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맥주 4캔에 1만원 어떻게 가능한가? 수입신고가는 500㎖ 한 캔 500원 미만, 같은 원가라도 국산맥주 출고가는 두 배
김기정 기자
입력 : 2019.03.06 15:05:46
수정 : 2019.03.06 15:06:38
수입맥주의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무엇보다 수입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국산맥주는 소주에 타먹는 ‘소맥용’이란 인식이 강하다. 주류업체들도 ‘맛’보다는 목넘김이 시원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한국 맥주의 고질적인 단점인 ‘개성 없는 맛’을 수입맥주가 보완해주는 셈이다. 국내 수제맥주 회사들이 다양한 맛으로 수입맥주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4캔에 1만원’으로 무장한 수입맥주에 역부족이다. 국산맥주도 수입맥주처럼 가격을 낮추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게 소비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불거진 관세청의 수입맥주 신고가 조사를 계기로 수입맥주 가격의 비밀을 알아본다.
먼저 맥주회사들이 맥주를 해외에서 한국에 수입할 때 신고하는 신고가격을 살펴보자.
업계에서는 수입맥주들의 신고가를 500㎖ 캔 제품 기준 대략 500원 내외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세금 113%가 붙으면 출고가는 1065원이 된다. 소비자들은 수입맥주 1캔에 4000원짜리 제품을 4캔에 1만원 행사를 통해 1캔당 2500원에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출고가의 2배 이상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셈이다.
같은 수입맥주라도 브랜드별 신고가격은 차이가 크다. 수입맥주 회사들은 브랜드별 수입 신고가를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세청의 국가별 통계를 통해 수입 신고가를 추정·비교해 볼 수 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유통되는 수입맥주 신고가격은 500㎖ 1캔 기준 300원에서 594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지난해 수입신고가격이 가장 높은 것은 기네스 등이 속한 아일랜드산 맥주다. 수입맥주 평균 신고액이 t당 798달러인 데 반해 아일랜드 맥주의 수입 신고가는 t당 1189달러로 149%에 달한다. 소비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게 단위인 t을 부피 단위인 ㎖로 바꾸고 원·달러 환율을 고려해 단순 환산해 보면 아일랜드 맥주의 수입 신고가는 500㎖에 594원 정도가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비교 목적으로 참고자료일 뿐이다.
▶필스너우르켈 300원, 하이네켄 신고가 338원 수준
체코산 맥주는 수입 신고액이 가장 낮았다. 체코산 맥주 수입 신고가는 t당 535달러로 아일랜드 맥주의 절반 수준이다. 필스너우르켈이 대표적인 체코산 맥주다.
하이네켄 맥주가 속한 네덜란드산도 t당 신고가격이 603달러에 불과하다. 같은 방법으로 환산해보면 체코산은 500㎖에 300원, 네덜란드산은 500㎖에 338원이다. 중국과 벨기에 맥주도 다른 국가의 수입맥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입 신고가격이 낮았다. 중국 맥주는 t당 751달러, 벨기에 맥주는 t당 668달러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중국 맥주로는 칭다오, 벨기에 맥주로는 호가든과 스텔라 아르투아 등이 유통되고 있다.
반면 프랑스, 일본, 미국 맥주들은 비교적 수입맥주 신고가격이 높았다.
‘1664블랑’ 등이 포함된 프랑스산 수입맥주들은 t당 941달러, 아사히·기린·삿포로 등이 포함된 일본산은 t당 903달러, 버드와이저가 유명한 미국산은 t당 824달러 수준이다. 그렇다면 맥주 수입업체들은 왜 수입 신고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할까. 그 답은 한국 주세체계에 있다.
