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HDC·서한·성우·KCC그룹.재계에서는 이들 5개 중견그룹을 범현대가로 부르고 있다. 그룹명에서 ‘현대’라는 이름을 찾을 수는 없지만, 모두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동생들이 창업한 기업집단이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이유로 범현대가의 방계그룹들을 ‘현대가의 숨은 힘’이라 부른다.
사실 정주영 창업주의 동생들은 현대그룹의 사업 초기였던 1950~70년대까지 정 창업주와 함께하며 오늘날의 범현대가를 일궈냈다. 가족이면서 동업자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현대가 방계그룹들의 혼맥 역시 소박하고 자유롭다. 연애결혼에 자유로웠던 정 창업주의 가풍이 형제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소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촌 김성수 가문은 물론, 재계의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 가문과도 사돈을 맺고 있다. 또 롯데와는 물론 한진가문과도 이어지는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알고 보면 알찬 현대가 방계그룹들을 살펴봤다.
부활 준비 중인 방계 맏형 한라건설
정주영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故 정인영 명예회장은 한때 재계 순위 12위권의 중견그룹이었던 한라그룹을 일궜으나,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를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후 차남인 정몽원 회장이 한라건설을 주력으로 부활에 나서, 지난 2008년 주력 계열사였던 만도를 재인수했고 최근에는 한라공조 인수에도 나서고 있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원래 동아일보 신문기자 출신이다. 14세 때 상경해 고학으로 YMCA 야간영어과를 2년 다니고, 일본 유학을 거쳐 기자가 됐다. 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 형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부산 피난 시절엔 미군 사령부 통역 일을 하면서 미 공병대의 일감을 현대건설에 연결해줬다. 이것은 현대건설이 미군공사를 휩쓸면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이후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했고, 19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으며 오늘날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닦았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불어 닥친 중동열풍 과정에서 형님인 정주영 창업주와 이견을 보이면서 독립했다. 사실 정인영 명예회장은 현대건설에서 나오기 훨씬 전인 1962년에 이미 현대양행이란 회사를 설립한 상태였다. 현대양행은 창원에 130만평 규모의 종합기계공장을 건설해 재계를 놀라게 했지만, 1980년 신군부의 산업합리화 조치로 정부에 귀속된 후 한국중공업을 거쳐 현재는 두산그룹(두산중공업)에 매각됐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부품, 중장비 등 장치산업 중심으로 그룹을 키웠다. 1996년에는 자산 6조2000억원, 매출 5조3000억원대의 재계 12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한라그룹에 위기가 왔다. 8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 삼호공단 조성사업과 조선소, 플랜트 공장이 한라그룹 해체의 단초가 됐다.
한라그룹의 혼맥은 그야말로 소박하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인 故 김월계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뒀는데, 장녀인 故 정형숙 여사는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장남인 정몽국 한라그룹 전 부회장은 이광희 여사와 결혼했다. 이광희 여사는 한때 한라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바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라그룹 회장에 오른 차남 몽원 씨는 교회 지인의 소개로 TBC 아나운서였던 홍인화 여사를 만났다. 홍 여사의 부모님은 평범한 약사 집안으로 알려졌는데, 외삼촌인 서상목 전 국회의원이 눈에 띈다.
부시 미 대통령 방한 당시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
조용한 둘째와 유일한 여동생
둘째 동생인 故 정순영 현대시멘트그룹 명예회장도 현대건설 신화의 초기 멤버다. 정순영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일하다 1970년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분가했다.
이후 1975년에는 현대종합금속을 세워 덩치를 키웠고, 1987년 성우오토모티브를 추가했다. ‘성우그룹’이란 사명을 쓰기 시작은 것은 1990년부터다. 이때 성우리조트를 설립하며 처음으로 성우란 사명이 등장했다. 이후 19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 1996년엔 성우전자를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사세를 확장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2세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줬다. 장남인 몽선 씨에게는 현대시멘트와 성우리조트를, 2남인 몽석 씨는 현대종합금속을 맡았다.
3남인 몽훈 씨는 성우전자와 성우캐피탈의 경영에 나섰고, 4남인 몽용 씨는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에너셀을 받았다. 분가 과정에서 잡음은 없었다. 정순영 명예회장이 그동안 자녀들이 맡아 왔던 회사들을 그대로 물려줬기 때문이다. 경영승계 이후에는 형제들간 지분 정리도 일찌감치 끝내 모두 계열분리됐다.
