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가 지면 한강 가운데 섬에 있던 사람들이 피신하던 강변 모래벌판 이촌동. 이 중에서도 이른바 ‘동부 이촌동’이라 불리는 동네는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아파트단지가 본격 등장한 곳이다. 지난 1960년대 후반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이 시작되면서 용산 이촌지구는 1세대 고급아파트촌으로 거듭났다. 압구정동 등을 중심으로 한 강남은 그 이후인 1970년대 ‘남서울개발계획’에 따라 후발 주자로서 무대에 나선 것에 불과하다. 지금은 강남에 추월당했지만 ‘원조 부촌(副村)’ 격인 동부이촌동은 기존 렉스아파트를 재건축 중인 ‘래미안 이촌첼리투스’를 선두로 다시 한 번 강변 부자 동네의 위엄을 내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
한편 같은 비강남이라고는 해도 성동구 성수동은 지난 1950년대 도시화·산업화 당시 공장이 대거 들어서면서 서울의 대표 공업지대로 출발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서울숲이 조성된 것을 전후해 문화시설들이 자리 잡으면서 2011년에는 ‘갤러리아 포레’라고 하는 초호화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자산가와 연예인들이 들어와 산다는 갤러리아 포레는 타워팰리스, 아크로리버파크 등 강남의 기라성 같은 아파트 못지않은 비강남권 고급 단지로 등극했다.
강남은 부의 상징이지만 부동산 시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비강남권 주거시설 중에서도 강남 못지않은 랜드마크 건물들이 있다. 최근 들어 비강남권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는 것은 동부이촌동 래미안 이촌첼리투스와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다. 2013년 서울시가 한강변 건축물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한강변 조망을 갖춘 초고층 고급 아파트들이 조만간 나오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희소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기는 했지만 두 단지는 어떤 면에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래미안 이촌첼리투스
재기(再起) 노리는 전통 부촌 동부이촌동의 ‘래미안 이촌첼리투스’
오는 7월께 있을 입주를 앞두고 외형을 드러낸 동부이촌동 래미안 이촌첼리투스 아파트 건설현장 주변에는 ‘축, 한강삼익재건축조합 대의원회’ ‘한강맨션 건축! 지금이 기회입니다’란 문구를 적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새 랜드마크가 가져올 훈풍에 대한 기대감이 실린 모습이다.
아파트에 대한 개념이 생소하던 1960년대 후반, 전용 87~178㎡인 중대형으로 지어져 ‘너무 사치스런 아파트’라는 풍문을 타고 1세대 부자 동네로 등극했던 동부이촌동.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동네에 56층으로 우뚝 선 아파트의 이름은 ‘래미안 이촌첼리투스’다.
지난 2013년 4월 서울시가 한강변 건축물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하기 전 재빨리 기존 렉스아파트의 재건축을 추진해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의 마지막 테이프를 끊은 단지로 주목 받았다. ‘하늘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 ‘첼리투스’를 단지명으로 따온 이유다. 총 3개 동에 전용면적 124㎡형으로만 구성된 총 460가구 규모 이촌첼리투스는 동 간 공중 통로인 스카이 브리지까지 설치한 데 이어 수영장·골프장·독서실·카페 등을 갖췄다.
이 곳 주민들은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인근에 대형 공원이 있는 데다 강남 접근성도 좋은 동부이촌동의 래미안 이촌첼리투스가 갤러리아 포레 못지않다고 힘준다.
50여 년 전 서울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어진 한강맨션, 삼익주택 등 오래된 단지들의 재건축사업 분위기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한 이촌첼리투스는 작년보다 거래가격이 2억원가량 올랐다. 전용면적 85㎡ 이하인 중소평형 가구를 짓지 않는 대신 일반분양 없이 조합원 가구 수 규모만큼만 재건축을 추진하는 1 대 1 방식이다 보니 추가분담금 5억4000만원이 딸린 조합원 분양권을 살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라는 이점 때문인지 웃돈이 5억~6억원이나 붙었다. 인근 S공인 관계자는 “평면 구성 등보다는 한강이 잘 보이는 위치냐, 아니냐에 따라 추가분담금을 포함한 매매가가 16억~21억원 선으로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는 거래가가 작년 대비 2억원 뛰었고, 올해 들어서는 호가가 2개월 만에 3000만원 올랐다. 한강 조망권 덕에 인기가 있는 101동 1호라인 고층의 경우 작년 초 13억~15억원 하던 시세(추가분담금 별도)는 작년 말 14억~19억원, 올해 초는 호가가 19억9000만~20억원 선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동부이촌동 재건축 삼형제로 불리는 ‘왕궁·한강삼익·한강맨션’ 등은 사업이 뚜렷한 진전은 없지만 작년 말부터 덩달아 시세가 오르는 중이다.
