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 &Case⑥…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알츠하이머란 불행
입력 : 2012.04.25 14:44:23
줄리 크리스티에게 전미비평가협회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영화 . 40년이 넘는 시간을 행복하게 살아온 그랜트와 피오나 부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의 불행에 대한 영화이다.
이 불행을 차지도 넘치지도 않게 담담한 터치로 그려낸 이 영화가 의외로 1979년생 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다고 한다. 40년이 넘게 사랑했던 남편을 요양원에 들어가 면회 금지기간이 지나 동안에 잊어버린 피오나. 그런 피오나를 이해하고 지켜봐주는 그 랜트의 모습. 이 모습을 보다가 문득 “그랜트라면 피오나에게 한 정치산이나 금치산을 선고받게 할 수 있었을까”하는 못된 질문이 떠오른다. 변호사 아니랄까봐, 참 나쁜 버릇이다.
A씨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남편의 사업을 이어받아 이를 키워냈고, 장남도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이에 합류하여 A씨를 도왔다. 딸들도 있었지만 딸들은 외국에 거주하여 A씨를 가까이서 모시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중 A씨가 치매에 걸리게 되었고, 자식들 사이에 재산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였다. 딸들은 가정법원에 A씨에 대한 금치산선고를 구하는 심판을 신청하였고, 장남은 A씨의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다투었다.
법원은 A씨에 대한 신체감정도 하고 나아가 법정에서 직접 A씨를 심문하기도 한 뒤, 금치산이나 한정치산 선고를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어머니로서는 치매에 걸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을 받고 계실 터인데, 재산 문제 때문에 어머니로 하여금 금치산이나 한정치산 선고까지 받게 한다면, 그것은 어머니께 더 큰 고통을 드리게 되는 일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후 10년이 다 되어 가고 향후 몇 년 내에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치매를 비롯한 노인 질병은 노인 인구와 관련하여 논의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치매는 노인의 의사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성인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후견제도가 필요하다는 논
의의 중심이 되어 왔으며, 이와 같은 논의의 결실로 성인에 대한 새로운 후견제도가 민법 개정안에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현행 민법은 성인에 대한 후견제도로 금치산선고와 한정치산선고 만을 인정하고 있는데, 금치산선고는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는 자’ 라고, 한정치산선고는 ‘심신이 박약한 자’ 또는 ‘재산의 낭비로 자기나 가족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는 자’라고 인정하여 소위 행위무능력자임을 선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렇듯 기존의 성인에 대한 후견제도는 재산행위에 대한 행위능력을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실제로 대상 고령자의 실제 잔존 행위능력을 전혀 존중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법원의 선고 사실은 의무적으로 가족관계등록부(기본증명서)에 공시되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가족들이 이 제도를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 왔다. 나아가 실제 신청이 이루어지더라도 법원이 ‘행위능력의 박탈 또는 제한’이라는 판단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어 행위능력에 일정한 정도의 제한만이 있는 경우에
는 쉽사리 금치산이나 한정치산을 선고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신청이 인용된 건수는 신청이 이루어진 건수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2006년도부터 성인 후견제도를 다양화하자는 법 률안이 논의되었고, 그 결과로 민법 일부가 2011년 3월7일에 개정되었으며, 개정된 조문들은 2013년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새롭게 도입된 성인에 대한 후견제도는 잔존 행위능력을 존중한다는 점과 후견의 범위가 재산관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상보호를 포함함으로써 피후견인의 전반적인 생활을 실질적으로 후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후견제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고, 가장 발전된 형태의 성년후견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개정된 성인에 대한 후견제도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후견이 필요한 기준이 되는 능력의 개념이 정신능력이 아닌‘사무를 처리할 능력’으로 바뀌어, 소위 ‘기능적’인 능력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질병, 노령, 기타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
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이 성년후견의대상이 되고, 위와 같은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한정후견의 대상이 된다. 또한 위와 같은 제약으로 일시적, 또는 특정한 사무에 관하여 후원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제도로 특정후견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행위능력을 일반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으면서 일시적 후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정된 후견제도는 후견을 받는 사람의 의사와 잔존 능력을 모두 존중하고 있다. 성년후견과 한정후견을 개시하는 심판을 할 때 법원은 후견을 받는 사람의 의사를 고려하여야 하고, 특정후견은 후견을 받는 사람의 동의가 없으면 아예 개시할 수가 없다. 법원은 성년후견을 받는 사람의 법률행위 중에서 취소할 수 없는 행위의
범위를 정해둘 수 있다.
한정후견을 받는 사람의 법률행위는 가정법원에서 한정후견인의 동의를 얻도록 정한 행위가 아닌 한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고, 특정 후견을 받는 사람의 법률행위는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또한, 성년후견을 받는 사람과 한정후견을 받는 사람의 행위 중 일용품의 구입 등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그 대가가 과도하지 아니한 법률행
위는 모두 유효한 행위가 된다. 뿐만 아니라, 후견인을 정하고 후견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도 더 큰 탄력이 부여되었다. 종전과는 달리 후견인의 순위가 법으로 정해지지 않고 가정법원이 후견을 받을 사람의 의사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후견인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여러 명의 후견인을 선임하거나 법인(法人)인 후견인을 선임할 수도 있다. 후견인의 대리권이나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행위의 범위 역시 법원이 개별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민법은 또한 성년후견에 관하여 신상보호 규정을 두어, 후견을 받는 사람의 복리를 존중하여 사무를 처리하라는 규정, 후견을 받을 사람에 대한 의료행위와 관련된 규정, 후견을 받을 사람의 주거와
관련된 규정을 특별히 두고 있다. 후견을 받을 사람 스스로가 향후의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후견계약을 체결해 둘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새로 도입하였다. 이렇듯 민법에 새로 도입된 성인에 대한 후견과 관련된 제도들은 종전의 금치산·한정치산 제도가 이루지 못한 실질적 후견을 달성 하기 위한 많은 고민과 의견 수렴의 결과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기존의 제도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이 모두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 도입된 개념인 ‘사무처리능력’을 법원이 과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후견을 받을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행위의 폭 을 어떻게 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인지, 후견을 받을 사람에 대한보호에 지나치게 치중하다가 제3자에 대한 거래의 안전을 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등, 제도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법원과 우리
사회가 많은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제도에 대하여는, 후견을 필요로 하
는 가족 구성원의 행위능력을 예전처럼 모질게 박탈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후견 개시사실에 대한 공시 역시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하며, 후견을 받는 사람의 의사와 능력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면에서, 종전보다는 훨씬 많이 이용될 수 있는 제도가 될것이라고 기대를 걸어본다. 극단적인 것 외에는 달리 처방이 없다면 차마 처방을 받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을 수밖에 없겠지만, 적절하게 필요한 한도 내에서의 처방만을 받으며 아프지 않은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한다면, 그 처방을 찾는 사람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새로운 형태의 후견 제도가 도입 취지처럼 바람직하게 정착되고 운영된다면, 후견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존중되는 만큼, 후견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가족들의 선택도 진정한 행복을 지향한 선택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