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강자가 없는 새벽배송 시장 전쟁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전통의 유통 공룡 롯데와 편의점업계 1위 BGF가 야심차게 새벽배송 시장 석권에 나섰으나, 고배를 마시고 최근 사업에서 철수했다. 마켓컬리,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등 새벽배송 회사들은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공개(IPO)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양대 산맥인 쿠팡은 눈 깜짝할 새 새벽배송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점유율 1위인 네이버도 올해 하반기부터 새벽배송에 참전한다.
▶롯데·BGF 등 사업 포기
유통업계에 따르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20년 2조5000억원에서 내년에는 11조9000억원으로 5배가량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성장에는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젊은 세대는 물론 온라인 신선식품 구매를 꺼리던 5060세대까지 새벽배송을 경험하며 소비자의 신선식품 구매 패턴이 바뀐 게 한몫했다.
이처럼 새백배송 시장이 급성장 추세를 보이자 스타트업은 물론 전통의 유통 업체들도 관련 시장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최근 이랜드리테일은 새벽배송에서 유일한 흑자 회사인 오아시스마켓 지분 3%를 확보했다. 오아시스마켓의 배송 인프라스트럭처를 활용해 흑자를 내는 새벽배송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다. 이랜드리테일은 전국 30여 개 오프라인 식품 전문 할인매장 ‘킴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SSG닷컴 ‘네오’ 물류창고.
오아시스마켓의 경우 지난해 매출은 50% 증가한 3570억원, 영업이익은 57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를 냈다. 이는 2018년 3억원, 2019년 10억원, 2020년 97억원에 이은 연속 흑자다. 회사는 경기도 성남시와 의왕시에 하루 최대 3만 건을 배송할 수 있는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오아시스마켓은 새벽배송을 통해 판매되지 않은 재고를 전국 50여 개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해 재고 폐기율을 낮춘다. 오프라인 매장으로 보낸 상품은 할인 등을 적용해 판매되기 때문에 다시 재고가 될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하루에 두 번 사용할 양의 물류만 들여 모든 재고를 매장에 진열하는 형태로, 재고를 보관할 창고 임대비용이 별도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1위인 네이버는 올해 하반기부터 육아, 생필품 등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새벽배송 테스트를 진행한다. 네이버의 새벽배송 서비스는 CJ대한통운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이뤄진다.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은 올해 상반기 경기도 용인시 남사·여주시, 이천시에 풀필먼트센터를 열고 하반기에도 3개 이상의 풀필먼트센터를 추가로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네이버는 지난 3월부터 SSG닷컴과 협력해 장보기 서비스 내에 새벽배송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밤 12시 이전까지 상품을 주문하면, SSG닷컴 자동화 물류센터 네오(NE.O)에서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물품을 배송하는 형태다. 이때 네이버의 새벽배송과 ‘내일도착(익일배송)’, ‘당일도착(당일배송)’ 등 서비스는 이미 관련 시설이 구축돼있는 CJ대한통운의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양사는 2020년 10월 지분교환을 통해 협력 관계를 맺고, 지난해 곤지암·용인·군포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한 바 있다. 해당 물류센터에는 네이버의 물류 수요 예측 인공지능(AI) 모델인 클로바 포캐스트, CJ대한통운의 고정노선 운송 로봇(AGV) 등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 안착돼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자사가 취급하는 상품 유형이 다양한 만큼 CJ대한통운을 비롯해 다양한 스타트업들과 동대문 패션 특화 배송, 희망일 배송, 프리미엄 배송 등 다양한 배송 포트폴리오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 물류를 활용한 새벽배송에는 오프라인 유통의 대명사 코스트코도 합류했다.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는 지난달 30일부터 새벽배송 서비스인 ‘얼리 모닝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과 수도권(경기·인천) 일부 지역이 대상이다. 온라인에서 5만원 이상 상품을 구매하고, 오후 5시 전까지 결제를 완료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물건을 무료로 배송해준다. CJ대한통운이 배송을 맡고 취급 품목은 과일·채소 등 신선제품, 치즈·버터·우유 등 유제품, 베이컨·소시지 등 가공 육류제품 등으로 한정했다.
