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레가 스웨덴 예텐버그시 부시장 MBN FORUM 2015 | “남을 이기기보다 나를 이겨라”
입력 : 2015.03.06 16:11:57
MBN Y 포럼 2015의 첫 번째 연설자는 청중을 두 번 놀라게 했다. 데이비드 레가,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예텐버그(또는 고텐부르크) 시의 부시장이다. 그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휠체어 비슷한 것을 타고 나타났지만 딱히 휠체어라고 부르긴 어려웠다. 그건 마치 곡예단의 어릿광대가 타는 세발자전거와 비슷해보였다. 두 팔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었다. 두 다리로 페달을 돌리고 있지만 왜소해 보인다. 그렇지만 무대 중앙으로 나오기까지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휠체어의 이동이 자유롭고 빨랐다. 휠체어 뒷부분에 보조 손잡이가 있다지만 크게 쓰일 일은 없어 보였다.
또 한 번 청중을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당당함이었다.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을 가득 메운 1500명의 청중 앞에서도 그는 오히려 더욱 자신을 뽐냈다. 표정은 유쾌하고 여유로웠으며 행동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이질적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등장하는 단 몇 초 만에 깨뜨린 것이다. 그런 그의 등장, 동작 하나하나에서 범상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그의 예사롭지 않는 등장에 놀라워한 대부분의 청중과 달리 정작 레가의 부모는 그가 태어났을 때 첫 모습을 보고도 크게 놀라진 않은 듯하다.
“저는 중증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어 특수한 접시를 만들어 식사를 했을 정도입니다.”
레가는 태어날 때부터 두 손과 두 발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선천성 근형성 부전증을 안고 태어나 두 팔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두 다리는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없었다. 일반적인 부모였다면 청천벽력과도 같은 절망감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레가의 부모는 달랐다.
“부모님은 저를 문젯거리로 인식한 적이 없었어요. 단 한 번도 저를 슬프게 쳐다본 적이 없었어요. 행복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죠. 그래서 저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두 팔과 두 다리가 조금 불편해도 누구보다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레가가 제시한 성공의 첫 번째 요건은 바로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지지였다.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상대방을 보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멋진 사람이에요’ 하면서 웃어준다면 당신은 정말로 멋져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문젯거리라고 생각하며 쳐다보는 순간 문젯거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기들은 자신이 어떤 신체적 조건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없다. 다만, 부모를 비롯해 주변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주변 사람이 자신을 정상이라 부르면 정상으로 알고, 비정상이라고 하면 비정상이 된다. 아마 대부분 두 팔을 쓸 수 없고 두 다리로 걷기 어려워하면 비정상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그의 불행한 운명과 장래부터 걱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레가의 부모는 그를 ‘멋진 사람’으로 바라보았고, 그것만으로도 레가는 ‘멋진 사람’으로 클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모는 레가에게 맞는 옷을 찾아 주었다. 그가 좀 더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곳, 바로 물속이었다.
장애인 세계수영선수권에서 3차례 우승하고, 14개의 신기록을 세웠으며, 장애인 올림픽에서 우승한 데이비드 레가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2살에 수영을 배웠습니다. 일주일에 14번씩 강습을 받았고, 수년이 지나서야 스스로 수영장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여느 사람들과 다른 신체적 조건이었기에 자신만의 수영법을 만들어 가야 했다. 수없이 도전을 거듭했다.
다행히도 그의 옆에는 물속에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도록 열렬히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사랑하는 가족과 의사, 수영 강사였다. 항상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레가는 조금씩 수영에 익숙해졌다.
이런 레가에게 자극이 되는 계기가 있었다.
“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가 예텐버그에서 열렸는데 25살의 영국 선수가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그 선수가 저에게 말했어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너도 할 수 있지 않겠니?’라고요.”
이 말이 그에게는 작은 울림이 되어 물속에서 매순간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어느 장애인 선수보다 뛰어난 기록을 보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최고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최고가 되겠다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더 나아져야겠다는 것에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남을 이기는 것보다 스스로에 이기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 하기보다 더 나아지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 남을 이기기보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레가를 우뚝 서게 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레가는 자신을 서게 한 그 힘의 원천이었던 ‘사랑’과 ‘지지’를 주변 사람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대중 강연을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지지의 중요성, 희망, 가능성, 도전의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
10년 이상 전 세계를 돌며 긍정적 사고와 리더십에 대해 강연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2004년엔 스웨덴 이벤트 아카데미의 ‘올해의 연사’로 선정됐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장애인에게 특화된 의류 업체 ‘레가웨어’를 창업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11년엔 스웨덴 예텐버그 부시장에 당선됐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말한다. “저는 정상인보다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원이 있었기에 그 이상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레가는 어느 연사보다 2030세대가 몰려든 MBN Y 포럼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오전에 열린 자신이 맡은 기조연설이 끝나고도 이날 포럼을 찾아온 15명의 한국 장애인 수영 선수를 만나 격려하고, 포럼이 끝날 때까지 남아 젊은 학생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스스로의 의지, 가까운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만 있다면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레가는 존재 그 자체로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