현대가의 혼맥에서 그렇듯 성우그룹도 눈에 띄는 특별한 사돈은 보이지 않는다. 정순영 명예회장은 부인인 박병임 여사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몽선 씨는 교육자 출신으로 성우리조트 고문을 역임했던 김태휴 씨의 딸 故 김미희 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김 여사는 1993년 태릉 아이스링크 화재사고로 먼저 세상을 떴다. 이후 몽선 씨는 평범한 집안의 진영심 여사와 재혼했다. 차남인 몽석 씨의 처가도 대구의 중소기업체로 알려져 있으며 3남인 몽훈 씨의 장인은 예비역 장성 출신의 직업군인이다. 반면 4남인 몽용 씨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가문의 손녀인 김수혜 씨와 결혼했다. 정몽용 회장의 장인이 인촌선생의 막내아들인 故 김상겸 전 대한체육회 부회장이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은 물론 삼양사그룹과도 이어진다. 정주영 창업주의 유일한 여동생인 정희영 여사는 자동차 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故 김영주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김영주 명예회장은 정 창업주가 ‘기계박사’라고 불렀을 정도로 뛰어난 손재주를 자랑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정 창업주가 일제강점기 때 징집을 피해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운수업을 하며 시작됐다. 김영주 명예회장이 당시 그곳에서 운전기사로 일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 창업주의 유일한 매제가 된 김영주 명예회장은 현대건설에서 건설기계의 정비와 관리를 담당하다 한국프랜지공업을 창업하며 분가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윤수·근수 형제를 뒀는데, 장남인 윤수 씨가 한국프랜지공업의 경영을 맡고 있다. 장손인 용민 씨는 계열사인 서한산업의 대표를 맡고 있다. 차남인 근수 씨는 일찌감치 독립해 울산화학, 퍼스텍 등을 계열사로 거느린 후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현재 근수 씨의 장남인 용민 씨가 후성(주)의 사장을 맡아 3세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정세영 회장이 1983년 국산 신차 스텔라 발표회에서 정주영 명예회장과 휘장을 걷
어내고 있다
정인영 명예회장(오른쪽)이 1996년 이탈리아 대통령
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
화려한 혼맥 구축한 넷째
넷째 동생인 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가장 오랫동안 정주영 창업주와 현대그룹의 경영을 맡았다. 현대건설에서 형님들과 손발을 맞추던 기간을 빼고도 1968년 설립부터 관여해 2000년 정 창업주의 권유로 현대차에서 물러날 때까지 32년의 세월을 장형과 함께했다. 이후 주택건설업체였던 현대산업개발을 넘겨받아 장남인 정몽규 회장과 함께 건설업계 빅5로 키워냈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당초 기업인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교수가 되고 싶어 했다는 것. 그래서 고려대 정외과를 마친 뒤 미국 유학(마이애미대학 국제정치학)까지 마쳤다. 하지만 자신이 공부한 것을 사용할 데가 없어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강의활동을 하던 중 장형의 권유로 현대건설에 합류하며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1967년 시멘트 공장 기계를 사기 위해 미국에 와 있던 정세영 명예회장은 ‘포드와 접촉하라’는 형님의 지시를 따르면서 자동차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와 함께 1968년 현대자동차가 설립되며 32년 ‘포니 정’의 자동차 인생이 시작됐다.
현대그룹의 자동차 사업 진출은 일사천리였다. 포드와의 조립계약을 맺은 뒤 1968년 3월 현대차가 공장 건설에 나섰다. 뒤이어 1968년 11월 제1호 코티나를 출시했고, 포드의 중형차 20M와 자체 설계한 첫 버스도 내놓는 등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1970년 제1차 석유파동이 닥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할부로 팔았던 자동차의 할부금 수금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정 창업주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자기 사업에 한창이던 막내 동생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이 현대차에 합류하며 채권회수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세영 명예회장은 독자모델 개발에 나서 1974년 국산 1호차인 ‘포니’를 탄생시켰다. 포니는 같은 해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모터쇼에 출품돼 주목을 받았고, 1976년에는 본격 생산에 나서 중남미를 중심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이때부터 글로벌기업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현대차를 튼실하게 키워낸 정세영 명예회장은 그러나 1999년 장형인 정 창업주의 한마디에 30여년 넘는 청춘을 바쳤던 현대차를 장조카인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아들인 몽규 씨와 함께 현대산업개발에 둥지를 틀었다.
현대가의 일원답게 정세영 명예회장의 결혼은 소박하다. 그는 공부에 유학까지 마치다 보니 서른이 넘도록 노총각이었는데, 유학 시절 친구의 소개로 박영자 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지인에 따르면 정세영 명예회장은 당시 이화여대 3학년이었던 박 여사에게 첫눈에 반해 세 번째 만나는 날 청혼을 했다고 한다. 결혼까지 채 100일이 안 걸린 초고속 결혼이었다.
두 사람의 슬하에는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현대가에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혼맥을 뽐낸다. 먼저 장녀인 숙영 씨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노경수 박사와 결혼했다. 이 혼사를 통해 정세영 일가는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가문까지 단숨에 연결된다. 맏사위인 노경수 박사의 동생인 노철수 아미쿠스 대표의 부인이 바로 홍라영 삼성리움미술관 부관장이기 때문이다.
