근 글로벌 신용평가사 2곳은 연달아 현대차·기아의 신용등급을 올리고 있다. 지난 2월 16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현대차·기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 긍정적’에서 ‘A-,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S&P의 경우 이미 1월 현대차와 기아의 수익성 개선을 이유로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긍정적 전망은 향후 6개월 이내 신용등급이 상향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통상 평가사들 간에 등급을 다르게 책정하는 신용등급 스플릿(Split·불일치)을 꺼리는 신용평가업계에서 신용도의 통합은 신용등급 신뢰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피치 신용등급 평가에서 A등급을 획득한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현대차·기아를 포함해 총 7개에 불과하다. 현대차·기아 이외에는 토요타,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식시장의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최근 정부의 주식시장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 예고에 주가는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실적 피크아웃과 자동차 산업 경쟁 심화 우려가 있지만 올해 실적 추정치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4배 수준”이라면서 현재 주가가 여전히 저평가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PBR이란 기업의 순자산 대비 시가총액을 가리키는 지표로 장부가치 대비 주가의 평가 기준이 된다. 낮을수록 기업 자산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내외적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피크아웃’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기아는 콘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다소 보수적인 판매목표량을 내놓고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 확대 및 연구개발(R&D) 등 질적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대차·기아차의 올해 합산 글로벌 판매목표량은 전년 대비 1.9% 증가한 수준인 744만 3000대로 제시했다. 이러한 목표치를 통해 추산한 실적을 살펴보면 현대차는 연결 매출 증가율 목표는 전년 대비 4~5%로, 영업이익률 목표는 올해보다 낮은 8~9%로 세웠다. 기아는 전년 대비 각각 1.3%, 3.4% 오른 101조1000억원, 12조원의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지난 2월 20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현대차의 지난 1월 신차재고 일수는 93일로 업계 평균 80일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 일수가 늘었다는 것은 신차 판매가 원활하지 않아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1월 신차재고 일수가 50일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상당히 늘어난 수치다. 특히 제네시스는 126일로 나타나 미국 제품 램(RAM·153일)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제네시스 역시 1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실제 현대차의 1월 미국 월간 판매량은 감소 추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네시스를 포함한 현대차의 1월 미국 판매량은 5만 1812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월 대비 7.3% 감소했다. 기아도 판매량에 있어서는 1년 전보다 1.7% 줄어든 5만 2902대를 기록했다.
현대차·기아 합산 판매량 증감 폭은 -4.6%로, 2022년 7월 이후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현대차 측은 ‘역기저 효과’와 모델 변경 등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역대급 기록을 판매한 이후 올해 초는 경제 여건과 금리로 판매 환경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미 기준금리 인하가 예정된 만큼 신차 판매량 증가 추이를 회복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년간 수주 호황기를 겪은 조선업도 피크아웃 우려가 나오는 업종으로 꼽힌다. 올 상반기 선박 발주가 고점을 찍고 하반기에는 발주 축소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올해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2900만CGT(표준선환산톤수)로 지난해 발주량 4168만CGT 대비 30.4%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조선업계는 이미 3년 치 일감을 확보한 데다 카타르 등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가 기대되는 만큼 수익성 확보가 가능한 핵심 선박에 집중해 우려를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시장에선 현재 신조선가(새로 건조하는 선박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며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월 4일 기준 신조선가 지수는 180.38을 기록했다. 조선업계 초호황기로 불렸던 2008년 8월 191.5 대비 94%까지 올랐다.
수주 호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조선업계는 이제 막 실적 반등에 성공한 상황이다.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나란히 연간 영업이익 흑자전환으로 돌아섰고 한화오션의 경우 하반기부터 턴어라운드한 상황이다. 매출이연 효과로 실적 개선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올해 초 분위기도 잇따른 수주 소식에 좋은 편이다.
다만 올해는 단순히 수주 물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향후 3~4년 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상황이라 수익성이 더 좋은 선박에 집중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57만CGT, 96척을 기록했다. 이 중 한국은 97만CGT, 32척으로 중국(136만CGT, 41척)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업체들도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을 지속해 강조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의 경우 2월 6일 콘퍼런스콜에서 지난해 흑자전환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고선가 선박 매출 비중 상승을 꼽았다. 올해도 선별 수주를 통한 수익성 제고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중공업 역시 콘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높은 선가의 LNG 운반선 건조 척수가 증가하는 등 수익성 개선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저PBR 종목인 조선업 역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의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례로 HD한국조선해양의 PBR은 0.8에 불과하다. 기업 순자산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PBR 1 이하 기업은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성중공업 PBR은 1.66, 한화오션은 1.72로 두 기업도 2를 넘지못하고 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조선사들은 연초 수주 모멘텀은 강력한 편으로 특히 HD현대그룹은 이미 올해 수주 목표의 22%를 확보한 상황”이라며 “특히 암모니아 운반선은 HD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연초 수주에 공통으로 포함되어 현 수주 잔액의 15%에 해당한다”라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선가가 높은 암모니아 운반선 수요 증가는 한국 조선사들에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선업에 대한 피크아웃 우려는 이미 한국의 주력 선종인 LNG선과 컨테이너선 발주 비중이 높아 둔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원은 이에 대해 “현재 수주 추세로 볼 때 한국의 주력 선종이 컨테이너선과 LNG선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라며 “암모니아선은 최근 지정학적 요인에 따른 물동량 증가와 에너지 전환에 따른 미래 선박 활용성이 높아지고 있어 2022년 대비 155%가량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