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새벽배송 시장의 개척자 컬리가 창사 10년 만에 마침내 ‘흑자 기업’ 반열에 올랐다.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며 시장의 우려를 샀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증명해야 하는 새로운 시험대에 섰다. 2025년 사상 첫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한 컬리는 2026년을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사업 다각화의 원년’으로 삼고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컬리는 지난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액 2조 3671억원, 영업이익 131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첫 연간 흑자를 달성했다. 전 세계적으로 식품 기반 이커머스 기업이 매출 2조원을 넘기며 흑자를 낸 사례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실적은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시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IPO 재추진 시점으로 쏠리고 있다. 과거 컬리는 시장 상황 악화와 수익성 미비로 상장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흑자 전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모델’임을 증명해내며 몸값이 다시 오르는 추세다.
그러나 컬리 측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컬리 관계자는 “연간 흑자라는 성적표를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계획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IPO는 서두르지 않고 시장의 평가를 차분하게 기다리며 가장 적절한 시점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장의 상장 흥행보다는 내실을 더 다져 확실한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컬리의 지난 10년, 혁신과 위기 골드만삭스 출신의 김슬아 대표가 2014년 설립한 컬리는 시작부터 ‘프리미엄·큐레이션’을 내세웠다. 3040 맞벌이부부와 전문직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하며 “컬리에서 사면 믿을 수 있다”는 브랜드 신뢰도를 구축 했다. 특히 세계 최초의 새벽배송 시스템인 ‘샛별배송’은 물류업계에 큰 충격을 주며 신선식품 이커머스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빠르게 성장하던 컬리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매출이 수직 상승하며 2021년에는 기업가치 4조~5조원 수준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외출이 제한되자 온라인 장보기 수요가 폭발했고, 쿠팡(로켓프레시), SSG닷컴 등 자본력을 앞세운 후발 주자들이 새벽배송 시장에 가세하면서 경쟁이 심화된 것이다. 컬리도 적자를 감수하며 양적 확대에 치중했으나, 엔데믹(코로나 종료)과 함께 위기가 찾아왔다. 온라인 식품 성장률이 꺾이고 고금리 여파로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며, 컬리는 상장 연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기에도 2025년, 컬리가 10년 적자를 끊어낼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단순한 외형 성장이 아닌 ‘구조적 체질 개선’에 있다. 우선, 신선식품보다 마진율이 높은 ‘뷰티컬리’의 성장이 결정적이었다. 뷰티카테고리는 2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전체 흑자 전환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컬리 관계자는 “신선식품으로 쌓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뷰티 영역에서도 럭셔리 뷰티 브랜드 큐레이션으로 연결됐다”라며, 리빙·패션 카테고리에서도 유사한 프리미엄 전략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물류 서비스 다각화 및 인프라 효율화에 집중했다. 컬리는 직매입(1P) 비중을 조절하고 판매자 배송(3P) 및 컬리 풀필먼트(FBK) 거래액을 54.9%나 성장시켰다. 재고 부담은 줄이면서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안정적 구조다. 또한 낙후된 송파 센터를 철수하고 자동화 설비를 갖춘 평택·창원 센터로 일원화하여 고정비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더불어 물류 자회사 ‘컬리넥스트마일’과 퀵커머스 서비스 ‘컬리나우’ 또한 각각 수익원 다각화와 서비스 지역 확대에 나섰다.
마지막으로 충성 고객층을 중심으로 효율적인 마케팅 채널을 확보했다. 컬리는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대규모 물량 공세 대신,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진성 고객 관리에 집중했다. 유료 멤버십인 ‘컬리멤버스’가입자가 140만 명을 돌파하며 마케팅비 의존도를 대폭 낮췄다. 컬리 측은 인터뷰에서 “MAU 수치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구매 전환율과 충성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유튜브 채널 ‘일일칠’의 ‘덱스의 냉터뷰’ 등 콘텐츠가 1300만 뷰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며 자연스러운 트래픽 유입 통로를 확보하게 됐다.
흑자 전환에 성공한 컬리에게 2026년은 미래 생존을 위한 ‘먹거리 다변화’의 단계다. 컬리는 단순히 상품을 파는 플랫폼을 넘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리테일 테크 기업’으로 진화를 꿈꾸고 있다. 프리미엄 식품 유통사로서 쌓아온 신뢰도를 바탕으로 ‘건강한 삶’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최근 선보인 AI 기반 식단 관리 앱 ‘루션(Lution)’이 대표적이다. 루션은 고객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먹거리를 추천함으로써, 컬리가 추구하는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가치를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뷰티 사업 역시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컬리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프리미엄 및 럭셔리 브랜드 위주로 라인업을 강화해, ‘컬리가 큐레이션한 뷰티는 믿을 수 있다’는 공식을 공고히 할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신중하면서도 전략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컬리 USA몰’을 통해 K-푸드에 대한 수요를 확인하고 있으나, 대규모 물류 센터 투자와 같은 공격적 행보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컬리 관계자는 “미국 물류 센터 투자는 아직 확정된 바 없다”며 “현지 물류 파트너사와의 협업 등 효율적인 방식을 우선 고려하며 시장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쿠팡, 초저가가 무기인 알리익스프레스 사이에서 컬리만의 ‘독자적 강점’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다. 그럼에도 컬리의 지난 10년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성장 중심’에서 ‘수익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부터 신규 사업들이 기존 신선식품 사업과 얼마나 유기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그리고 확장된 카테고리에서도 컬리 특유의 ‘큐레이션 감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컬리 측은 “실질적인 매출과 고객 만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박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