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전 브랜드들이 기존의 틀을 허물고 서로 장점을 흡수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 공략에 나섰다. 당초 밀레, 지멘스와 같은 유럽 가전 기업과 삼성과 LG 같은 국내 기업들은 소비자 지향점이 달랐다.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고가 라인업을 앞세워서 프리미엄 수요를 노렸고 삼성과 LG 등 국내 대표 가전사들은 편의성과 효율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경계가 허물어졌다. 유럽 전통 강호 기업들은 스마트홈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편의성을 강조했고 국내 기업들은 프리미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삼성전자의 마이크로LED TV.
▶삼성전자 유럽 ‘빌트인’ 시장서 두각
삼성전자는 올해 초 국내에 출시한 비스포크 프리미엄 제품군 ‘비스포크 인피니트’ 라인을 12월부터 유럽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인피니트 라인은 냉장·냉동·김치·와인 기능을 전문적으로 구현하는 1도어 냉장고와 대용량 4도어 냉장고, 오븐·인덕션·스마트 후드·식기세척기 등 제품으로 구성된다. 일반 비스포크 제품보다 내구성이 강한 고급 소재를 적용해 ‘빌트인 룩’ 디자인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가 유럽에 비스포크 가전을 처음 선보인 것은 2020년이며, 현재는 유럽 20개 이상의 국가에서 다양한 비스포크 가전을 판매하고 있다. 비스포크 냉장고의 경우 올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6배 이상 성장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독일 IFA 2022 현장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하반기 네오 QLED, 마이크로 LED 비스포크 등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해 솔루션을 찾으려고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천만다행”이라며 “공부를 더 해서 사업에 견조한 실적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수요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TV 시장에서는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판매를 확대해 프리미엄 수요를 선점, 수익성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가장 대표적인 프리미엄 TV 라인업은 마이크로 LED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89인치 제품의 국내 전파인증을 받았고, 최근 101인치 제품의 전파인증도 마쳤다. 전파인증은 국내 시장에 전자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마이크로 LED TV 제품 라인업 확대·판매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업계는 이르면 3분기, 늦어도 4분기에는 이 제품들의 국내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는 10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이하의 LED 소자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액정표시장치(LCD) 백라이트에 장착되는 미니 LED 또한 작은 소자를 사용해 개념이 비슷해 보이지만, 마이크로 LED는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自發光) 특성을 지니고 있어 액정(LC)이 필요 없다. 오히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유사한 형태다.
마이크로 LED가 적용된 디스플레이는 명암비, 응답 속도, 색 재현율, 시야각, 밝기, 최대 해상도, 수명 디스플레이의 모든 면에서 기존 LCD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녔다. 이런 특성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TV 제조사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두 회사 각각 ‘더 월’과 ‘매그니트’라는 상업용 사이니지(공공장소 등에 설치되는 디스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가정용으로 110인치 마이크로 LED TV를 지난해 초 내놨다. 이를 통해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초대형 고화질 TV 시장을 동시에 선점하려는 게 삼성전자의 의도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89인치 마이크로 LED TV의 생산을 9월 베트남 공장 등에서 시작한다. 판매 가격은 기존에 알려진 89인치 8만달러(약 1억원), 101인치 9만달러(약 1억2000만원)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89인치 제품의 경우 환율과 시장 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1억원 미만으로 책정될 가능성도 있다.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
▶LG전자도 프리미엄 공략 나서
LG전자는 전에 없던 새로운 냉장고를 공개하면서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나섰다. ‘IFA 2022’에서 ‘무드업(MoodUP)’ 기능을 갖춘 냉장고 신제품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 제품은 고객의 기분과 취향, 상황에 따라 언제든 간편하게 색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이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냉장고 문 표면에 LED 광원과 광원으로부터 유입된 빛을 고르게 확산시키는 도광판을 적용했다. 고객은 LG 씽큐 앱을 통해 오브제컬렉션 컬러를 포함한 냉장고 도어 상칸 22종, 하칸 19종의 컬러를 원하는 대로 조합해 적용할 수 있다. 컬러를 변경할 수 있는 도어가 4개인 상냉장 하냉동 냉장고의 경우 17만 개가 넘는 색상 조합이 가능하다.
