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영업팀 대리로 지란지교소프트에 입사해 9년 만에 대표이사로 선임된 박승애 대표는 국내 정보보안 업계에서 보기 드문 이력을 가진 CEO다. 문과 출신에 세일즈 경력만으로 기술 집약 기업의 수장이 됐고, 취임 6년 차에 접어든 현재는 보안과 협업 플랫폼을 결합한 AI 전환(AX)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박승애 대표는 “해봤는데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쓰는 유연함이 경쟁력이 된 것 같다”며 “그런 태도가 CEO로 선임되는 원동력이 됐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경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Q 지란지교소프트는 어떤 기업입니까.
A 1994년 창립 이후 ‘업무 환경을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게’를 미션으로 삼아온 IT 보안·소프트웨어 전문기업입니다. 대표 제품인 통합 PC 보안 솔루션 ‘오피스키퍼’는 정보유출방지(DLP), 문서 암호화, 출력물 보안 등 7가지 보안 기능을 단일 클라이언트로 제공하는데, 국내 DLP 중 처음으로 클라우드 보안 인증(CSAP)을 획득했어요. 현재 1만4000여개 중소기업이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 창립 30주년을 맞아 AI 기반 협업 솔루션 ‘오피스넥스트’를 출시했는데, B2B SaaS 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Q 대표 취임 후 30년 유산 중 지키고 싶은 것과 버리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A 회사 이름이 그 답이죠. ‘지란지교(芝蘭之交)’는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인데, 창업 때부터 사람과의 신뢰를 중심에 뒀습니다. 그 가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바꿀 생각이 없었어요. 구성원이 일하고 싶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사람과의 신뢰가 핵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반면 버린 것은 눈치 보는 회의 문화였습니다.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봐 쓴소리 못하고 꾹 참는 분위기요. 저는 회의 자리에선 어떠한 얘기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료가 반론을 제기해도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잘되길 바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 그게 지금은 꽤 자리를 잡았어요.
Q 취임 당시 ‘기술 중심 1세대에서 고객 중심의 2세대로 전환됐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A 사실 고객 중심이 저에겐 너무나 당연한 출발점이었어요. 제가 세일즈 출신이니까요. 회사가 한 단계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가려면 고객 중심을 더 강화해야 했고, 실제로 이후 실적이 기대 이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고객 중심이라는 표현도 좀 좁은 것 같아요. 지금은 ‘가치 중심’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술을 갖고 있다는 우위에서 고객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출발점이 돼서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먼저 정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Q 지란지교소프트는 보안 전문기업인데요. 오피스넥스트를 통해 AI 협업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생산성 도구 시장에 뛰어든 이유라면.
A 고객을 지켜보다 자연스럽게 보이게 된 것이죠. 저희는 중소기업에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데, 보안 제품이라는 게 기업의 일하는 방식에 깊숙이 들어가는 솔루션이거든요. ‘이 문서는 외부로 나가면 안 됩니다’라고 통제하는데, 정작 직원들은 SNS로 거래처와 파일을 주고받는 상황이 매일 반복됩니다. 보안을 강화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생산성을 올리면 보안에 구멍이 생기는 딜레마였어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안이 기반이 된 협업 도구가 필수란 판단이 섰습니다. 처음엔 오피스 키퍼를 쓰는 고객에게 메신저를 무료 부가 서비스로 제공했는데, 메신저만 따로 쓰고 싶다는 고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게 단독 모델인 ‘오피스 메신저’가 됐고, 이후 메일·노트·패스워드 관리까지 포함한 오피스넥스트로 확장됐습니다.
Q 슬랙이나 노션 같은 글로벌 협업 툴과 비교했을 때 차별점은.
A 저희는 보안이 기반인 회사에서 만든 툴이라 IP 제어, 로그인 관리, 퇴사자 데이터 보호 같은 부분이 처음부터 내장돼 있어요. 직원이 퇴사하더라도 데이터는 시스템 안에 남는다는 게 중소기업 대표들에겐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죠.
Q 바람직한 AX를 정의한다면.
A 저희 지란지교소프트가 직접 AX를 경험하면서 내린 결론은 AX는 도구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거예요. 도구를 깔고 매뉴얼대로 사용하라고 하면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저희가 내부적으로 오피스 에이전트를 도입하면서 외부 전문가를 불러 직원 교육을 진행했는데, 이건 교육 없이는 절대 혼자 사용할 수 없다는 걸 바로 느꼈어요. 그래서 지금은 내부에 AX 전담 담당자를 두고 늘 직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반 기업들이 AX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내부 인력이나 외부 컨설팅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구보다 사람이 먼저죠.
Q 30년이 넘은 조직의 체질을 AI 중심으로 바꾸는 과정에 가장 큰 저항은 무엇이었습니까.