현재 맥주 과세체계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수입맥주의 경우 신고가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한다. 신고가격을 낮추면 낮출수록 세금이 적어지는 구조다. 수입맥주에는 신고 가격에 관세,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4개 항목의 세금이 부가돼 세율이 113%에 달한다. 수입맥주의 신고가격을 낮추면 낮출수록 납부해야 하는 세금도 그만큼 적어진다. 예를 들어 수입맥주 브랜드 A의 적정 수입 신고가격이 500㎖ 1캔 500원이라고 하자. 이에 따른 세금은 신고가의 113%인 565원이 된다. 신고 가격을 400으로 낮춰보자. 그러면 세금 역시 452원으로 떨어진다. 결국 적정 가격보다 신고가를 100원만 낮춰도 500㎖ 1캔당 내야 하는 세금을 100원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입맥주사들이 이 같은 주세체계의 허점을 파고들어 신고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지적이다.
주류업계에선 지난 1월부터 관세청이 일부 수입맥주사들을 대상으로 맥주 신고가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돌기 시작했다. 하이네켄코리아 등이 맥주 수입 원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혐의로 관세청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주류업계에서는 일부 수입맥주 회사들이 의도적으로 수입가격을 낮춰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물론 수입맥주를 낮은 가격에 들여와 타사와 비슷한 가격에 출고한다면 이윤 폭이 커져 법인세를 더 많이 내야 한다. 하지만 법인세율은 22%로(과세표준 200억~3000억원 기준) 관세 및 주세에 비하면 훨씬 낮다는 게 세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이네켄코리아는 네덜란드 본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구조여서 인위적으로 수입가격을 낮추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하이네켄 본사의 지시나 동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격에 세금 붙는 ‘종가세’ 허점 파고들어
법조계에선 하이네켄코리아 본사와 한국법인 간 이전가격(transfer price) 문제이지 탈세의 문제가 아니라고 관세청 조사에 반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가격은 관계법인 사이에 원재료·제품 등을 공급할 때 적용되는 가격이다. 정부는 이전가격을 조작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주류업계는 하이네켄코리아가 최근 수년간 수입 신고가격을 낮춰 세금을 줄이고, 줄어든 세금은 마케팅과 배당에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하이네켄코리아가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수입 신고가를 고의로 낮추고 경쟁사와 동일한 가격으로 맥주를 출고했다면, 맥주 유통질서를 흐리고 한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이네켄코리아의 2017년 매출은 980억원, 영업이익은 329억원이다. 하이네켄 본사에는 184억원을 배당했다. 반면 기부금은 7000만원으로 영업이익의 0.2%에 불과하다. 이 같은 ‘고배당 저기부’ 패턴은 하이네켄코리아만의 일은 아니다. 중국산 칭다오 맥주를 수입 판매하는 비어케이는 2017년 매출 1180억원, 영업이익 230억원을 기록했지만 기부금은 5000만원에 그쳤다. 기부금 비율이 영업이익의 0.2% 수준이다. 반면 배당액은 50억원에 달했다.
반면 국내 업체들의 기부금 비율은 영업이익의 2%를 넘는다. 하이트진로는 2017년 영업이익 872억원의 2.1%인 18억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롯데주류가 속한 롯데칠성음료도 영업이익(754억원)의 16.5%인 125억원을 기부했다.
주류업계에서는 관세청의 하이네켄코리아 조사를 계기로, 국내 맥주시장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산맥주는 제조원가에 국내 이윤과 판매관리비 등을 더한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반면 수입맥주는 관세를 포함한 수입신고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500㎖ 맥주 1캔의 가격 구조를 수입맥주와 국산맥주로 나누어 비교해 보자.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원가는 500원으로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수입맥주에는 주세(360원), 교육세(108원), 부가세(97원) 등이 세금 565원이 붙어 출고가 1065원이 가능하다. 반면 국산맥주는 원가 500원에 판매관리비와 마진 500원이 더 붙은 1000원에 대한 세금이 붙는다. 결국 과세표준이 되는 출고원가는 수입맥주가 500원인 반면 국산맥주는 1000이 돼 1000원에 대한 세금이 붙게 된다. 이에 따라 국산맥주는 출고원가 1000원에 주세(720원), 교육세(216원), 부가세(194원)이 붙어 시장 출고가격이 2130원으로 높아지게 된다. 결국 같은 원가라도 세금이 붙는 방식이 달라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더 싸게 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게 국산맥주업계의 항변이다.
