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예능과 토크쇼 등 콘텐츠를 기반으로 상품 판매와 엮어내는 ‘콘텐츠커머스’가 유통업계의 새로운 마케팅 문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콘텐츠에 제품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향상하고 고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다. 유튜브나 틱톡 등 영상 플랫폼의 콘텐츠에 익숙한 MZ세대의 습관을 자극함과 동시에 인위적인 제품간접광고(PPL)의 한계를 대체하는 마케팅이다.
▶1세대 소셜커머스 티몬, 콘텐츠로 제2의 전성기 오나
2010년 초, 1세대 소셜커머스로 쿠팡·위메프 등과 유통업계를 주름잡던 티몬은 최근 콘텐츠 커머스 사업에 방점을 찍고 회사를 제2의 전성기로 이끌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인플루언서 공동 상품 기획 ‘위드티몬(with TMON)’을 출시하고, 웹예능 <광고천재씬드롬> 시즌1과 시즌2를 잇달아 선보이며 콘텐츠를 회사의 신규 먹거리로 키우는 중이다.
먼저 인플루언서와 협업해 공동으로 단독 상품을 기획하는 자체 브랜드 ‘위드티몬’이 있다. 위드티몬은 인플루언서의 전문성과 티몬의 커머스 노하우를 결합해 고품질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인플루언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는 참신한 기획으로, 고객들에게 높은 상품 신뢰도와 재미도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생산자가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Direct to Consumer) 방식이어서 유통구조가 단축되기도 하다.
티몬이 처음 선보인 ‘정육왕 편’은 고깃집 리뷰를 하는 유튜버 정육왕과 함께 한우를 파는 것이었다. 라이브커머스 티비온에서 ‘정육왕 한우’ 상품을 판매하고, 상품을 기획하는 전 과정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한우 등심의 불필요한 부위를 제거하고 각 부위에 맞는 두께와 구성을 만드는 장면을 포함해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을 담았다. 실제로 정육왕 편 공개와 함께 첫날 준비한 수량이 모두 매진되고 매출도 누적 3억원을 넘기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티몬 관계자는 “매출의 90% 가까이가 정육왕의 콘텐츠를 시청하고 티몬으로 유입돼 상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선보인 ‘공격수 셰프’ 편도 하루 만에 준비 수량이 매진된 데 이어, 일주일이 채 안 돼 누적 매출 1억5000만원을 달성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플루언서가 직접 출연해 상품 기획 스토리와 부위별 특징, 맛있게 굽는 법 등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전달하는 게 특징”이라며 “유명 크리에이터가 가진 정보성과 신뢰 자본을 상품으로 끌어온 것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웹예능 형태로 만든 콘텐츠도, 에피소드 편당 2억1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티몬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개그맨 정준하와 함께 ‘광고천재씬드롬’이라는 제목의 웹예능을 제작했다. 총 6편의 이 웹예능은 정준하가 KFC, 피자알볼로, 네네치킨, 배스킨라빈스, 명륜진사갈비, 이디야 등 광고를 의뢰한 기업을 찾아가 기업 홍보 전단을 직접 그려주고, 의뢰 대가로 고객 혜택을 얻어내는 콘셉트로 진행된다. 티몬 관계자는 “명륜진사갈비는 이틀 만에 최고 매출 10억원을 달성했고, 누적 15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해당 콘텐츠는 모두 티몬 소유의 유튜브 채널 ‘놈 스튜디오’에서 송출됐다. 영상 하단 설명란마다 이용자가 구매할 수 있도록 티몬 해당 상품 구매 페이지 링크를 적었다. 이용자가 상품이 담긴 콘텐츠를 보고 즉시 상품을 살 수 있도록 조치해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것이다. 토크쇼 형태의 웹예능 콘텐츠도 제작됐다. 티몬이 선보인 <게임부록>은 국내 첫 게임전문 토크쇼 형태의 웹예능이다. 방송인 김희철, 김성회, 성승헌 등 3명의 MC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게임과 업계를 아우르는 스토리와 게이머로서 솔직 담백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
