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흑백 세계에서 회색 세계로 넘어왔고 이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현재 전개되는 새로운 시대와 관련해 깔끔하고 단순한 설명을 찾고 있다.…” -<미래의 역습>에서
최근 미래에 관한 두 권의 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란 원제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등이 저술한 <새로운 부의 시대(시공사)>와 매튜 버로스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정보국장이 지은 <미래의 역습(The Future, Declassified : megatrends that will undo the world unless we taken action, 비즈니스북스)>이 그것이다.
앞의 책은 실러 교수 외에 앨빈 로스 교수나 로버트 솔로 교수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이 대거 참여해 엮어냈다. 뒤의 책은 CIA와 NIC를 거치면서 미국 대통령에게만 보고하는 ‘글로벌 트렌드’ 작성에 참여했던 케임브리지 역사학 박사 출신의 전략 예측 전문가의 작품이다. 두 책이 그리는 미래세계는 비슷하다.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며 정치경제적으로는 다극적인 세계가 열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극화와 자원부족, 기후변화 등 부정적 측면도 부각된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실증분석 자료를 근거로 삼고 있는데 전자는 학술적 성격이 강한 편이다. 후자는 역사적 배경과 실제 상황들을 통해 미래를 그렸기에 보통 사람들의 눈에 보다 쏙쏙 들어온다. 이런 점에서 <미래의 역습>을 먼저 읽고 <새로운 부의 시대>를 들어도 좋을 듯하다.
메가트렌드와 변화의 주역들
미래의 역습은 3부로 구성됐다. 매튜 버로스는 1부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큰 흐름을 ‘메가트렌드’로 그린 뒤 2부에서 그 변화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게임 체인저’로 소개했다. 3부에선 이러한 변화가 선택적 상황을 낳을 경우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이 때문에 3부를 먼저 읽고 메가트렌드와 게임 체인저로 들어가도 좋다.
저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나 샌디의 위력 앞에 나약함이 노출된 인간의 모습과 러시아의 느닷없는 크리미아 침공 등을 들어 우리가 새로운 ‘정상상태’에 진입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세계화와 보다 밀접해진 상호관계, 새로운 극단, 기후패턴, 역동적 신기술 등이 초래하는 변화가 너무 빨라서 예측조차 어려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개인이건 국가건 “스스로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메가트렌드)으로 개인의 권한 확대와 선진국에 맞설 새로운 강대국의 부상, 인공지능의 무한한 확대, 확대되는 양극화의 위험 등을 꼽았다. 다극적인(Multipolar) 세계와 미국의 상대적 쇠퇴(Relative decline), 중산층의 성장은 그중에서 강조하는 부분이다. 다만 테러리즘의 급증 등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세계 중산층 급증할 것
한국이 고령화를 과도하게 겁내고 있지만 그의 분석에 따르면 소비시장은 계속 커질 것 같다. 1인당 GDP 6000~3만달러를 중산층(골드만삭스 기준)이라고 할 때 지구촌 중산층은 현재 10억~20억명, 2030년엔 30억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또 브루킹스연구소 자료를 근거로 2015년에 아시아의 중산층이 북미와 유럽의 중산층과 같아졌는데 머지않아 아시아가 전 세계 중산층의 75%를 차지하고 북미와 유럽은 22% 선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2020년이면 중국 인구의 40%가 중산층 반열에 오른다는 것. 소득 증대나 IT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민주화와 개인주의를 부추긴다.
이 점에서 중국 정치체제의 미래도 관심사다. 중국 정부도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공산당) 중앙당교에서조차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연다고 한다. 다만 회의의 핵심은 목표를 성취하는 게 아니라 언제 성취할 것인가라고 한다. 대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현 체제의 붕괴만은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국 당국의 정보 통제는 그런 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구글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자마자 팔로워 숫자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기 전에 통제하는 게 그들의 임무라고 한다. 정보기술이 민주화를 돕지만 조지 오웰이 말한 빅브라더 시대까지 열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신흥국의 중산층 성장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2030년이면 아시아는 GDP나 인구규모, 군사지출, 기술투자 등을 척도로 한 ‘세계권력’에서 북미와 유럽을 능가할 것이며, 다극화가 불가피한 추세라는 것. 다극화가 진전되면서 UN 같은 국제기구의 필요성은 증대될 것이라고 했다.
신기술혁명이 일자리 빼앗아갈 판
과학기술의 발달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부정적 위험도 안고 있다. 상이용사의 팔다리 기능을 도와주는 것을 목표로 개발되던 엑소스켈레톤은 전투 기능을 대체할 로봇병사로 진화해 가고, 산업계에선 인간의 능력보다 훨씬 뛰어나고 정교한 로봇이 개도국 저임금 노동자까지 대체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연산하고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로봇은 지금 세계 최고의 의료진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IBM의 로봇 ‘닥터왓슨’은 뉴욕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와 미국 건강기업 웰포인트에서 암을 진단하는 일을 돕고 있다. 왓슨은 입수한 모든 자료와 환자의 진료기록을 검토해 치료방법까지 추천할 정도다.
3D프린팅 기술은 바이오프린팅 기술과 연결돼 앞으로 인공장기를 찍어내는 쪽으로 발전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과학기술 덕에 인간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다.
저자는 신기술이 초래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기 전에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신기술이 새로운 차원의 불평등을 초래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과 생명공학의 발전이 선을 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노령화와 인구부족을 걱정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도시화 역시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물 부족과 대도시 주변의 상당한 환경변화를 초래한다. 메가시티에서 급수채널에 이상이 생길 경우 순식간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인구 증가와 도시화는 에너지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프래킹(수압파쇄) 기술이 불러온 셰일가스 혁명이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켰지만 대체에너지 개발을 위축시켜 장기적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국과 과학기술 발전이 새 세계 열어
저자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주역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로봇이나 3D프린팅 기술 등으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 새로운 형태의 전쟁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중국에 대해선 200여 년 만에 다시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되겠지만 중진국 함정을 비켜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부패척결에 박차를 가하고 법치를 강조하는 것도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중진국 함정을 벗어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경제발전에 실패할 경우 세계가 떠 안을 손실은 27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나노기술이나 생명공학의 발전은 IT나 3D프린팅,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의 발전과 결합돼 우리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이렇게 진행되는 3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 일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가 보편화되면 운전사의 일자리를 위협할 뿐 아니라 자동차 수요에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해 산업구조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것.
인구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IS가 중동의 새로운 전쟁을 일으켰듯이 서남(남부)아시아나 동부아시아에서도 새로운 분쟁 가능성은 자라고 있다. 특히 서남아시아에선 청년층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일자리 창출은 지지부진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사이버 무기의 비약적 발전과 테러리즘이 전쟁을 새로운 양상으로 이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찰 역할을 해온 미국의 지위가 상당히 변했지만 상당기간 이를 대체할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이 잠재력을 갖고는 있지만 중국 내부 문제가 버거워 미국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미국이 복잡하고 다양하며 역동적으로 변하는 국제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도 미국이 새로운 형태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이끌 가능성이 큰데 성공 여부는 (미국의)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은 세계의 변화 속에 나약하기만 한 한국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국내 문제에 갇혀 있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