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수 한국카본 회장 | “싸다고 외국社에 기자재 맡긴다면 국내 풍력산업 생태계는 가망없죠”
설진훈, 김병수 기자
입력 : 2018.11.28 11:36:10
수정 : 2018.12.04 16:21:41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용량은 원전 1기와 맞먹는 1139㎿ 규모예요. 하지만 이중 국산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베스타스·지멘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사실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외국기업에 좋은 일만 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조문수 한국카본 회장(60)은 최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풍력발전기 얘기부터 꺼낸다. 배경은 이렇다. 한전 주도의 국내 첫 해상풍력사업인 제주 한림해상풍력 프로젝트에 해외기업 제품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풍력발전 산업 생태계는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라는 게 조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공기업은 한국전력 주도의 첫 해상풍력 사업에 해외사 제품이 적용되면 향후 국내 관련 기자재는 공급기회 자체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고 토로했다. 사실 조회장이 풍력 발전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한국카본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카본은 정부지원 추진과제를 통해 풍력발전기의 날개 부분인 블레이드에 적용하는 탄소섬유 복합소재 기술을 개발해 놓은 상태다. 이미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에 적용한 경험도 있다. 이런 기술들이 단순히 현재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사장되면 곤란하다는 게 조회장의 생각이다.
Q먼저 풍력 얘기를 좀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일각에선 신재생발전 산업 투자가 저가 해외 업체의 사업 기회만 늘린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풍력발전기술 개발사업에 많은 지원이 있었습니다만 그동안 국내 풍력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으므로 국내 발전기 제작사 및 관련 소재 및 부품사들이 해외(중국, 유럽) 보다는 규모에서 차이가 나는 게 현실입니다. 정부는 탈원전시대를 대비하여 많은 정책을 내놓고 풍력발전 시장의 본격적 전개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정책 지원을 통해 소재부터 시스템에 이르는 관련 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현장에선 반대로 흐르고 있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실제 국내 풍력 시장에서 외국산 비율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풍력사는 대량생산을 통해 우리보다 제품 가격을 낮춰서 시장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00년대 후반 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와 중공업 회사가 풍력시장에 진출했지만 지금은 두산중공업, 효성, 유니슨 등 네 풍력발전기 제조사만 남아 있다. 국내 풍력발전기 관련 회사는 2014년 34개에서 작년 말 27개로 줄었다. 고용은 2424명에서 1853명으로 24% 감소했다.
풍력발전기를 외국사가 제작하면 기자재 공급과 시공은 물론 완공 후 20여 년간 운영·유지·보수도 도맡게 된다. 결과적으로 국내 일자리 창출 기회도 사라진다. 국내 시장에서 실적이 없으니 수출 길도 막히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풍력 발전기 기자재 업체의 한 대표는 “풍력 단지 사업자인 공기업들도 경제성만 따져 외국사를 선호하니 대책이 없다”고 귀띔했다.
Q한국 카본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비즈니스는 어떤 게 있는 지요.
지난해에 풍력발전기 핵심 기자재인 블레이드(날개)를 만드는 휴먼컴퍼지트와 함께 두산중공업 풍력발전기 스파캡에 적용되는 탄소섬유 프리프레그(잠깐용어 참조) 개발을 완수했습니다.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에 적용되며 국내 최초로 상용화에도 성공했죠. 국내 최초로 개발 및 실제 제품에 적용된 풍력용 탄소섬유 프리프레그인 셈입니다. 해외 경쟁사 제품(120도)과 비교해도 경화온도(80도)가 낮아 열변형을 방지하고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두산중공업의 3MW급 발전기에 적용을 완료했고, 향후 5MW급과 8MW급 발전기에도 적용을 추진 중입니다.
Q낚싯대에서 출발해 골프채, LNG선 초저온 보냉자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으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카본 밀양 본사에 가면 ‘독창력’ 기념비가 있습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한국카본의 기본정신이에요. 이런 독창력을 근간으로 한 기술개발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경쟁력을 이어온 비결이라고 자부합니다. 실제 연구 인력만 50여 명에 달하고 기술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어요. 연구개발비가 2016년 매출액 대비 1.4%였으며, 2017년 2.8%, 2018년 3분기 기준 2.9%로 증가했습니다.
Q한국 카본은 항공·자동차용 소재 개발, 무인항공기 사업 등 첨단 신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압니다. 구체적인 성과와 계획은 무엇인지요.
모든 기업의 고민은 미래먹거리죠. 한국카본은 항공과 자동차용 복합소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탄소섬유 복합소재가 에너지(풍력), 자동차, 항공 분야에서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관련 대기업들이 탄소섬유 복합재 관련 사업 투자를 늘리고 있고, 정부도 출연연(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연구개발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 카본은 1990년대 후반에 항공기용 복합소재 개발에 나서 2014년 항공기 소재 생산에 필수적인 항공품질인증시스템 AS9100을 획득했다. 현재는 2016년 산업부와 미국 보잉사가 맺은 소재부품개발 MOU를 기반으로 항공용 복합소재 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경량소재 개발도 동시진행 중이다.
