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러질 듯 빨간 동백을 본 지는 벌써 오래고 이제 철 이른 유채와 바람꽃 소식까지 들린다. 머지않아 매화타령이 울려 퍼지면 봄바람이 귓가를 간지럽힐 터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해 와인 한 잔으로 봄을 느껴보러 나섰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풍취를 물씬 풍기는 플라네타의 화이트와인 ‘알라스트로(Alastro)’와 레드와인 ‘플룸바고(Plumbago)’를 들고 한남동의 이탈리안 비스트로 ‘봄봄(Bombomb)’을 찾았다. 봄봄은 진짜 이탈리아 시골의 작은 비스트로처럼 아담해서 더욱 정감이 갔다.
음식에 맞춰 플라네타 알라스트로를 땄다. 올리브향이 살짝 가미된 신선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신선하고 밝은 열대과일의 향이 다가왔다. 살짝 달콤하지만 과하게 달지 않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와인의 향이 목안 깊은 곳까지 퍼져 나왔다.
먼저 석류 알갱이를 곁들인 ‘루꼴라를 감싼 프로슈토’가 나왔다. 프로슈토햄은 멜론을 비롯한 과일과 함께 내는 게 일반적인데 임 셰프는 와인에 매칭하려고 루꼴라를 썼다고 했다.
(무청 같은) 루꼴라를 프로슈토햄으로 감싸서 냈는데 아주 부드럽게 와 닿았다. 루꼴라의 신선한 야채향과 프로슈토햄의 살짝 짭짜름하면서 쌉쌀한 맛이 멋지게 조화를 이뤘다. 곁들인 석류 알갱이에서 풍기는 달콤한 과일향과 루꼴라의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봄날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플라네타 알라스트로를 곁들이니 출발부터 아주 경쾌했다.
게다가 루꼴라가 뒤에 마신 알라스트로의 복합미를 살려낸 점도 재미있었다. 그냥 마실 땐 밝고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을 주던 와인이었는데 음식을 곁들인 뒤 접한 와인은 약간은 복합적이고 오묘한 맛으로 다가왔다.
이어 ‘체카리우스 파스타’가 나왔다. 포크를 들어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아, 맛있다”라는 찬사가 튀어나왔다. 상당히 고소하면서도 그윽하고 깊은 맛이 풍겼다. 임 셰프는 “우리 입맛에 맞게 버섯을 더 넣었다”고 설명했다. 새콤한 맛의 케이퍼를 비롯해, 앤초비와 블랙 올리브, 붉은 양파, 표고버섯 등을 넣었다는데 상당히 복합적인 풍미가 입안의 모든 미각세포를 일깨우는 느낌이었다.
그 맛에 겨워 알라스트로를 한 모금 마셨다. 과일향이 물씬 풍기던 와인이 이번엔 미네랄향이 살아올라 보다 복합적인 풍미로 다가왔다. 음식에 따라 와인 맛이 천차만별로 바뀌었다.
다음은 오늘의 메인 요리인 ‘버섯 퓨레를 곁들인 안심스테이크’가 나왔다. 임 셰프는 레드와인에 잘 맞게 버섯 퓨레를 곁들였는데 일곱 가지 버섯을 갈아서 만들었다고 했다. 한 가지 버섯만으로 만들 경우 그 버섯 특유의 향이 와인의 풍미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복합적인 맛이 나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음식이 나왔기에 플라네타 플룸바고를 땄다. 부드러운 향신료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잘 녹아든 탄닌이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듯 씻어줬다. 그 뒤로 살아 있는 복합적인 향신료 맛과 강인한 듯 부드러운 과일향이 피어올라왔다. 오래 묵은 포도나무 특유의 농축된 과일향이 풍겼다.
스테이크에선 참새구이 맛이 풍겼다. 단순할 수도 있는 쇠고기 맛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거기에 곁들인 버섯 퓨레를 맛본 순간 ‘어! 재미있네’라는 느낌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묘하고 복합적인 맛이다. 갖가지 버섯향이 그냥 뭉뚱그려진 게 아니라 하나하나 살아 올라오는 듯했다.
그 기분이 와인을 당기게 했고 복합적인 풍미가 살아난 와인은 다시 음식을 당기게 했다. 그렇게 이른 봄맞이 행사는 깊어갔다.
봄봄(Bombomb)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이탈리아 icif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비스트로다. 가게는 한남동 폭스바겐 옆 골목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빌라들과 마주한 골목에 있는데 간판도 작기 때문에 전화로 물어보고 가는 게 찾기 쉽다. 제철 재료로 음식을 내기에 철 따라 샐러드나 파스타, 스테이크, 디저트 등을 새로 준비하는 게 특징이다. 예약제로 운영하므로 미리 전화를 해야 한다. 점심은 11시 30분~오후 3시, 저녁은 오후 6~10시. 일요일과 명절은 쉰다. (02)794-8770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