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사 40주년을 맞은 현대백화점그룹은 백화점 업계에서 롯데에 이어 업계 2위를 고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점포수를 늘리지도(롯데),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지도(신세계) 않지만 조용히 내실을 다지며 ‘선 안정, 후 성장’의 경영을 펼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러한 경영 전선은 “업계 1위가 아니라 직원 연봉 1위가 먼저”라고 강조하는 정지선 회장의 철학에 기인한다. 현대가 3세 중 가장 먼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화려함보다 조용함을 택했다. 공식적인 행사를 제외하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정 회장이 지난해 6월 창립 39주년을 맞아 “성장과 내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비전을 밝히며 두 마리 토끼인형을 들어 보였다. 유통업계 일각에선 “현대백화점그룹의 공격경영이 시작됐다”고 회자되고 있다.
정지선 회장, 2012년 경영 전면에
8월 19일 오픈한 현대백화점 대구점
현대백화점그룹은 1999년 4월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당시 계열 분리된 회사는 6개. 금강개발산업(2000년 4월 현대백화점으로 사명 변경)을 중심으로 한무쇼핑, 한국물류, 현대쇼핑, 주리원, 울산방송 등이었다. 2001년 당시 매출은 4조원대로 중견그룹이 어울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뒤 현대백화점그룹은 대그룹 타이틀이 어울리는 기업군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8조9800억원. 6개에 불과했던 계열사는 27개로 늘었다. 2000년 말 기준 현대백화점의 시가총액은 1847억원. 지난해 3월 시가총액은 2조8000억원을 웃돌았다. 무려 1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국 나이로 이제 갓 불혹이 된 정 회장은 여전히 젊은 회장님으로 통한다. 그 젊음에 과거 10년을 탄탄하게 이끌어온 경륜을 곁들여 향후 10년을 공격적으로 이끌 태세다. 지난해 발표한 ‘비전2020’의 내용은 2020년 매출 20조원, 경상이익 2조원, 현금성자산 8조원 보유로 집약된다. 업계 관계자는 “2003년 부천 중동점 이후 7년 만에 개점한 일산 킨텍스점이 공격경영의 신호탄이었다”며 “유통 부문에 주력하는 롯데, 신세계와는 차별화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 회장의 2011년 신년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시무식에서 “올해는 유통, 미디어, 종합식품, B2B, 미래신성장사업 등 5대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10년을 위한 신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년은 현대백화점 창사 40주년이자 ‘비전 2020’ 구현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해”라며 “이를 위해 대구점 오픈과 현대홈쇼핑의 중국 진출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그룹 성장의 단초로 삼겠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유통사업 부문에서 현재 13개인 백화점 점포를 앞으로 24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난 8월19일 영업면적만 4만9500m²에 달하는 대구점을 개점했고 앞으로 충정점, 판교점, 양재동점 등 매년 1, 2개의 신규 백화점을 출점한다. 이미 확정된 7개 점 외에 광역시를 중심으로 5개점을 추가해 2020년 유통산업 매출을 10조60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판교 알파돔시티는 킨텍스점과 함께 대규모 복합쇼핑몰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백화점 전점의 올 상반기 매출은 소비심리 회복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 늘었다.
미디어사업 부문에선 홈쇼핑의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신규사업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사업 확대와 인터넷전화(VoIP), 이동통신사업(MVNO) 등 신규 통신사업을 강화해 현재 1조9000억원 수준인 매출액을 2020년에는 4조8000억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오픈, 중국 홈쇼핑 진출
현대홈쇼핑은 2006년 중국 광저우에서 홈쇼핑 사업을 철수한 이후 약 5년 만에 상해에 진출했다. 지난해 중국 전 지역의 홈쇼핑 라이선스를 가진 ‘가유홈쇼핑’, 상해시 출자 케이블공기업인 동방유선 자회사인 ‘동방이푸’와 함께 합자법인 형태로 ‘상해현대가유홈쇼핑(가칭)’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약 180억원. 이 가운데 현대그린푸드 지분 5%를 포함해 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실질적인 경영에 나섰다. 현대홈쇼핑은 타 홈쇼핑과 차별화된 주방, 미용, 패션 등 국내외 양질의 상품 판매를 주무기로 지난 7월3일 첫 방송을 송출했다. 중국 진출은 이후 산동성, 강소성 등 약 3억60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화동 지역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한편 현대백화점그룹은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한 수직계열화에 성공하며 공격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현대백화점이 울산점을 운영하는 현대DSF를 흡수합병했는가 하면 현대H&S, 현대푸드시스템, 현대F&G를 통합해 현대그린푸드를 출범한 식품사업 부문은 제조가공업, HMR(가정식 간편요리), 유기농전문로드숍 등의 분야 진출을 통해 현재 8000억원인 매출을 2020년에 2조6000억원 규모까지 키운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더불어 2015년 3조7000억원가량 축적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금성 자산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수합병(M&A)도 진행해 미래 신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해 나갈 방침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재계순위(공기업 제외)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30위에 올라섰다. 현대홈쇼핑의 주식시장 상장 등으로 전년 보다 자산규모가 약 1조6000억원 늘면서 재계순위가 4단계 상승했다. “현금성 자산을 기반으로 환경, 에너지 등 미래 산업뿐 아니라 금융, 건설 그룹 등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겠다”고 강조한 정지선 회장의 의지가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