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사 임원자리에 오르게 된 A씨는 그룹사의 오너 2세가 CEO로 있는 계열사와 수개의 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계약자체에 딱히 유리하거나 불리한 내용은 없다고 판단했으나 한 시민단체에서 회사기회유용 및 부당지원 혐의로 400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를 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다행히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음을 확인한 A씨는 보험금을 통해 자진배상을 통한 합의를 추진 중이다.
# 대형증권사 사장 J씨는 작년 6월 주식워런트증권(ELW) 매매과정에서 초단타 매매자(스캘퍼)들과 결탁해 내부시스템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됐다. 법률관계가 복잡하고 규모가 큰 소송인 만큼 J씨는 대형로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상당한 법률비용이 소요됐지만 임원배상책임보험을 통한 방어비용 지원으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최근 저축은행 등의 금융회사를 비롯해 기업임원들의 부당행위로 인한 피해사례가 자주 발생하면서 임원배상책임보험 가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이란 기업의 임원이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임원의 고의적인 사기나 횡령·배임 등의 형사상 법령위반 행위를 제외한 과실이나 의무위반, 태만, 신의위반 누락 등의 부당행위로 인해 주주나 제3자에 경제적 손해를 입혔을 경우, 임원이 부담하게 되는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을 담보해 주는 보험이다. 기업은 예상외의 막대한 비용지출을 막을 수 있고 손해를 입은 주주나 제3자 입장에서는 더욱 안정적으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장점을 가진 특종보험상품이다.
과거 외환위기 때 이사들에게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책임 문제가 대두되며 임원배상책임보험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주요선진국에 비해 국내기업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가입률이 저조한 상황이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의 경우 상장기업의 85~95%가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는 반면 업계에 따르면 국내기업들의 가입률은 30%를 갓 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0년 기준 10대 기업의 경우 가입률이 90%를 넘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21%에 불과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저축은행 등의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입률을 기록했다.
중소기업 낮은 가입률 잘못된 인식이 문제
사실 임원배상책임보험가입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욱 시급하다. 중소기업들이 임원배상책임보험가입을 외면하는 이유는 상품에 관한 잘못된 인식과 이해로 비롯됐다는 것이 보험업계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한 저축은행관계자는 “보상한도액이 큰 만큼 보험료도 큰 편이라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소멸성보험이기 때문에 1년 간 소송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버리는 돈’이라는 인식이 강해 필요한줄 알면서도 가입을 망설이게 된다”고 밝혔다. 또한 보험 상품에 대한 이해부족 역시 가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에 들어놓고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인데도 몰라서 청구를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금융기관의 경우 임원배상책임보험이 권고사항이니 가입은 했으나 보험금 청구를 해야 하는 사안인지를 모르거나 아예 가입사실을 잊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또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면 ‘가입만 되어 있으면 된다’라는 식이다. 보험금 청구가 활성화돼야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해율이 증가하더라도 좋은 보험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가입사가 증가할 테지만 현실적인 이해부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험료 산정 투명성 높여야
임원배상책임보험은 특정 기업의 1인 또는 다수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이기 때문에 다수의 보험가입자를 확보해 보험요율을 낮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수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만큼 보험료도 만만치 않다.
가입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적은 금액으로 큰 보상을 해주는 보험사를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특정기업의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인 임원배상책임보험은 보험료 산정과정의 주관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보니 보험요율 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회사규모도 규모지만 임원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이다 보니 (임원의) 과거 경영성과 등도 항목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같은 규모의 회사라도 보험료 차이가 나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의 보험료산정은 원수보험사와 재보험사의 계약으로 결정된다. 원수보험사가 재보험사에 사업보고서, 재무재표, 지배구조 등 가입후보 기업정보를 제출해 보험료 책정을 의뢰하면 재보험사가 자체적인 분석을 통해 보험료를 산정해 원수보험사와 협의하는 식이다. 원칙적으로 재보험사의 결정에 의해 보험료가 산정된다.
그렇다보니 실무적으로 원수보험사의 계약물건 수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기도 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요율 산정을 기본적으로 재보험사가 보험료가 책정한다고 해도 무방하다”라며 “다만 원수보험사의 영업 파워에 따라 차이가 나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재보험사 입장에서 많은 계약물건을 손에 쥐고 ‘협상테이블’에 앉는 대형원수보험사들의 요율은 낮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일계열보험사 가입 논란
임원배상책임보험의 장점으로 가입기업의 경영활동 등에 대한 간접적인 감시기능을 들 수 있다. 이는 보험의 인수나 연단위의 갱신과정에서 여러 형태로 실현될 수 있다. 보험사는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는 후보기업의 경영상태, 재무상황 지배구조 등 여러 가지 사항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국내에는 아직 이러한 전례가 없지만 미국 등은 경우에 따라 보험사가 보험인수 과정에서 사외이상의 증원 및 감사위원회의 설치 등 회사의 지배구조 변경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보고서를 통해 “은행, 저축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 부실경영 사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사회이사·감사 등의 경영진에 대한 견제·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점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원배상책임보험이 그러한 감시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현재 국내 대기업들의 가입양태를 살펴보면 계열사 내에 손보사를 보유한 경우 90% 이상이 동일계열 보험사를 통해 임원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임원배상책임보험 감시기능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 기업이 동일계열 보험사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의 주요 보상범위 보상 받을 수 있는 손해
1. 임원의 배상책임
임원의 부당행위로 주주나 제3자가 임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해당 임원이 부담하는 손해배상금과 소송비용.
2. 임원에 대한 회사의 보상
상기 배상청구에 대해 법률이나 정관의 규정에 따라 해당 임원의 배상책임을 회사가 보상함으로써 발생한 회사의 손해.
보상 받지 못하는 손해
1. 임원의 의도적인 사기행위, 의무해태 또는 고의적인 법령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