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위험을 뜻하는 블랙스완, 느닷없는 계엄 사태를 지칭하기에 충분한 말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불시에 선포한 ‘비상 계엄’선언이란 블랙스완에 대한민국이 휘청했다. 내부 갈등은 차치하고서라도, 경제적 충격이 즉각적이었다.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를 걱정하던 우리 경제에 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계엄에서 탄핵으로 이어진 대한민국의 정치 변동성이 앞으로 몇 달 간 우리 사회를 흔들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 상황이야말로 특단의 국가적 대책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계엄 이후 우리 경제는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 전망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정부가 공식 인정했다는 점에서 경제 상황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계엄 이후 내놓은 첫 경기진단에서 ‘경기 회복’이란 문구를 삭제했다. 그러면서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 기업 경제 심리의 위축 등으로 하방위험 증가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직전까지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기재부의 평가는 완만한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계엄을 직접적인 이유로 들진 않았지만 ‘블랙스완’의 등장에 경제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나 다름없다.
계엄 충격으로 인한 여파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당장 우리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증시가 폭락했다. 이후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우리 경제의 주요 축인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도 가속화 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계엄 사태 직후인 2024년 12월 4~13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틀을 빼고 계속 한국 증시에서 자금을 뺐다. 금액으로 따지면 9700억원이 넘는다.
환율도 급등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중반에 근접한 상태로 외환위기(1997~19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7~2008년) 당시 수준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에 근접한 환율이 1500원대로 치달을지 외환당국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처럼 치솟는 환율은 수입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어 안그래도 침체에 빠진 내수 소비를 더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은행의 2024년 11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잠정)’에 따르면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는 지난달에 이어 또 다시 올랐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은 계엄이 터지기 전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계엄 후 환율이 더 치솟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 상승 압박은 더 거세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기 진화를 하지 않으면 경제 부진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우리 경제가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 상황 반전과 관련해 주요 지표인 소비 관련해서는 아직 뚜렷한 방향성을 가늠하기 힘들지만, 계엄으로 연말 분위기가 사라지는 등 자영업자들의 고통스런 목소리가 통계 반영되면 부정적 기류가 강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0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년 전 보다 0.8% 줄어들며 전년 동월 대비 8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11월 소매 판매는 전월 및 전년 동기 대비 모두 상승했다. 다만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전달 대비 줄었다. 기업심리지수(BSI)도 같은 기간 하락했으며, 12월 전망치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락 기미가 없는 환율을 잡기 위해선 당국이 환율 방어에 나서야 하는데, 이 경우 외환위기에 대한 경보음이 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150여 억원으로 넉넉한 상황이지만, 환율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방어에 나서면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줄어들 수 있다. 환차손 등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 유출 본격화도 걱정해야 한다.
이에 대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비슷한 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며 “당시에는 우리가 순채무국이었지만 현재는 순채권국으로 과거의 어떤 위기 상황과는 외환 사정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주요 기관들이 바라보는 우리 경제 전망은 우울하다.
최근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0.1% 포인트 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비상계엄 상황 전개에 따라 성장률 추가 조정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골드만삭스도 이번 계엄 사태가 지난 2006년과 2017년 탄핵 당시와 달리 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앞선 두 사례에서 한국 경제는 2006년 중국 경기 호황과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했지만 반대로 2025년은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들과 함께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새해 한국의 잠재성장률과 관련해 “2% 안팎으로 추정되지만, 내려가는 흐름인 것은 틀림없다”고 분석했다. 조동철 KDI 원장은 비상계엄 이후 우리 상황과 관련해 “해외에서 한국을 보는 시선이 불안해지고, 당장 투자를 꺼리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성장률 하락은 계엄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인구구조 고령화등 구조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고 덧붙였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2024년과 2025년 한국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모두 하향조정했다.
이번 계엄 사태와 관련해 특히 우려되는 대목이 국가 신인도 문제다.
계엄 사태가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당분간 한국의 정치 상황은 더 요동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정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대한민국 신용도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걱정은 기재부가 계엄 후 펴낸 ‘최근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컨트롤타워로 관계기관 공조를 통해 대외신인도를 확고하게 유지하는 한편…”이라고 밝힌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글로벌 국가 신용등급이 낮아지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국가 신용도가 내려간다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한다는 뜻이다. 국채 금리가 올라가고 해외 투자도 줄어든다. 우리 기업들의 활동도 옥죈다. 국채 금리는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 금리의 기준이 되는데 국채가 오르면 회사채 금리도 오른다. 이는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늘릴 수밖에 없고 기업들은 투자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실제 계엄이 발발한 이후 아직 국가 신용도의 변화 조짐은 엿보이지 않지만 자금 조달 시장에서는 선제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글로벌 기준 금리 인하 조짐에 활기가 돌던 회사채 시장이 잔뜩 얼어붙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2024년 12월 4일부터 10일까지 회사채 상환액은 9621억원으로 발행액(6701억원)보다 앞섰다. 발행금액이 줄어든다는 것은 회사채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계엄 전인 2024년 11월 마지막 주만 해도 발행액(3조527억원)이 상환액(1조4366억원)을 크게 앞섰다. 또 3년 만기 국고채와 회사채(신용등급 AA-) 간 금리 차인 크레딧 스프레드도 소폭 상승 추세다.
