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올해로 창립 116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두산은 이제 겨우 116세라며 스스로를 ‘청년 두산’이라고 말한다. 가장 오래된 기업이긴 하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변화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변화, 원칙 있는 환경 적응력이 바로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의 성장 동력이자 핵심 DNA이다.
두산의 창업주는 고 박승직 씨다. 186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박승직 씨는 보부상으로 활동하다 1896년 서울 배오개시장(지금의 종로 4가)에서 ‘박승직상점’을 열었다. 이 박승직상점이 바로 두산의 모태이다. 1946년 박승직 선생의 장남인 고 박두병 초대 회장이 박승직상점을 두산상회(현 두산글로넷)로 바꿈으로써 두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두산은 동양맥주, 두산산업,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한양식품 등을 설립하면서 소비재 산업, 무역업, 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소비재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던 두산그룹은 창업 100주년을 맞았던 1996년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과감한 변신에 나선다. 소비재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기로 하고,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지분은 물론 OB맥주 영등포 공장을 매각했다. 이어 두산은 1997년에 음료사업을, 1998년에는 주력사업인 OB맥주와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도 매각했다.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상당한 현금 흐름을 개선함과 동시에 넉넉한 현금을 확보한 두산그룹은 다음 해인 1997년 대한민국을 휩쓴 외환위기의 파도에서 신 성장 엔진을 찾는 데 주력할 수 있었다.
두산이 새롭게 눈을 돌린 분야는 인프라 지원사업(ISB, Infrastructure Support Business)이었다. ISB 사업은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기존의 사회간접시설뿐만 아니라 에너지, 국방, 생산설비, 물류와 운송설비까지 망라하면서 세계시장 규모가 연간 수천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첫 출발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였다. 이후에도 두산은 고려산업개발(2003년, 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2005년, 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인수하며 대표적인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했다.
국내 굴지의 중공업 그룹으로 자리를 잡은 두산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담수설비(두산하이드로테크놀로지),발전소 보일러(두산밥콕),친환경 엔진(미국 CTI사), 소형 건설장비(밥캣), 발전소 터빈(스코다파워) 등 원천 기술을 확보한 외국 회사들도 차례로 인수했다.
두산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1998년 3조400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26조20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교해 11% 성장한 매출 29조1000억원, 영업이익은 29% 늘어난 2조2000억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두산의 목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두산은 2020년 글로벌 200대 기업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산은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힘을 ‘사람’에서 찾는다. ‘사람이 미래다’로 대표되는 두산 인재경영의 핵심전략은 2G전략이다. 2G 전략(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은 사람의 성장으로 사업의 성장을 이끈다는 것으로 인재경영을 의미한다. 기업 광고에서도 ‘사람이 미래다’라는 경영철학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만큼 두산은 인재의 선발과 육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