A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내 일자리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 자체에 대한 피로감입니다. 저희 직원 중에 ‘AI한테 당할 뻔했다’며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AI가 더 잘하게 되면 존재감이 줄어들까 두려운 겁니다. 이런 인식을 바꿔야 했는데, 접근 방식을 달리했어요. ‘AI 덕분에 원래 못 했던 일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됐다’는 프레임이죠. A, B업무만 하던 사람이 AI에 A, B를 시켜두고, 자신은 그동안 할 수 없었던 F, G, H 수준의 일을 하게 되는 거죠. 실제로 개발자들의 경우 AI 툴을 잘 다루게 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고, 스스로도 몸값이 올라간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Q AI 도입으로 인한 인력 재배치나 감축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십니까.
A 전 기존 구성원은 함께 잘돼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AI 도입으로 3명이 하던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되면, 나머지 2명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새로운 가치 창출 업무에 투입하는 방식이에요. 인원에 여유가 생기니까 고객이 원하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거죠.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간혹 “AI를 도입하면 직원을 줄일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분들께 드리는 현실적인 답일 수 있는데, 출산휴가 간 직원의 공백, 퇴사자의 인수인계 공백을 AI 에이전트로 약 60~70%는 채울 수 있습니다. 당장 인원을 줄이는 것보다 자연 감소분을 AI로 보완하는 방식이 현실적이죠.
Q 현재 실적이 궁금해지는데요.
A 지난해 매출은 156억원 수준이에요. 성장세는 이어지고 있는데, 수익성은 최근 2년간 다소 떨어졌습니다. 오피스 넥스트와 오피스 에이전트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죠. 올해가 그 투자의 결실을 거두는 시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피스 에이전트는 이미 사내에서 실사용 중이고, 올해 정식 출시와 함께 유료 고객사 확보가 본격화됩니다. 오피스 에이전트의 경쟁 우위는 데이터에 있어요. 시중에 유사한 AI 에이전트 서비스들이 있는데, 대부분 ‘쓰고 있는 메신저 데이터와 연결해 드립니다’란 방식이죠. 저희는 보안이든 협업이든 자체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를 쌓아온 회사예요. 그 축적된 데이터와 노하우 위에 에이전트를 올리기 때문에 저희 서비스는 기반 자체가 다릅니다.
Q IT·보안 업계의 여성 CEO로서 현장에서 마주한 견고한 벽이라면.
A 솔직히 외부보다는 제 안의 벽이 더 높았어요. 지란지교소프트는 유리천장이 없는 회사예요. 창업주의 철학이 그렇고, 저를 대표로 선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래서 여자라서 불이익을 받은 경험은 없었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 ‘여자 대표라서 못한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겠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사업부장 때는 옷 입는 스타일을 바꾸기도 했고 의식적으로 더 강하게 보이려 했던 시간이 있었지요. 나중에야 실제로는 그런 시선이 없었는데, 스스로 틀에 가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여성의 특성, 그러니까 섬세함이나 경청하는 능력, 소통을 통해 문제를 찾아내는 역량이 조직 관리에선 강점이죠.
Q 일본, 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데.
A 첫 타깃은 일본이에요. 지란지교그룹이 일본 사업은 이미 강점을 갖고 있고 계열사도 있습니다. 일본 기업 역시 보안과 조직도 기반의 협업 구조를 중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저희 서비스 철학과 결이 같거든요. 저희 플랫폼의 경쟁력은 30년간 중소기업에서 쌓은 현장 경험에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든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의 이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면 됩니다’를 말할 수 있는 전문가적 이해도는 다르죠. 저희는 이미 1만4000여개 중소기업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고, 그게 기술보다 더 오래가는 자산입니다.
Q 올해 목표라면. 10년 후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A 올해는 2년간 투자해온 AI 에이전트 서비스에서 결실을 거두는 해입니다. 오피스 에이전트 정식 출시와 유료 고객사 확보가 핵심 과제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저희 구성원들이 AI를 학습하고자 하는 의지,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죠. 배우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더 많은 가치를 만드는 문화, 그 문화를 올해 안에 내부에 안착시키는 게 제 목표입니다. 10년 후는… 개인적으론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여성 대표들에게 1:1 코칭을 하고 싶어요. 지금도 조직 관리나 인원 배치, 구성원의 마음을 얻는 일, 이런 것들에 대해 묻는 분들이 있거든요.
Q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A 여성 리더들이 여성의 강점을 감추려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게 맞아요. 리더십에는 정해진 스타일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조직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공감 능력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자기가 잘하는 걸 잘한다고 인식하는 것 부터가 시작이에요.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6호 (2026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