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묻고 답하면서 낄낄 거리는 사람들은 프랑스 아저씨들이다. 프랑스식 아재 개그인데 아저씨들의 썰렁함이란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인 것 같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맛없는 음식의 최고봉으로 영국 요리를 꼽는다고 한다. 사실 영국 음식이야 맛없기로 소문이 나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조롱하는 배경에는 아마 맛보다는 앙숙인 영국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더 많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영국 못지않게 감정적인 앙금이 깊은 데다 투박하기로는 영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 독일 음식에 대해서는 왜 특별한 뒷담화가 없을까. 나름 독일이 자랑하는 맥주와 프랑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발달한 디저트 케이크, 그리고 소시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특별하게 화려하고 널리 알려진 요리는 없지만 오직 소시지 하나만 갖고도 어느 나라 요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소시지 종류만 1000가지가 넘고 지역마다 그 지역의 이름을 딴 독특한 소시지가 있는 데다 때와 장소는 물론이고 요리에 따라 짝을 이루는 소시지의 궁합도 달라지기 때문에 이것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요리의 향연을 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년 10월에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에서 맥주와 함께 먹어야 어울리는 소시지가 따로 있고 차를 마실 때 함께 먹는 소시지, 독일 전통 빵인 프레첼과 먹을 때 특별히 어울리는 소시지, 감자나 독일식 양배추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와 조화를 이루는 소시지가 따로 있으니 독일을 소시지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독일 소시지는 왜 이렇게 다양하게 발달했을까. 오랜 세월 독일인들이 기나긴 겨울을 날 때 필요한 필수 저장 음식이었기에 우리의 김치 맛이 집집마다 달라진 것처럼 독일도 가정마다 독특한 소시지가 발달했다. 때문에 독일 소시지에는 게르만 민족이 살아온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독일 소시지를 먹으면 맛과 함께 독일 역사 기행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소시지라고 하면 보통 부대찌개나 핫도그에 넣어 먹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에 익숙하지만 사실 이 소시지는 이름만 독일 도시 이름일 뿐 엄밀하게 말하면 독일 소시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독일 소시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통 독일 소시지로는 야외에서 캠핑할 때 구워 먹는 작은 소시지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것이 독일 남동부의 중세도시 뉘른베르크의 명물 소시지인데, 이 소시지는 중세 시대인 1313년에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뉘른베르크 소시지는 길이가 어른 손가락 정도로 짧고 작은 것이 특징인데 구워서 달콤한 독일 머스터드와 빵 그리고 감자 샐러드와 함께 먹는다.
덩치 크기로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독일 사람들이 소시지는 왜 이렇게 작게 만들었을까. 사연이 있다. 16세기 말 한스 슈트로머라는 판사가 중죄를 저질러 종신형을 받고 지하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그동안의 공적을 감안해 하루 두 개씩 소시지를 먹을 수 있도록 특혜가 주어졌다. 하지만 중범죄인을 가두는 특수 감옥인 만큼 가족들의 면회가 금지됐다. 때문에 오로지 감방 열쇠 구멍으로만 소시지를 전달해야 했기에 열쇠 구멍에 맞춰 소시지가 작아졌다. 또 다른 설도 있다. 16세기 뉘른베르크에서 물가가 폭등했다. 그래서 정육점 주인이 할 수 없이 같은 가격으로 동일한 품질의 소시지를 만들려고 크기를 줄였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손가락 크기의 작은 사이즈가 뉘른베르크 소시지의 상징적인 특징이 됐고, 지금은 유럽연합의 지리적표시보호제(PGI)의 보호를 받는 명물이 됐다.
독일의 유명한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에서 주로 먹는 소시지는 뮌헨의 명물 하얀 소시지 바이쓰부어스트(Weiss Wurst)다. 이름 그대로 다른 소시지와는 다르게 하얀 색이 특징인 이 소시지는 끓는 물에 데쳐서 맥주나 프레첼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 독일에서는 이 소시지를 정오의 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유는 소시지를 만들 때 어떤 방부제도 넣지 않고 훈제도 하지 않기 때문에 오전 중에 먹지 않으면 오후에 바로 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선한 소시지이지만 원래는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세기 뮌헨의 여관주인이 소시지를 만들 양 창자가 떨어져 대신 급하게 돼지창자를 이용해 소시지를 만들었고 구울 때 소시지가 갈라질까봐 삶아서 내놓은 것이 손님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현재의 하얀 소시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도 스토리가 풍부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는 독일에서 소시지 기술을 배운 정육업자가 19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이사 와 만든 소시지다. 때문에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가 아닌 비엔나소시지라고 부른다. 반면에 우리가 비엔나소시지라고 하는 짧게 이어진 소시지는 20세기 초 미국에 이민 온 오스트리아 출신 제조업자가 통조림용 소시지를 만들면서 붙인 이름이다.
오리지널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는 소금을 넣지 않고 특별한 방법으로 훈제해 숙성시켜 만든다. 역사가 깊어서 16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기념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프랑크푸르트라는 명칭은 오직 독일에서만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이 밖에도 독일에는 비어 소시지도 있다. 영국의 애프터 눈 티처럼 간식 시간인 브로트자이트(Brotzeit) 때 맥주와 함께 먹었던 소시지에서 비롯됐고, 티 소시지는 티타임에 간식으로 먹던 소시지였는데 원래 폴란드에서 발달했지만 제조업자들이 공산화를 피해 독일로 피난 오면서 지금은 독일 소시지로 더 알려졌다. 대충만 손으로 꼽아도 독일에는 이렇게 다양하고 유명한 소시지가 많은데 사실 소시지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인류 공통의 식품이다. 그럼에도 왜 하필 독일 소시지가 특히 유명해졌을까. 독일 소시지는 하나하나에 모두 역사와 스토리가 있을 만큼 유서가 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절심함이 만들어낸 음식이기 때문이다. 독일 소시지의 뿌리는 고대 게르만족인 켈트족과 프랑크족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지금도 독일은 숲이 울창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아예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졌었다. 뿐만 아니라 겨울은 춥고 길며 날씨는 변덕스러운 척박한 지역이었다. 오죽하면 시저가 이끄는 로마 군대조차 진격을 멈췄을 정도다. 때문에 언제나 식량이 부족했고, 가축도 사육기간이 짧은 돼지 이외에는 키우기가 힘든 데다 그나마 먹일 사료가 없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종자로 삼을 종돈만 남겨 놓고 몽땅 잡아 좋은 고기는 햄과 베이컨으로 만들고 부스러기는 소시지로 만들어 보관해야 했다. 그런 만큼 돼지와 소시지는 게르만 족에게 생명줄과 다름없었고 그렇기에 돼지는 행운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래서 지금도 “돼지 한 마리 몰고 가세요”라는 독일어 ‘슈바인 하벤(Schwein haben!)’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로 통한다. 독일인들이 특별히 소시지를 좋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생존의 절실함은 각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지난해가 독일 맥주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맥주 순수령이 발표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로 1516년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맥주는 오직 물과 보리, 호프로만 빚어야 한다고 선언한 덕분에 지금과 같은 순도 높은 독일 맥주가 만들어졌다. 소시지의 품질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맥주 순수령보다도 빨라서 1432년에 벌써 독일 중부 바이마르 지방에선 소시지를 만들 때 돼지고기가 아닌 잡고기나 내장 혹은 상한 고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이 규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식품위생법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독일에서 소시지가 발달하고 또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배경에는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게르만 민족의 절실함과 간절한 노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