본격 입주가 4개월여 남아 눈치작전이 오가는 시점인 데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거래도 끊이지 않는다. 인근 R공인 관계자는 “공인중개업소들이 올 들어 성사시킨 거래만 총 4~5건”이라며 “가격 상승 기대감에 조합원들이 매물을 내놓을지 관망 중”이라고 전했다. 세간에선 이촌첼리투스가 한국 대표 최고가 단지로 통하는 ‘갤러리아 포레’ 뒤를 이을지 관심이다.
신흥 부촌 꿈꾸는 성수동의 ‘갤러리아 포레’
성동구 성수동에 한화건설이 지은 갤러리아 포레는 2011년 입주한 초고가 아파트의 대명사로 새로운 부촌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지하 7층 ~ 지상 45층 2개동에 전용면적 168~218㎡형 총 230가구로 구성된 주상복합 아파트인 이곳은 6가지 타입 모두 매매가가 30억원을 웃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거래된 30억원이 넘는 초고가 아파트(총 78건) 중 갤러리아 포레는 총 27건으로 가장 거래가 활발한 곳으로 꼽혔다. 똑같이 30억원을 넘지만 강남의 타워팰리스1~3차, 삼성 현대 아이파크, 용산의 한남 더 힐 등보다 더 수요자들의 입질을 많이 받았지만 좀처럼 집을 내놓는 사람도 없다. 인근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갤러리아 포레의 실입주율은 약 97%에 달한다. 한 공인중개사는 “대기 수요는 많아도 매물은 부족해 전용 217㎡의 경우 3억, 많게는 4억원 가까이 웃돈이 붙어 있다”고 전했다.
워낙 비싼 턱에 인기 연예인 혹은 자산가들이나 살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특히 배우 김수현과 가수 지드래곤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작년에는 <별에서 온 그대>의 열풍으로 김수현의 옆집을 사 나란히 살던 40대 중국인 여성들과 중국 재벌 대리인이 다녀갔지만 매물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한강을 끼고 있고, 대형 공원인 서울숲이 가까워 조망이 좋다는 장점에 더해 단지 앞에 있는 성수대교나 영동대교를 건너면 강남으로 바로 이어지고 인근에 분당선인 서울숲역, 조금만 더 가면 청담동이 있는 압구정로데오역, 지하철 총 5개 노선 환승이 가능한 왕십리역이 있어 교통의 요지에 자리했다는 점이 장점으로 통한다.
최고급 아파트답게 지문인식시스템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한 데다 실내수영장, 호텔급 게스트하우스에 입주민을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갖춰져 있어 정재계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
갤러리아 포레의 성공을 기점으로 성수동 서울숲 인근은 신흥 부촌으로 거듭나려는 분위기다. 작년 갤러리아 포레 인근에는 역시 고급아파트로 알려진 두산중공업의 ‘트리마제’가 분양됐다. 최근에는 대림산업과 부영 등이 성수동에 고급 주거단지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요지에 한강 뷰 프리미엄 갖춰 당분간 관심 이어질 듯
부촌으로서 재기(再起)를 노리는 동부이촌동의 이촌첼리투스와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성수동의 갤러리아 포레는 모두 명동, 광화문 등 강북 도심은 물론 강남권과도 바로 맞닿아 있는 교통의 요지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대표는 “강남 아파트들은 여전히 인기가 좋지만 비싼 아파트의 상징이던 타워팰리스와 삼성동 아이파크만 해도 입주한 지 10여 년이 돼간다”며 “자연환경과 교통 여건이 모두 좋으면서 새로운 곳에 관심이 있는 자산가들이 강북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아파트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랜드마크 아파트 단지들이 비강남권에서 얼마나 선전할지는 사람들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