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grapher] 강병인 캘리그래피 연구소 ‘술통’ 대표, “스토리 담긴 글씨가 최고의 명필”
입력 : 2012.02.27 13:57:10
술을 좋아해 ‘술통’이라 이름 지은 공방에선 제주도 부엌문이 손님을 맞았다. 100년은 족히 돼보이는 부엌문은 세월의 더께를 이기지 못했는지 이제는 눕혀져 탁자로 쓰이고 있었다. 그 운치가 편안해 잠시 선 채로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한글의 향연이다.
공방 주인 강병인은 한글로 붓글씨를 쓰는 사람이다. 검은 천이 덮인 커다란 탁자에 화선지를 뉘고 손수 먹을 갈아 붓을 여민다. 그러곤 선 채로 수백 장의 한글을 토해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서예를 접하곤 스스로 영묵(永墨)이란 호를 지었으니 먹향과 함께한 세월은 이미 30년을 훌쩍 넘어섰다.
“군에 가서도 근무를 마치면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썼어요. 연대 인사과에 있었는데 글씨체가 예쁘다고 연대장 훈시는 도맡아 썼었죠. 그땐 이게 업이 될지 몰랐는데 이렇게 밥 먹고 삽니다.(웃음)”
하루에도 수백 장의 화선지를 메운 그의 한글은 사각의 틀에 갇혀 있길 거부하고 일상을 파고든다.
영화나 드라마, 책의 제목, 광고와 제품의 로고, 길거리 간판, 아침식사 대용식부터 퇴근 후 손에 잡힌 소주병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둥둥 떠다닌다. 서예의 서체에 디자인적 요소(캘리그래피)를 입힌 그의 한글은 같은 글이라도 같은 형태가 없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김춘수의 ‘꽃’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듯 붓으로 표현한 글꼴 또한 내용과 의미를 담아 개성을 살려낸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덕에 그 또한 요즘 상종가다. 최근엔 한 스마트기기의 CF에 출연해 손 글씨의 친근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휴, 10시간을 촬영했어요. 어찌나 춥던지 떨면서 했는데, 한글이 주제라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팬? 이게 지상파용 CF가 아니라 아직은 알아보는 분이 별로.(웃음)”
상업제품의 타이틀에 한글 로고가 늘며 늘 바쁜 일상이지만 그는 요즘 한없이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다.
“캘리그래피가 한글 대중화에 작은 역할을 했다지만 그러다 보니 실력이 없는 이들도 뛰어들어 가르치려 합니다. 또 하나, 상업적으로 의뢰받은 작품은 작가의 의도보다 오너의 취향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아요. 친숙해진 만큼 귀하게 지켜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글도 이미지화해야 한다.직접 쓴 글이 자주 광고에 올랐는데, 이번엔 직접 등장했다.
아마도 광고의 타깃이 40대 이상이다 보니 젊은 캘리그래퍼가 아니라 내가 선 것 같다. 광고비? 아이고 조금.(웃음)
공방에 상업적인 작품 말고도 순수작품이 많다. 어떻게 다른 건가.
서법은 기본적으로 같다. 문자를 해석하거나 표현하는 건 같은데 순수서예는 정신, 상업작품은 디자인적으로 접근한다. 소비자의 니즈나 제품의 성격, 마케팅 전략이나 패키지 디자인을 고려하지. 작가의 시선과 소비자의 시선, 제품을 만든 이의 시선이 각각 다르니 내 작품이 아닌 이상 다른 이의 시선을 반영해야 한다.
앞으로 순수작품의 비중을 높여갈 계획이라던데.
처음 손 글씨로 광고작업을 하면서 디자인과 서예를 결합한 캘리그래피로 새로운 디자인 분야를 만들고 싶었다. 또 하나가 한글이 못났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지. 내 일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다. 예를 들어 외래어가 프린트된 옷은 자연스럽게 입고 다니는데 한글은 피하더라고. 그런데 외국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거든. 도대체 왜 그럴까. 결국 문제는 이미지다. 한글이 이미지로 다가와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것이지. 우선 한글을 이미지화해야 한다.
순수작품의 일환인가. 지난해 한글날에는 평면작업이던 한글을 입체조형으로 만들어 ‘한글세움 프로젝트’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한글로 된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도심에 우뚝 솟은 건물 앞을 보면 생경스러운 외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게 한글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바람이 있다면 인천공항이나 시청처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한글 조형물을 세우고 싶다.
사실 캘리그래피를 서예로 작업하는 게 여전히 생소하다. 서예의 순수성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한 염려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한글의 글꼴, 그 다양한 형태를 찾아야 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단순히 전통서예의 서체로만 머물기엔 한글은 너무 큰 자산 아닌가. 전통은 계승하되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예에 디자인을 입혀 하나의 콘셉트에 따라 표현하고 있다.
캘리그래피의 대중화로 서예의 장르가 넓어진 것인가.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의 작품에 한글이 새겨지니 완전히 달라 보이지 않던가.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제품, 예를 들어 직장인의 애환을 달래주는 소주나 인스턴트식품 패키지에 한글로 된 다양한 글꼴이 노출되니 이게 뭐야 하다가도 눈길이 간다.그만큼 서예에 디자인 요소를 결합한 캘리그래피로 한글이 대중화됐다. 전통서예가 바탕이지만 어쩌면 좀 더 현대적인 서예로 풀어가도 될 것 같다. 상업적으로 쓰인다면 상업 서예로 정의를 내리겠지만 순수하게 접근하다 보면 전통서예와는 다른 현대적 서예라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글과 캘리그래피의 대중화 과정에 아쉬움이 있다면.