달걀, 채소, 육류 등 신선식품을 포함한 전체 음식료 온라인 시장 규모는 2017년 10조4000억원에서 2021년 32조8000억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음식료품 비중은 25.2%로 가전(58.1%), 화장품(39.4%), 패션(31.7%) 등에 크게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 성장성이 크기 때문에 유통 기업 모두가 시장에 노크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마켓컬리가 처음 선보인 새벽배송은 ‘유통혁신’의 키워드로 강조되며 온라인 확장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올라섰다. 늦은 밤에 물건을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이면 상품이 도착하는 빠른 배송에 소비자들이 환호했다. 다만 새벽배송은 높은 폐기율과 함께 재고 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배송 인건비가 주간보다 2배는 더 들어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최근 물류비 상승 여파에 시장에 새로 입성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시장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사업을 철수하는 기업도 늘었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은 지난 4월 새벽배송 시장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해당 사업을 접었다. 롯데온은 2020년부터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영업손실 45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폭이 전년 동기 대비 57% 커지자 철수 결정을 내렸다. 대신 롯데쇼핑은 롯데마트몰의 2시간 바로배송, 롯데슈퍼의 1시간 바로배송 등의 서비스에 집중한다. 롯데온 관계자는 “한정된 자원과 인력을 경쟁력이 있는 ‘바로배송’에 집중하기로 했다”며 “새벽배송으로 이미 자리 잡은 회사들 사이에서 효율적 배송에 관한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쿠팡이 운영하는 물류센터 모습.
2018년부터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었던 BGF의 헬로네이처도 최근 출혈 경쟁이 지속되고 지난해에만 271억원의 손실을 기록하자 서비스를 종료했다. BGF 측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헬로네이처의 새벽배송 사업을 종료하고, 비투비(B2B) 사업으로 전환한다”며 “대신 역량을 집중해 프리미엄 신선식품 소싱 및 공급, 차별화 상품 개발, 온라인 채널 제휴 판매 등으로 사업영역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 GS프레시몰도 이달 7월 말까지 새벽배송 서비스를 유지한 뒤 종료하기로 했다. 2017년 7월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든 지 5년 만이다. 그동안 GS프레시몰은 서울·수도권에서 오후 11시 전 주문한 상품을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해 왔다. GS프레시몰은 자체 공지를 통해 "품질 좋은 신선식품을 제공하기 위해 새벽배송 중단이라는 결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GS프레시몰은 새벽배송 종료 이후 신선식품, 생필품 등을 주문 1시간 이내에 배송하는 '오늘배송' 서비스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회사는 올해 3월까지만 해도 1분기 새벽배송 누적 이용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50% 늘었다고 밝히며,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지방 권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대내외 변수가 커지며 결국 서비스를 접게 됐다.
▶경쟁 치열해지며 화물차 확보전까지
새벽배송 확대와 함께 바로배송 등 유통업계 전반에서 배송 역량 강화가 화두로 떠오르자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 확보전이 뒤따르고 있다. 온라인 주문 상품 배송을 위해 영업용 화물차임을 증명하는 노란색 번호판이 필요한데, 정부가 영업용 차량 신규 허가를 제한하면서 번호판 대당 가격이 4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최근 국내 유통 기업들은 저마다 온라인 배송 확대 기조와 함께 영업용 화물차를 확보하기 위해 물밑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등록되지 않은 화물차는 배송 등 유상 운송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정부는 화물차 공급 조절을 위해 2004년부터 영업용 화물차를 허가제로 전환했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플랫폼 ‘롯데온’.
특히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목표로 전기 트럭에 허용했던 친환경 화물차 신규 등록마저 중단됐다. 현재 1t 이하 화물차는 전국적으로 15만 대 수준이다. 이 때문에 배송 물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번호판을 사거나 빌려서 영업하는 수밖에 없다. 2019년 2600만원 선이었던 1t 트럭 영업용 번호판은 지난해 3800만원까지 뛰었고, 올해는 4000만원 수준으로 올라섰다. 번호판을 구매하는 대신 노란색 번호판을 빌려 쓰는 지입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이처럼 영업용 화물차 운용비용이 계속 늘어나자 흰색 번호판이 달린 개인 자가용 화물차에 물건을 싣고 배송하는 불법 행위도 늘고 있다. 현장 상황이 어려워지자 행정 당국조차 이를 묵인하는 행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흰색 번호판 차량을 통한 유상 운송은 쿠팡처럼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해 배송 시스템을 마련하고, 직매입한 상품을 배송하는 때에만 허용하고 있다. 온라인 상품 배송기사인 A씨는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한 불법 유상 운송 행위는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누구도 제대로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물차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올해 초 두 달 넘게 진행됐던 택배노조 파업 등 상품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하면서 쿠팡 등 이커머스 대기업은 택배업에 직접 진출해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쿠팡은 지난해 1월 국토교통부에서 화물차 운송사업자 자격을 취득했고, 3자 물류배송(3PL)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관련 인원을 대거 채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물류를 직접 쥔 이커머스 기업과 아닌 기업의 차이가 화물차 확보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며 “이커머스 기업이 적자를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이 곧 물류를 장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