LG전자는 고객이 색 조합에 대한 고민 없이 무드업 기능을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LG 씽큐 앱에 계절, 공간, 힐링 등 테마별 옵션도 제공한다. 계절 테마는 봄·여름·가을·겨울 등 각 계절의 특징을 표현하는 색상으로 구성해 계절에 따라 알맞은 집 안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공간 테마는 파리, 산토리니, 와이키키 등 세계 유명 도시의 감성을 표현하며 랜선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힐링 테마는 새벽녘, 석양, 비 등을 표현하는 컬러를 사운드와 함께 조화롭게 구성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고객은 LG 씽큐 앱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이 엘지, 가을가을해 색으로 설정해줘’와 같이 테마명을 포함한 간단한 음성 명령만으로 손쉽게 제품 색상을 변경할 수 있다. 신제품은 고객이 제품 정면에 약 60㎝ 이내로 가까이 다가가면 미리 설정된 색상으로 점등된다. 한 번 색상이 들어오면 30분간 유지된 후 자동으로 꺼진다. 색상 유지시간은 5분에서 30분까지 5분 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LG전자는 신제품 중 상냉장 하냉동 냉장고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탑재했다. 이를 통해 고객은 69개 음원으로 구성된 뮤직컬렉션을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즐길 수 있다. 뮤직컬렉션은 티타임, 생일파티, 키즈, 라운지 등 상황에 맞는 음원들로 구성돼 있다. 고객이 LG 씽큐 앱에서 뮤직컬렉션을 선택하거나 ‘하이 엘지, 티타임 틀어줘’라고 테마명을 말하면 스피커에서 음원이 재생된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스마트기기와도 연결할 수 있다.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은 고객이 가까이 다가가면 점등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제품 조명을 켜고 끄는 알람 기능을 제공하며 고객과 소통한다. 냉장고 도어가 장시간 열려 있으면 조명을 깜빡이며 이상상태를 알린다. 어두운 밤 고객이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다가가면 도어 하단 조명을 켜 부딪치지 않게 돕는다. 도어 조명에 따른 전기요금의 경우 LG전자는 한 달에 2700원가량(누진세 적용 제외) 추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은 노크온 기능 유무에 따른 상냉장 하냉동 냉장고 2종, 김치 냉장고 등 총 3종이다.
IFA 2022 밀레 글로벌 콘퍼런스 현장.
▶유럽 가전사들 스마트홈 영역 강화
이와 반대로 유럽 가전사들은 그동안 약점으로 꼽혔던 스마트홈 영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리미엄 가전 기업 밀레는 IFA 현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전기요금 절감에 기여하기 위해 스마트홈 신기능을 소개했다. 밀레 기기 간 연결성은 물론 밀레 클라우드 기술을 이용한 아마존, 구글, 마젠타, 스마피 등 제3자 스마트홈 시스템과의 확장성도 대폭 높였다.
밀레는 새로운 개념의 후드가 결합된 투인원 인덕션 신제품 ‘KMDA 7272 사일런스’와 ‘KMDA 7473 사일런스’, 최고 등급의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K 4000’ 프리스탠딩 냉장고 등 신기술을 적용한 주방가전을 선보였다.
신제품들의 핵심은 스마트홈 시스템을 통해 에너지 저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밀레앳홈(Miele@Home)’ 애플리케이션 내 ‘소비량 대시보드’ 기능을 추가했다. 친환경 가전제품 사용 소비자는 늘고 유지비용은 줄어든다. 글로벌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밀레는 2022년 상반기 에너지 효율 A등급 식기세척기 시장에서 73.7%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터 휘빙거 밀레 스마트홈 사업부 수석 부사장은 “과거에는 에너지 절감 프로그램들이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최근 소비자들은 에너지 효율성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사용 패턴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비량 대시보드 기능은 특정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소모된 물과 전력 정보를 제공하고, 주·월·연 단위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횟수와 총 제품 가동 횟수를 보여준다.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 사용자에게 에너지 절감 목표를 인지시켜 소비자의 친환경 활동 참여를 이끄는 게 특징이다. 나아가 밀레는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등 인공지능(AI) 스피커뿐 아니라 3자 스마트홈 제어 시스템과의 연동을 확대했다. 독일 마젠타 스마트홈, 벨기에 스마피 에너지 관리 시스템 등과의 협업을 늘린 것이다. 예컨대 스마피 시스템으로 모든 밀레 기기의 에너지 소비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밀레앳홈’ 앱 내 AI 기능을 통한 신기능이 눈에 띈다. 카메라가 오븐 요리 과정을 제어하는 ‘스마트 푸드 ID’는 음식 이미지를 자동 감지해 음식에 적합한 조리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기능이다. 갓 구운 피자와 냉동 피자를 구분하는 등 약 25종의 음식을 AI로 가려낼 수 있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