한편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대신, 알려진 콘텐츠 시리즈에 자사의 상품을 자연스레 노출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콘텐츠 스튜디오 플레이리스트와 손잡은 게 대표적인 예다. 플레이리스트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과 유튜브 등에서 <에이틴> <백수세끼> 등 다양한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BGF리테일은 플레이리스트가 보유한 콘텐츠와 연계한 상품을 개발한 뒤, 드라마와 예능 등에 CU의 브랜드 및 상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해 브랜드 친밀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SSG닷컴과 CJ ENM이 협업한 웹예능 <거상 박명수>
라이브커머스 자체를 예능형으로 만들며 재미를 유발하는 기업들도 많다. 11번가의 라이브방송 플랫폼 ‘라이브11(LIVE11)’은 11번가 최고의 인기 쇼핑 콘텐츠다. 11번가는 자체 기획한 10개의 예능형 고정코너를 운영 중이다. ▲‘털업’(오프라인 매장을 습격하는 매장 털기 방송) ▲‘찐텐 리뷰’(핫한 신상 궁금증 해결하는 리뷰 방송) ▲‘생(生)쑈’(전국각지의 제철 특산물 먹방) 등이다. 지난해 11월 털업 애슐리 편은 역대 라이브 방송 최고 시청수인 163만 회를 기록했고, 올해 2월 진행한 삼성 ‘갤럭시S22’ 시리즈 라이브 방송도 2시간 만에 132억원의 거래액을 달성했다. 11번가 측은 “라이브방송 흥행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미’”라며 “쇼핑과 예능을 결합한 ‘쇼퍼테인먼트’ 코너를 신설하고 유명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를 출연자로 섭외하면서 MZ세대와의 접점을 늘렸다”고 강조했다.
홈쇼핑 업계에서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디지털 콘텐츠 시청이 늘어난 고객들의 미디어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라 예능형 콘텐츠로 눈을 돌렸다. 먼저 롯데홈쇼핑은 콘텐츠 제작사 초록뱀미디어와 손잡고, 예능 콘텐츠를 공동 제작 중이다. 롯데홈쇼핑은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초록뱀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확장과 콘텐츠 지적재산권(IP)에 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250억원을 직접 투자하며 2대 주주의 지위를 확보한 바 있다.
▶11번가·롯데홈쇼핑·SSG닷컴 ‘라이브커머스’로 콘텐츠 강화
공동 제작하는 첫 번째 콘텐츠는 <랜선뷰티>다. 여성 고객 시청률이 가장 높은 뷰티 프로그램의 판매 노하우를 콘텐츠로 풀어내는 것으로, 롯데홈쇼핑의 대표 쇼호스트 이수정과 초록뱀미디어의 자회사 스카이이앤엠 소속 배우 박은혜, 뷰티 인플루언서, 게스트들이 출연해 뷰티 관련 최신 트렌드와 출시 예정 신상품 등을 소개한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라이브커머스는 주로 상품 판매에만 주력해왔다. 요즘 MZ세대가 웹예능 콘텐츠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상품 판매보다는 재미 유발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콘텐츠커머스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홈쇼핑 CJ온스타일도 콘텐츠커머스 프로그램 <브티나는 생활>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지난 3월 CJ온스타일에서 출시한 이 프로그램은 출시 일주일 만에 시청 수가 45만 회를 넘기고, 25억원의 주문금액을 기록하는 등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브티나는 생활>은 라이브커머스 방송 전에 판매 상품의 리뷰와 활용법을 소개하는 디지털 콘텐츠를 미리 제공하는 식이다. 총 6회의 라이브커머스 진행 전 각각의 디지털 콘텐츠를 유튜브 채널(tvN D ENT)에 먼저 공개했다. CJ온스타일은 이 프로그램을 자사 고유 IP(지적재산권)로 키워나간다는 계획이다.
웹예능과 라이브방송 두 포맷을 연계해 섞어낸 콘텐츠도 있다.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 쇼핑몰 SSG닷컴은 지난 4월부터 CJ ENM과 협업에 웹예능 <거상 박명수>를 선보이고 있다. tvN D ENT 유튜브 채널과 SSG닷컴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고 있는 이 콘텐츠는 총 8편의 에피소드를 오는 7월까지 격주로 노출하고 있다.