홍 부관장 언니는 홍라희 삼성리움미술 관장으로 남편이 바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며, 오빠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다. 또 故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차남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의 부인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이모가 바로 홍 부관장이다. 이런 이유로 정세영 명예회장은 다른 형제들에게 유독 화려한 혼사를 치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뿐 아니다. 장남인 몽규 씨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부인인 김나영 여사를 만났다. 연대 수학과를 나온 김 여사는 전 대한화재보험 김성두 사장의 딸이다.
막내딸인 유경 씨는 김석성 전 전방 회장의 막내아들인 종엽 씨와 결혼했다.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한 유경 씨는 미국 뉴욕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한 후 현대산업개발에서 잠깐 근무한 바 있다. 결혼 후에도 삼성동 파크하얏트의 경영에 관여하기도 했다.
눈에 띄는 점은 유경 씨의 남편인 종엽 씨가 사촌간인 故 정몽헌 현대상선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도 인척간이란 점이다. 김석성 전 회장은 김창성 전 경총 회장과 사촌간인데, 김창성 전 회장의 누나인 김문희 여사가 바로 현 회장의 어머니다. 정주영 창업주와 정세영 회장이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 셈이다.
정세영 회장이 워싱턴D.C. 에 한국전 참전 무명 용사비 건립을 위한 미국 정부의
기금 모금에 거액을 쾌척한 뒤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인사를 하고 있다
한라그룹 창립 46주년 기념식에서 정몽원 회장(오
른쪽)이 그룹 임직원을 대표한 박성석 배달학원 이
사장에게서 재직 30년 기념패를 받았다
안타깝게 먼저 간 다섯째와 자수성가한 막내
다섯째 동생인 故 정신영 씨는 정주영 창업주가 생전에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동생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시절 만난 부인 장정자 씨와 가정을 꾸렸으나 지병으로 1962년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음대 첼리스트 출신인 장정자 여사는 이후 아주버님(정주영 창업주)의 배려로 현대학원(현대고)을 맡아 경영하고 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인 몽혁 씨는 30대 초반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에 올랐으나 2002년 물러났다. 현재는 현대종합상사 회장으로 있다. 몽혁 씨의 부인은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다. 장정자 여사의 딸인 일경 씨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블룸버그대학 교수인 임광수 씨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으로 불릴 정도로 장형인 정주영 창업주의 성격을 꼭 빼닮은 막내 동생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은 현재 범현대가 창업 1세대 형제 중 생존해 있는 유일한 큰 어른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장형의 권유를 뿌리치고 나홀로 창업에 나서 지금의 KCC그룹을 일궈냈다.
거의 모든 건축자재를 만드는 KCC그룹은 현재 정상영 명예회장의 자녀들인 몽진·몽익·몽열 3형제가 나눠 경영을 맡고 있다.
이 중 그룹 주력회사인 KCC 경영을 맡고 있는 장남 몽진 씨는 정상영 명예회장의 자랑거리다. 용산고, 고려대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MBA를 마친 몽진 씨는 비즈니스 영어의 전문가로 5개 국어에 능통하다.
이 때문에 해외 업체들과의 협상이나 기술협약 시 직접 담판을 짓는다. 형인 몽진 씨와 함께 금강고려화학의 경영을 맡고 있는 차남 몽익 씨도 형에 못지않다.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을 전공했으며, 조지워싱턴대 국제재정학 석사학위를 4년 만에 받았기 때문이다. 선 굵은 카리스마 성격이 형인 몽진 씨의 스타일이라면 몽익 씨는 신중하고 꼼꼼한 스타일에 가깝다.
KCC건설을 맡고 있는 3남 몽열 씨는 술과 낭만을 좋아하는 기분파로 건설 체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사장 승진 후 주택사업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2년 만에 ‘스위첸(아파트)’과 ‘웰츠타워(주상복합)’을 주요 브랜드 반열에 올려놨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자랑하는 이들 3형제들을 키워낸 이는 바로 조은주 여사다. 조 여사는 현대건설 경리팀에서 일하다 정상영 명예회장을 만나 연애결혼했다.
장남인 몽진 씨 역시 서울대 음대 출신 플루티스트 홍은진 씨와 소개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퍼시픽컨트롤스 홍준 사장이 처남이다. 두 사람을 소개한 이는 사촌형인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치과 주치의인 성균관대 임순호 교수와 동서관계다.
차남인 몽익 씨는 최현열 NK그룹 회장의 차녀인 최은정 씨와 결혼했다. 은정 씨의 언니가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다. 여기에 몽익 씨의 장모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 씨다. 3남인 몽열 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의 이수잔 씨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