한국카본은 2005년 사업 목적에 자동차 부품 제조 및 판매 사업을 추가했고, 부품사인 플라산(PLASAN)을 통해 미국 GM에 자동차 보닛용 탄소섬유 소재를 공급했다. 2016년 3월에는 일본 3대 상사 중 하나인 미쓰이물산과 자동차를 비롯한 미래 사업 추진을 위해 306억원의 투자 유치 계약을 체결했다. 다국적 해외 영업망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미쓰이물산과 협력하여 세계 자동차 소재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올해에는 영국 버밍엄의 마이라 테크놀로지 파크(MIRA Technology Park)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유럽 지역을 대상으로한 자동차 소재 사업을 시작했다. 본사 연구소에서는 부품의 성형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는 고속경화 탄소섬유 프리프레그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최근 테스트 결과 기존 3분에서 75초까지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무인항공기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2016년 1월 이스라엘 최대 국영 방산업체 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와 무인항공기 합작사 설립을 위한 MOA를 체결한 한국카본은 2017년 서울국제항공우주및방위산업전(ADEX2017)에서 KAT(Korea Aviation Technologies)라는 합작사 이름 발표와 함께 서명식을 진행하며 협력을 가시화했다. 올해 2월에는 인천로봇랜드에 회사를 열었다. 양사는 현재 최첨단 수직이착륙 무인항공기 FE-팬서(FE-Panther)의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FE-팬서는 기존의 전기모터 추진시스템 대신, 한국카본이 한국-이스라엘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하이브리드 추진 시스템(SPS, Series Hybrid Propulsion System)이 탑재됐다. KAT는 군용, 민간시장을 대상으로 수직이착륙 기능을 갖춘 무인항공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유인 PAV(Personal Aerial Vehicle) 사업 진출도 고려 중이다. 또한 대한민국 육군 드론봇 전투단 운용에 맞는 국산 드론의 개발 여부도 IAI와 협의 중에 있다. 또한 KAT는 생산 제품에 한국카본의 복합소재를 적용함으로써 국산화 비율을 높일 방침이다.
Q 올해 말에 베트남 빈프억성 공장이 완공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해외 사업 현황과 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베트남은 평균연령이 30살로 매우 젊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국가입니다. 낮은 인건비로 생산비용 절감 가능, 최근 복합소재 시장에서 떠오르는 중국 등과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기서는 당사 주력 제품인 탄소섬유·유리섬유 직물 및 프리프레그를 생산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동남아 시장을 비롯한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할 겁니다.
QCEO로서 한국 카본을 경영하실 때 원칙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기업 본래의 목적은 이윤 추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제 경쟁력 및 위상 강화에 기여하는 겁니다. 탄소섬유 복합소재의 높은 가능성에 주목해 국내 최초로 도입 및 상용화 했고, 35년간 연구개발을 진행해 왔습니다. 마침내 탄소섬유 복합소재가 국제적인 트렌드로 떠오른 지금, 해외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기술력의 제품을 갖추게 됐어요. 풍력용 복합소재는 한국카본 자체적으로도 30억원을 투자해 개발 진행중입니다. 한국의 풍력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소재 부분에서 한국의 탄소섬유 복합소재 기술이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Q한국 카본을 어떤 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싶으신지요.
한국에서 더 나아가 글로벌 TOP 복합소재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해외 선진기업과 기술개발 및 시장진출 부문에서 활발히 협력을 진행하고 있어요.
2016년 미쓰이물산과 자본제휴 계약을 체결해 306억원 투자를 받음, 미쓰이물산이 가진 글로벌 시장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당사의 복합소재 판매 루트를 더욱 확장하려 합니다. 이스라엘 IAI와의 협력도 그 중 하나에요. 베트남 빈프억성 공장은 동남아 및 해외 진출을 위한 전략적 생산거점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영국 버밍엄 오피스는 유럽 자동차용 복합소재 시장 진출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 높은 경쟁력을 가진 유럽 업체들과 공동개발을 추진함으로써 기술력을 강화하고 실제 부품 적용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해 볼 방침입니다.
한국 카본은 어떤 기업 한국 최초로 탄소섬유 프리프레그 상용화에 성공
1984년 설립된 한국 카본은 탄소섬유 복합소재 전문 기업이다. 앞서 탄소섬유 프리프레그를 국내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탄소섬유 프리프레그는 낚싯대, 골프채 등 스포츠용품 소재로 주로 사용됨 1980년대 세계 낚싯대 생산의 60%가 국내에서 이루어질 때 이 중 80%를 한국카본이 공급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50% 육박했던 셈이다. 1987년에는 5백만불 수풀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낚싯대, 골프채에서 벗어나 LNG선 단열재 시장 진출, 단열재 폴리우레탄폼과 2차 방벽(FSB,RSB) 등 해외생산에 전면 의존하던 소재를 국산화하며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기준 LNG 사업부문 누적수주액 1조원을 달성했고 우수자본재 개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16년까지 한국카본이 보냉자재를 납품한 LNG 선박 수는 100여 척에 이른다.
잠깐용어프리프레그 탄소섬유나 유리섬유와 같은 섬유 강화재에 에폭시 수지와 같은 액상 합성수지를 침투시킨 복합재 중간단계 소재로 최종 부품형틀에서 열과 압력을 받으면 기계적, 열적 물성이 뛰어난 복합재 부품(composite part)이 만들어진다.
[대담 설진훈 편집장 정리 김병수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