국가 신인도에 대한 불안 우려는 그동안 글로벌 선진 금융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는 그토록 벗어나려고 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다시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계엄 직후 선제 조치에 나선 상태다. 계엄이 발발하자마자 런던증권거래소그룹 산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과 회의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FTSE 러셀은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인 WGBI를 발표하는 기관으로, 한국 국채는 2024년 10월 WGBI에 편입이 결정된 바 있다. 한국 국채의 WGBI의 가입은 우리 채권시장 시스템이 선진화됐다는 것으로, 우리 금융 시장의 글로벌화의 척도이기도 했다. 그런데 계엄이 터지면서 이같은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에 정부는 이 부분부터 다급하게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FTSE 측이 계엄을 사태로 WGBI 가입을 취소하겠다는 움직임은 지금까지 없다. 한국 국채의 WGBI 실제 편입은 2025년 11월부터로, 최소 500억달러(약 70조원)가량 투자금이 국채시장에 유입될 것이란 전망이다.
최 부총리는 외국인 투자 기업들을 만나 “투자·경제활동에 걸림돌이 없도록 정책 대응을 지속하겠다”며 한국에 예정된 투자를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같은 날 외국계 금융·외투기업 간담회를 열고 “정치적 혼란 상황은 길어도 한두 달이면 안정될 것”이라며 “매력적인 투자처로서 서울의 가치는 변함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이 서울에 투자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일단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는 계엄이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다만 단서는 있다. 이번 사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질서있는 퇴장이 무산되고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세 번째 탄핵이 현실화된 것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인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 결정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까지 사회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선진국의 정치적 충격이 국가 신인도에 충격을 주려면 해당 사건이 재정과 경제와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거나, 이벤트가 그 국가의 시스템과 제도 바깥에서 발생해야 한다”면서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는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이 규정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어서 국가 신인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 주요국 중에서 신용등급이 하향된 나라는 프랑스와 이스라엘인데, 두 국가 모두 각각 앞서 언급한 조건에 해당됐다”고 덧붙였다.
무디스 측은 “한국의 견고한 법치주의가 높은 국가신용 등급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엄으로 닥친 경제 불확실성 중 또 다른 걱정스러운 부분은 리더십 부재로 대외환경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발생하는 리스크다.
현재 전 세계는 관세주의자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정부 출범으로 다가올 미국발 신통상정책에 잔뜩 긴장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우리는 리더십 부재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탄핵으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국정이 운영되는 것의 한계는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의 경쟁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미 수출이 감소로 우리 무역 수지도 나빠질 수 있다. 동맹인 한국을 봐줄 수 있지 않겠냐 한다면 오산이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공약과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조합은 거의 확실히 10% 이상의 한국에 대한 관세(부과)를 의미한다는 것”이라며 “한국이 리더십을 회복하기 전에 분명히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부과 정책에 대해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는 것을 고려하는 등 적극적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리가 글로벌 기술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반도체 분야도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인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당장 바이든 정부가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의 대가로 약속했던 보조금 지급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 측은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보조금을 받더라도 문제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우리 기업은 미국이 지정하는 중국 등 ‘우려 국가’에 새로운 반도체 제조시설을 설립하거나 기존 시설의 생산능력을 대폭 확장하는 데 제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으로 야기될 문제가 산적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해법을 모색하기보다는 개별 기업들만 뛰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더해 탄핵으로 국가 성장동력이 한꺼번에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는 점도 리스크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생산성이 점점 저하되고 이로 인해 국가경쟁력이 약해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성장동력을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원전, 방산, 석유개발 사업 등이 좌초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반갑지 않은 현실이다. 이 같은 사업은 정부가 적극 주도하지 않으면 추진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먼저 원전의 경우 전 정부 들어 황폐화됐던 생태계가 복원되며 다시 예전의 글로벌 위상을 되찾는 듯 했지만 계엄 여파로 다시 흔들리고 있다. 당장 국회를 통과한 2025년 예산에서 원전 관련 예산이 손질됐다. 4세대 원전인 소듐고속냉각로(SFR)를 설계하는 예산, 양자 파트너십 대학 지원 등 예산이 당초 70억원에서 7억원으로 90%나 삭감됐다.
또 정부는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원전 2기에 더해 테믈린 3·4호기 2기를 추가로 수주할 계획이었는데, 계엄 사태로 상황이 변했다는 시각이 크다. 정부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탄핵으로 부처간 긴밀한 협력조차 힘겨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 속에 수출길이 활짝 열렸던 K-방산 또한 동력이 약해진 측면이 있다.
당장 당초 계약이 임박했던 것으로 알려진 폴란드와 K-2전차 수출 협상이 삐걱대고 있다. 폴란드 측이 한국의 특수 상황을 이유로 결정을 미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방한을 했던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계엄 여파로 한국항공우주산업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서둘러 귀국했다. 스웨덴 총리는 계엄이 터지자 방한 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두 정상 모두 한국의 무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알려진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가스전 개발사업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초될 위기에 내몰렸다. 유전개발의 첫 단계인 탐사 시추와 관련해 배정된 예산안을 야당이 전액 삭감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측은 자체 재원으로 시추를 진행한단 입장이지만, 막대한 예산이 드는 유전개발 사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사업동력이 크게 약화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2호 (2024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