<거상 박명수>는 조선 최고의 거상 역할을 맡은 연예인 박명수와 미국 거상의 딸 역할을 맡은 댄서 가비가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시청자들에게 제공할 쇼핑 혜택을 마련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첫 화에서는 박명수와 가비가 ‘아모레퍼시픽’을 무작정 찾아가 프로모션 혜택을 얻어내는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이와 함께 SSG닷컴에서는 박명수가 등장하는 라이브방송도 진행했다. 웹예능과 동일한 조선시대 콘셉트로 설화수, 헤라, 프리메라 등 아모레퍼시픽 대표 뷰티 상품 판매방송을 진행했는데, 1분 이상 시청하는 경우 11% 할인 쿠폰도 제공했다.
김효은 SSG닷컴 브랜드마케팅팀장은 “지난해 11월 ‘하루살이 짱상무’와 연계해 진행한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통해 스토리텔링 요소가 시청자들의 구매를 이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혜택에 스토리를 입힌 이번 콘텐츠가 쓱닷컴을 만나는 새로운 접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홈쇼핑 <랜선뷰티>
▶콘텐츠 IP 강화로 고객 유입·평균 매출 늘어
유통 기업들이 콘텐츠커머스에 집중하는 것은 고객이 늘고 평균 매출이 올라가는 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티몬은 올해 1월 콘텐츠커머스 강화를 선언한 이후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티몬은 지난해 4분기 기획형 상품과 콘텐츠커머스를 본격 추진한 이후부터 매출이 오름세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콘텐츠커머스를 결합한 신선식품 부문은 두드러진 증가 추이를 보였다. 고품질 신선식품 산지직송 서비스 ‘티프레쉬’와 인플루언서 브랜딩 상품인 ‘위드티몬’ 등을 진행한 이후 신선식품 매출이 이전과 비교해 50% 상승했다. 특히 티몬을 방문한 순 이용자 수는 콘텐츠커머스를 강화한 이후 3개월여 만인 올해 4월 기준 740만 명으로 4.4% 늘었고(전월 대비), 고객당 평균 구매금액은 8만6000원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4% 증가했다.
통상 업계에서는 이커머스의 구매 전환율이 0.3~1%에 불과한 데 비해, 라이브커머스와 웹예능 등 영상 형태로 소통하는 경우 구매 전환율이 6%까지 뛰는 것으로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브랜드 상품이 드라마 등에 등장하는 방식은 주로 PPL이었다. PPL은 협찬 형태로 들어오는데, 제품 자체를 위한 게 아니라 곁가지처럼 영상에 들어오는 것이라 영상 흐름과 맞지 않고 어색하게 느껴진 게 많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신 콘텐츠커머스는 상품을 설명하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재미를 곁들인 스토리 라인 속에 자연스레 상품을 녹여낸다.
고객들은 그냥 재밌는 영상을 보다가 상품이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발견형 소비가 가능한 게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콘텐츠커머스는 곧 콘텐츠로 고객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이미 전 세계 굴지의 유통업체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커머스 회사가 OTT 플랫폼을 운영하는 게 일반적인 예다.
전 세계 최대 이커머스 업체 아마존은 올해 3월 영화 <007> 시리즈 제작사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사 MGM을 85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는 아마존이 그동안 인수합병(M&A)한 기업들 중 유기농 식품 매장 홀푸드마켓 인수(137억달러)에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아마존이 거액을 들여 영화사를 인수한 이유도 명쾌하다.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 IP를 강화해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한 명의 고객이라도 콘텐츠를 보기 위해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하고 나면,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매할 유인이 커진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커머스+콘텐츠’ 강화는 국내 대표 이커머스 회사인 쿠팡의 쿠팡플레이 OTT 강화와도 연계되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백화점이 2020년에 260억원을 들여 자회사 마인드마크를 설립하고 콘텐츠 제작사인 실크우드, 스튜디오329 등을 인수한 것은 자체 콘텐츠 발굴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라이브방송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이제 라이브방송 포맷도 차별화돼야 하고, 특정 콘텐츠를 소비하는 팬덤이 있느냐가 지속적인 수익구조와 연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