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북중미 3개국에서 열린 FIFA 월드컵 개막 첫 주. 미국 내 아디다스 매장을 찾은 방문객 수는 평소보다 47%나 늘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M사이언스에 따르면 지난 5월 아디다스의 의류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70%나 늘었고, 6월에도 변함없이 선두를 지켰다. 스포츠 시장에선 어쩌면 축구공보다 먼저 승부가 갈린 셈이다.
독일의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 AS)’가 4년마다 치러지는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맞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3선(3-Stripe)으로 상징되는 이 브랜드는 어떻게 축구화 한 켤레로 글로벌 스포츠 산업을 호령하는 위치에 올랐을까. 유독 한국 시장에서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뭘까.
아디다스의 역사는 1919년 독일 뉘른베르크 인근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작은 신발 작업실에서 시작된다.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는 집 뒷마당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주민들의 신발을 수리하며 전문 스포츠화 개발에 매달렸다.
6년여를 숙고한 끝에 1925년 신발 바닥에 스파이크용 금속 못을 부착한 스포츠화로 특허를 얻었고, 그렇게 아디다스의 돛이 올랐다. 브랜드명은 처음엔 아돌프(Adolf)란 이름과 다슬러(Dassler)란 성을 조합해 ‘아드다스(ADDAS)’라 불렸다. 이후 1948년 8월 아돌프의 아들 아디 다슬러가 알파벳 ‘I’를 더해 지금의 아디다스가 된다. 신발 측면의 스트라이프(3-Stripe) 세 개는 아돌프 다슬러의 작품이다. 이 3선(線) 로고는 107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디다스를 상징하는 로고가 됐다.
‘가장 좋은 제품을 선수들에게 제공한다(Only The Best For The Athlete)’는 창업자의 철학은 지난 100년간 아디다스를 지켜낸 정신이다. 그리고 이 문구는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올림픽 육상 800m 결승에서 독일의 리나 라드케가 우승하며 회자되기 시작한다. 라드케의 발에 신겨진 스파이크 러닝화에 세 개의 선이 있었던 것. 아디다스의 기술력이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순간이다. 그리고 기술력의 방점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폭우가 쏟아지던 결승전 현장. 바닥 스터드 교체가 가능한 아디다스 축구화와 그라운드에 선 독일 대표팀은 당대 최강이라 평가받던 헝가리를 상대로 이변을 연출한다. 축구사에 기록된 ‘베른의 기적’이다. 당시 독일 대표팀의 승리는 아디다스 기술의 승리라 불리며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스포츠업계에 각인됐다. 이후 1960년대 들어서며 ‘아딜렛’과 ‘슈퍼스타’로 시그니처 라인업을 완성했고, 1970년에는 ‘텔스타’가 멕시코 월드컵 공인구로 채택됐다. 전설의 미드필더 프란츠 베켄바워를 트랙슈트 모델로 기용하며 의류 영역까지 사업 규모를 넓힌 것도 이 무렵이다. ‘카이저(Kaiser·황제)’란 애칭으로 유명한 베켄바워가 3선 로고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아디다스가 신발 회사에서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글로벌 카이저로 발돋움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현재 아디다스는 매년 9억 개 이상의 스포츠용품을 생산하는 스포츠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치러진 북중미 월드컵에서 아디다스는 FIFA 공식 후원사로 48개 참가국 중 14개국의 유니폼을 책임졌다. 글로벌 라이벌 브랜드로 손꼽히는 ‘나이키’가 후원한 대표팀은 12개국이었다. 아디다스는 새로운 축구화 ‘로드 투 글로리(Road to Glory)’ 팩을 선보이는 한편 차범근, 손흥민, 이강인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세 명의 시대 아이콘을 내세운 컬렉션 ‘PASS THE FLAME’으로 국내 팬덤을 정조준했다. 대회 기념 캠페인 ‘YOU GOT THIS’와 함께 캐나다·멕시코·미국의 공동 개최를 상징하는 공인구 ‘트리온다’도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롭게 개발했다. 아디다스가 공인구 제작을 맡은 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의 ‘텔스타’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진 브랜드의 전통이다. 지난 6월에는 아디다스의 라이프스타일, 패션 전문 서브 브랜드 ‘오리지널스’가 코카콜라와 손잡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재회한 협업 컬렉션을 내놓으며 스페인 대표 라민 야말을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진짜는 역시 오리지널스(ORIGINALS ARE THE REAL THING)’라는 메시지를 앞세운 이 컬렉션은 아디다스 공식 온라인 스토어와 컨펌드 앱, 가로수길, 성수, 도산 등 국내 오리지널스 플래그십 매장에서 동시에 공개되며 시선을 끌었다. 이러한 물량 공세는 실제 성적표로 이어진다.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경쟁이 대회 기간 내내 이어질 거라 전망했는데, 개막 이후 매장 트래픽과 의류 판매 지표에선 아디다스가 한발 앞선 흐름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지난 4월 개최된 2026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의 세바스티안 사웨가 1시간 59분 30초로 마라톤 사상 첫 공식 ‘서브 2(2시간 이내 완주)’ 기록을 세우며 착용한 신발이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 3’였다는 것도 역사적 상징이 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지난 10여 년 간 장거리 러닝화의 혁신을 주도해온 건 아디다스가 아닌 나이키였다”며 “서브 2의 순간 아디다스가 카메라에 잡힌 장면을 업계선 러닝화 기술 주도권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가 됐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실적은 어떨까. 아디다스는 지난 3월 4일에 발표한 2025년 회계연도에서 연간 248억10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매출(236억8000만 유로)을 뛰어넘은 창사 이래 최고 수치다. 지역별로는 중남미가 21%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신흥시장 15%, 한국·일본 11%, 유럽 10% 순으로 고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비외른 굴덴 CEO는 실적 발표 현장에서 “동계올림픽, 패럴림픽과 FIFA 월드컵 같은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는 현재 전 세계에 필요한 에너지”라며 자신감을 강조했고, 최대 10억 유로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도 함께 발표했다.