어찌 보면 캘리그래피의 홍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팔린다니 너도나도 뛰어든다.
하다못해 문화센터 과정만 수료하고선 가르치겠다고 나선다. 어떤 이들은 그저 보기 좋은 글씨가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대중화의 다음 단계는 좋은 작품을 볼 줄 아는 지식, 혜안이다. 그런데 너도 나도 전문가이니.(웃음)
그렇다면 좋은 글씨의 조건은 무엇인가.
한글의 획을 생각해보자. 봄이라는 글씨를 보면 땅 위에 꽃이 핀 모양이다. 화분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훌륭한 서체에는 스토리가 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왜 이렇게 쓰였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글도 표의문자다.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굳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난 그런 생각이 의아하다. 아니 왜 디지털만 생각하지? 김소월의 ‘꽃’과 김춘수의 ‘꽃’은 분명 다르다. 읽어 본 이들은 누구나 다르다 한다. 그러면 그 꽃을 표현하는 글꼴도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는 같은 서체로 똑같이 담아냈거든. 난 그게 더 이상하다.
한글의 장점에 대한 질문을 꽤나 많이 받았을 법한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데, 과연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글씨를 쓴다는 걸 그냥 쓰는 것으로만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 안엔 분명한 의미가 있다. 한자는 표의문자라 해서 뜻이 있다고 규정했고, 한글은 표음문자라 규정해 뜻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우리말은 말 자체에 의미를 담고 있거든.예를 들어 ‘돌’이라면 돌이 갖고 있는 소리를 문자화한 것이지. 물론 처음에는 직선개념으로 풀어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훈민정음의 원형을 보여주기 위한 디자인이다. 우리가 해석하고 풀어야지. 어쩌면 매일 한글을 쓰는 우리가 한글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단순하다.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라 규정해놓고 그 외의 장점을 얘기해보라면 아무 말도 못하거든. 철학과 자연, 사람과의 조화가 묻어있는, 예를 들어 ‘봄비’를 쓴다면 봄에 내리는 그 화사한 비에 마음을 담아 써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더 정겨운 글씨가 되지 않을까.
제품의 타이틀이나 로고를 제작할 땐 작업기간이 꽤 길다던데.
그렇다고 마냥 지내는 건 아니고.(웃음) 드라마의 경우는 이미 스케줄이 짜여 있으니 맞춰야지.
보통 두어 달 작업한다. 계속 쓰고 리뷰하고 다시 쓰곤 하지. 똑같은 글자를 400~500번씩 쓴다. 배우가 배역에 빠져들 듯 나 또한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다. 제품은 우선 써보고 진행하는데 제품의 스토리를 알아야 서체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공방(강병인 캘리그래피 연구소) 이름이 ‘술통’인가. 작업한 제품 중에 특히 주류가 많다.
‘참이슬’ 작업을 많이 했는데 술이야 뭘, 꼭 마셔봐야 아나. 그동안 그렇게 마셨는데.(웃음) 제품은 이름 자체의 어감과 각 글자마다 갖고 있는 특징을 분석해 화선지에 옮긴다.
자음과 모음에 담겨있는 의미를 모두 파악하고 시작하려 노력하지. 술통이란 이름은… 술이 과하면 나쁘지만 사람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더라고. 관계를 술술 풀리게 한다. 지인들은 꽤나 반대한 이름인데 의외로 한 번 듣고 잊어버리지 않아서 고집하고 있다.
악필? 그게 뭐 어때서?인간 강병인이 궁금한데, 초등학교 시절 무엇이 서예를 그립게 했나.
교과서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뵙곤 매료됐지. 넘을 수 없는 산이란 생각에 그럼 난 한글 서예로 가보자 생각했다.
그때부터 한글만 쓰기 시작했네. 그냥 글씨가 좋아서 군대 가서도 새벽에 먹을 갈곤 했다. 꿈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꿈을 이뤘다. 글로 먹고 살 수 있어서 고마울 뿐이다.
먹고 사는 일이 오로지 한글이었다?
그런 건 아니었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10년 동안 디자이너로 살았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다 망해보기도 했고 빚지고 시작한 그래픽 잡지가 폐간되기도 했다. 난 사업은 아닌 것 같더라고.(웃음) 그렇게 1997년부터 신용불량자로 살았는데 탈출하는 데 한 10년 걸렸다. 그때 생각에 지금도 직원 없이 모든 걸 혼자 해결한다. 가장으로선 빵점이었지.
빵점? 지금은 어떤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쉽지 않았다. 광고회사에서 광고디자인을 하다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바로 ‘깨갱’했지. 그땐 글씨를 돈 주고 산다는 게 생소했으니까. 방송국에서 드라마 타이틀을 쓰는 분들이 같은 일을 하는 유일한 분들이었는데 당시 실제로 글을 들고 찾아가기도 했었다. 몇 년 전에 다시 그분들을 뵙고 말씀을 나눴는데 그땐 영 아니었다더라고.(웃음) 지금이야 하고 싶은 일하니 누가 뭐라는 사람 없고 마음은 편하다. 그게 매출이라면 매출이다.
간혹 악필을 보면 할 말이 많겠다.
어떤 이들은 글씨가 사람의 마음을 담았네 어쩌네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서예는 예술이니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업무용 손 글씨 좀 못 쓰는 게 뭐 그리 큰 문젠가.
추사 김정희를 큰 산이라 했는데, 인생의 큰 산이라면.
큰 산은 역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고. 넘을 수 없는 산이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정신적인 스승이다. 인생의 큰 산이라면 나와의 싸움이겠지. 그분의 정신을 닮아 그렇게 글씨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