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2017년 하이네켄코리아는 상품판매액의 16.2%를 주세 및 교육세로 낸 반면 국산맥주 제조사인 하이트진로는 상품판매액의 44.4%를 주세 및 교육세로 냈다.
지난해는 국내 맥주 1위 업체인 오비맥주가 ‘카스 맥주’를 미국서 제조, 수입해 기존 국내산 카스보다 더 싸게 팔겠다고 밝혀 주류업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오비맥주는 당시 러시아 월드컵 한정판이라고 발을 뺐지만 국내 주세법의 맹점을 보여준 사례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국내 맥주업계는 물론 국회 여야 의원들까지 맥주 주세 체계를 용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방식으로 개정할 것을 촉구해왔으며 올해 4월, 종량세 전환 방안 마련하는 것을 확정 합의했다.
결국 최근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수입맥주 4캔 1만원’ 행사는 수입맥주의 신고가 조작과 한국의 기형적인 주세체계로 인해 가능했다는 게 다수 주류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국내 맥주시장에서 수입맥주의 점유율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관세청과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금액은 3억970만달러로 전년대비 18% 증가했다. 2015년 맥주 수입금액이 1억4186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3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수입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2017년 16.7%에서 지난해 20%까지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통업계는 전체 국내 맥주 시장을 4조2000억원대로 추산한다.
최근 이마트가 발표한 자료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주류매출에서 국산맥주가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은 21.4%였다. 지난 2015년 28.6%로 전체 주류매출에서 1위를 차지했던 국산맥주의 비중은 2016년 27.2%, 2017년 25.1%로 떨어지더니 지난해는 21.4%로 줄며 3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2015년 17.7%에 그쳤던 수입맥주는 2018년 25.3%까지 치솟았고, 와인 역시 21.5%에서 22.7%로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비자들은 주세법 개정에 부정적이다.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주세법이 전환되면 기존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행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반면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종량세 전환 시 소매점에서 1캔에 4000~5000원에 판매되는 수제맥주도 1000원 정도 낮아져 ‘수제맥주도 4캔 1만원’ 프로모션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세법 개정으로 고급 수입맥주 가격 또한 떨어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혜택도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국산 역차별 지적 높아… 주세법 개정 요구
주세법 개정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곳은 한국수제맥주협회다. 기존 국내 맥주업체들은 수입맥주를 함께 유통하고 있어 주세법 개정에 따른 득실을 따지기가 다소 복잡한 측면이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가 공개한 중소 수제맥주 회사 제품의 가격구조를 살펴보자. 과세표준이 되는 출고원가는 1295.8원이다. 현행 종가세 기준으로는 여기에 주세 933원, 교육세 279.9원, 부가세 250.9원이 붙어 공장 출고가는 2759.5원이 된다. 반면 주세법이 ‘종량세’로 개정되면 출고원가 1295.8원에 대한 세금이 주세(421.5원), 교육세(126.5원), 부가세(184.4원)로 떨어져 공장 출고가는 2028.1원으로 수입맥주에 대항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협회의 시뮬레이션 결과 고급 수입맥주는 최대 1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수입맥주 점유율 1위인 일본산 제품은 리터당 117원 인하되어 최대 14% 세금이 하락한다. 또 아일랜드 맥주도 리터당 176원이 인하돼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협회측 주장이다.
임성빈 한국수제맥주협회 회장은 “기형적인 구조의 종가세로 인해 국내맥주는 가격 경쟁력을 잃고 산업공동화 현상까지 가속화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정부와 국회에서 올해 4월까지 종량세 전환 방안을 마련하기로 확정 합의한 만큼 빠른 종량세 도입으로 수입맥주와의 차별을 해소하고 국내수제맥주업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