이러한 기세는 올해도 여전하다. 지난 4월 29일에 발표된 1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66억 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7%, 영업이익은 7억 유로로 16% 늘었다. 그럼 국내 실적은 어떨까. 유한책임회사인 아디다스코리아는 외부감사 대상에서 빠져 있어 2016년 이후 별도의 매출 공시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아디다스 본사가 발표하는 지역별 실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는 있는데, 지난해 3월 발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일본 합산 매출은 2조1072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늘었다. 여기에 더해 아디다스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국내 ODM사 화승엔터프라이즈의 실적도 참고할 만하다. 화승엔터프라이즈는 2024년 매출 1조6096억원(전년 대비 33% 증가), 영업이익 826억원(전년 130억원 대비 6배 이상 증가)을 기록했다. 매출의 91%가 아디다스에서 발생해 국내 시장에서 아디다스의 부활을 뒷받침하는 방증으로 꼽힌다. 아디다스는 이런 성장세를 발판 삼아 2024년 1월 한국 시장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소속에서 독립된 단독 마켓으로 격상시켰다.
사실 아디다스의 성장세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전망이 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락세와 적자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지 염려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킨 이는 비외른 굴덴 CEO다. 2023년 1월, 경쟁사인 푸마에서 영입된 굴덴 CEO가 취임할 당시 아디다스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미국의 래퍼 겸 음악 프로듀서인 카니예 웨스트와 2013년부터 이어온 협업은 9년 만에 중단됐고, 그와 협업한 브랜드 ‘이지(Yeezy)’는 고스란히 재고가 됐다. 카니예 웨스트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유대인 혐오 발언이 불러온 최악의 결과였다. 굴덴 CEO는 6만 명 직원과의 첫 타운홀 미팅에서 재무 데이터는 물론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소통하자는 의미였다. 이후 제품 출시 속도를 높였다. 아디다스는 최근 몇 년간 ‘삼바’ ‘가젤’ ‘슈퍼스타’ 같은 오리지널 라인의 색상과 소재를 다양화하며 신규 수요 창출에 주력해왔다. 담당 부서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해도 CEO가 직접 나서 속도전을 주문한다는 후문이다. ‘더 빠르고, 덜 관료적이며, 현장 중심적인’ 방향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도 이어졌다. 그가 단행한 핵심 사안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탈중앙화와 지역 시장의 권한 확대였다. 당시 아디다스의 독일 본사는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강력한 통제권을 쥐고 있어 의사결정이 느리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굴덴 CEO는 본사의 권한을 현지 법인으로 넘겼다. 각 지역(시장)의 트렌드는 현지 법인이 가장 잘 안다는 신념은 확실한 결과물로 돌아왔다. 일례로 중국 상하이 디자인팀이 만든 현지화 제품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렸고, 설 명절을 겨냥해 출시한 현지 컬렉션은 국내서 ‘중티다스’라 불리며 회자되기도 했다.
둘째, 지난해 약 500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 본사의 관료적인 구조도 정리했다. 불필요하고 복잡한 중간보고 체계도 단순화했다. 이를 통해 아낀 비용과 자원은 최일선과 제품 개발 부서로 재배치했다. 직급 단계를 줄여 실무자와 최고경영진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도 좁혔다. 앞서 밝혔듯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며 “복잡한 결재 라인을 타느라 아이디어를 썩히지 말고, 문제가 있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직접 문자나 전화를 하라”며 관료주의에 물든 조직문화를 뿌리 째 흔들었다. 올 3월 아디다스는 비외른 굴덴 CEO의 계약을 2030년까지 연장했다.
아디다스가 국내 시장에서 다시금 주목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유통 전문가들은 “로컬 마케팅 강화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2023년 무렵에 제니 등 스타들이 ‘삼바’를 즐겨 신는 모습이 알려지며 출시 이래 최고 인기를 누렸고 ‘가젤’ ‘스페지알’ 등 또 다른 오리지널 라인으로 팬심이 옮겨붙었다. 2024년 1월에는 한국을 단독 마켓으로 격상시키며 국내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며 러너들의 성지로 떠오른 서촌에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을 열었다. 그런가 하면 국내 최초로 대형 쇼핑몰 안에 특화 매장인 ‘아디다스 잠실 롯데월드몰 브랜드센터’를, MZ세대 핫 플레이스인 성수와 도산에는 ‘오리지널스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달아 개장해 브랜드 체험 접점을 넓혔다. 앰배서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이다. 아디다스는 박재범, 정호연, 베이비몬스터 등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기용해 한국발 트렌드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통로로 삼고 있다.
명품 수입사의 한 임원은 “아디다스의 강점은 100년 이상의 헤리티지를 실제 경기력으로 증명해온 기술력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자인에 있다”며 “하지만 삼바나 가젤 등 기존 인기 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열기가 식을 경우 성장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아이디다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