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IT업계가 손목 위의 컴퓨터에 이목을 집중했다.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이 웨어러블(입는) 컴퓨터의 일종인 ‘스마트워치’를 탄생시켰다. 보는 컴퓨터에서 들고 휴대하는 컴퓨터로, 더 나아가 입는 컴퓨터로 변신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스마트 손목시계 ‘갤럭시기어’를 공개했다. 비슷한 시각에 퀄컴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스마트 손목시계 ‘토크’를 내놨다. 이에 앞서 소니는 지난 2월 IT업계 최초로 스마트폰과 호환되는 스마트워치를 출시했다. IT 업계에서는 스마트 시계를 스마트 안경과 함께 ‘포스트 스마트폰’ 산업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시계로 자유롭게 통화
올해 초 애플이 스마트 시계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식을 외신이 보도하면서 스마트워치가 본격적으로 핫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둘 다 최초는 아니다. 이미 여러 회사들은 다기능 스마트워치를 시장에 내놓은 바 있다. ‘워치폰’이라는 개념이 처음 일반인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1년 연재를 시작한 ‘딕 트레이시’라는 미국의 탐정물 만화에서는 손목시계로 주인공과 경찰들이 통신하는 내용이 등장했다.
1999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워치폰(SPH-WP10)’을 공개했고, 당시 뉴욕타임스는 ‘딕 트레이시가 사랑할 워치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해당 제품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워치폰은 전화를 거는 손목시계에 가까웠다. 손목에 차기 위해 액정 화면을 작게 만들고 전화를 거는 물리적인 번호 키를 넣지 않는 대신 20개까지 저장된 번호로 음성을 통해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오락실 게임 등에 사용하는 작은 조그 셔틀(jog shuttle)로 번호를 선택하는 방식도 사용했다.
2000년대 초반에 마이크로소프트(MS)도 SPOT(Smart Personal Object Technology)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스마트 시계 기술을 시험했다. 이후 2004년 시계 브랜드업체 순토(Sunto)와 파슬(Fossil)이 일부 대도시의 FM 라디오 대역을 통해 정보를 전송하는 가입형 서비스인 MSN 디렉트(MSN Direct)를 활용한 시계 모델을 출시했다. 그러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MS는 2008년 결국 서비스를 중단했다.
소니도 스마트워치 시장에서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스마트워치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 6월 ‘스마트워치2’를 공개했다. 1.5인치의 올레드(OLED) 컬러 터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소니 스마트워치는 스마트폰과 연동돼 전화, 문자,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이메일 등의 각종 메시지를 수신하고 확인한다. 단 갤럭시 기어와 달리 전화 통화는 불가능하다.
모토롤라 역시 지난해 1월 손목시계형 미디어플레이어 ‘모토엑티브’를 선보였다. 1.6인치의 정전식(손의 미세 전류를 인식하는 방식) 멀티터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스마트워치다. 위성항법시스템(GPS)과 와이파이가 내장됐고, FM라디오 기능도 갖췄다.
갤럭시 노트3와 연동…앱 지원도 다양
이번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가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갤럭시 노트3와 연동돼 스마트폰의 활용도를 높여 주는 ‘스마트 컴패니언 제품’이기 때문이다. ‘착용한다’는 개념을 살려 손으로 조작하는 부분보다 음성으로 작동하는 기능이 크게 늘었다. 메시지·이메일·일정 등 간단한 정보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무선으로 스마트폰과 연동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거나 직접 연결할 수 있다.
기본 탑재 앱 중 하나인 ‘S 보이스’를 활용해 음성으로 간편하게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있어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다. 일정과 알람 세팅이나 날씨 확인도 음성으로 제어한다. ‘음성 메모(Voice Memo)’ 기능을 활용하면 중요한 대화를 저장할 수 있고 그것을 텍스트로 변환도 가능하다.
또 메시지, 이메일 등을 받으면 갤럭시 기어를 통해 알려준다. 이 알림 화면이 꺼지기 전에 갤럭시 노트3를 들면 바로 자세한 내용을 확인(스마트 릴레이 기능)할 수 있게 연동됐다.
갤럭시 기어를 착용한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1.5m 이상 떨어지면 자동으로 휴대폰의 화면 보호 기능을 활성화해 개인 정보를 보호한다.
착용한 상태에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를 위해 건강ㆍ여행 관련 앱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론칭 시점에는 갤럭시 기어에 특화된 70여 개의 앱이 지원될 예정이다. 대표적인 앱으로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킹 앱 ‘반조(Banjo)’ ‘패스(Path)’ △가족위치추적 앱 ‘라이프360(Life360)’ △칼로리 계산을 통한 체중관리 앱 ‘마이피트니스팰(MyFitnessPal)’ △러닝 관리 앱 ‘런태스틱(Runtastic)’ △여행일정 관리앱 ‘트립잇(TripIt)’ 등이 있다.
LG전자 역시 올해 초 스마트 손목시계 개발에 착수했다. 최근까지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계열사와 함께 부품 탑재 테스트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과 구글도 이미 스마트워치 시장에 진출할 의사를 밝히고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갤럭시 기어는 그 자체의 성능을 넘어 앞으로 열릴 웨어러블 디바이스 세상에 신호탄 구실을 톡톡히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