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말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래 4년이 지난 올해에도 세계경제가 불안한 모습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같은 남유럽 국가에서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돌입하고 세계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미약하나마 경기회복의 기미가 나타나고 있는데 다시 침체국면에 들어서면 서민들은 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방향을 잡기란 쉽지 않다. 통화정책에 있어서는 금리를 올리기도 어렵고 내리기도 어렵다. 금리가 오랫동안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왔고 가계부채도 그동안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에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 반면 경기상황이 더 악화되면 오히려 금리를 낮춰야 할지도 모른다.
재정정책에서도 지출을 늘려야 할지 줄여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부가 내년까지 균형재정을 회복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대내외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긴축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너무 경직적으로 재정을 운용하기보다는 경기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재정정책은 1997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매우 적절히 반응했다. 위기가 가시화되자 즉각적으로 적자를 대폭 늘려 경기부양에 나섰으며 급박한 순간이 지나가고 경기가 안정되자 곧 긴축기조로 선회했다. 이는 정부부채의 누증을 막고 건전재정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재정긴축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다. 정치인, 공무원, 국민 모두 재정긴축을 싫어한다. 정치인들은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공무원들은 자신의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긴축에 반대한다.
이처럼 모든 집단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면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 이탈리아가 그러한 예이다. 그 결과는 재정위기이고 국가파산이다.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뼈아픈 지출삭감을 단행하는 과정에서는 저소득층이 가장 큰 어려움을 보게 된다.
반면에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들은 강력한 재정규율을 도입해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 왔다. 재정규율은 흔히 재정적자나 재정지출의 규모를 사전에 설정하는 형태로 도입된다. 사회 내 개별 이익집단의 요구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총량적인 목표를 설정한 후 그 안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설정한 2013년 균형달성 목표는 이처럼 재정규율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향후 유럽의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미국이나 중국마저 경기침체로 들어설 경우에는 우리도 균형달성 목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재정규율의 확립을 위해 균형달성 목표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는 빈번해지는 국제 금융위기, 남북통일, 인구 고령화 등의 장기적 재정위험 요인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또 현시점에서 공기업 및 지방정부 등에 감춰져 있는 실질적인 재정부담을 고려할 때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우리나라는 재정상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작년 말 정부부채는 GDP 대비 34%에 해당했는데 주요 선진국들의 부채비율이 최근 100%를 넘나들고 있는 것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도 위기 이전인 2007년에 부채비율이 31%에 불과했던 점을 생각하면 안심할 수 있는 부채수준이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스페인은 1인당 소득(약 3만달러)이나 인구규모(약 5000만명)의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나라이다.
다행히 우리나라 국민들은 남유럽과 달리 재정건전성을 지극히 중요하게 여긴다. 또 위기에 봉착했을 때 협동단결해 극복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우리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