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산업체들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2022년 1월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아직도 당시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국내 방산업체들의 시가총액은 80%가 올랐다. 한국항공우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한화시스템으로 구성된 주요 5개 업체들로 범위를 좁히면 이들의 시가총액은 러·우 전쟁 발발 이후로 115%나 올랐다.
장기적 전망은 여전히 좋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로서의 역할을 할 역량과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평화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이유다.
실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22년부터 전면전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은 과거와 같은 통제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만 1년 넘게 전면전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폴란드와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들은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느라 군비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방산기업들이 압도적인 가격경쟁력과 생산능력으로 기회를 잡는 것은 당연했다.
중동에서 시작된 전쟁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돼 무수히 많은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는데도 미국은 확전을 막는 정도로 밖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보 불안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각국들이 한국산 무기에 눈을 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러·우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물론이고 남중국해 갈등도 부각되어 중국도 군비 증강 기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면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보고된 국방비 예산 1조6700억위안은 전년에 비해 7.2%가 증액된 것으로 우리 돈으로 치면 약 309조원에 달한다”면서 “군비 확산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가히 평화의 죽음(The Death of Peace)이라고 할 만하다”고 했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방위비 증가는 주변국들의 방위비 부담을 야기하는데, 동남아 국가들의 무기 구매수요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방산기업들에는 긍적적”이라고 분석했다. 최근들어 국내 방산업체들의 주가 오름세는 더 가팔라졌다. 증시 밸류업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본격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올 2월부터 따지면 가파르게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LIG넥스원의 주당 가격이 10만4500원에서 14만 3200원으로 2월 한 달간 36.25%나 오른데 이어 3월 들어서도 14일까지 15.5%가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마찬가지다. 2월 들어 13만 5600원으로 시작한 주가는 해당 월에 18만 7500원으로 장을 마쳐 무려 35.77%의 등락률을 기록했다. 현대로템도 2월 한 달간 17.99%의 주가 상승률을 보였고, 한화시스템도 7.9%가 올랐다. 이동헌 연구위원은 “2월 8일부터 3월 8일까지 주요 5개 방산업체의 시가총액은 20.2조원에서 26.2조원으로 30% 넘게 급등했다”면서 “이 기간 업체별 상승률은 LIG넥스원 +61%(이하 시가총액, 4조326억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48%(10조1260억원), 한화시스템 +16%(3조3892억원), 현대로템 +9%(3조4598억원), 한국항공우주 9%(5조1954억원) 순”이라고 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러·우전쟁 이후 상승률만 봤을 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339%, LIG넥스원+202%, 현대로템 +67%, 한국항공우주 +62%, 한화시스템 +23%로 나타났다.
최근 급격한 상승세를 타면서 높은 밸류에이션에 대해 한 번은 점검을 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3월 들어 단기적으로 주가가 주춤하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요 종목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부터 살피는 게 우선이다. PBR이 재무제표에 나오는 순자산 대비 주가가 얼마나 되는가를 알아보는 것으로 저량(stock) 측면에서 밸류에이션을 평가하는 방법이라면 PER은 해당 기업이 일정한 기간 동안 발생시키는 이익 대비 어떤 평가를 받는가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유량(flow) 측면에서 밸류에이션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삼성증권 MTS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PBR은 3.23배, PER은 46.16배다. PBR이 3.23배라는 것은 장부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보유한 자산의 순가치보다 시가총액이 3.23배가 된다는 이야기다. PBR 측면에서는 아직 고평가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PER 측면에서 보면 46.16배가 그렇게 높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PER은 주가가 그 회사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주가를 1주당 순이익(EPS·당기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으로 나눈 것이다. 현재 채권시장에서 이자율이 4% 남짓인 점을 봤을 때 고밸류 부담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향후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선반영되는 주식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조3697억원, 7049억원으로 전년보다 33%, 76% 늘었다. 이동헌 연구위원은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고 목표주가를 21만5000원으로 상향한다(기존 18.5만원, +16.2%)”고 하면서 “수출 본격화, ㈜한화 방산 인수에 따른 성장성 등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LIG넥스원의 PBR은 4.01배, PER은 30.82배다. PBR 측면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보다 높아 고평가 수준인 것 같지만, 유량 측면에서 봤을 때 PER은 30.82배에 그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보다 실적 대비 상대적 저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LIG넥스원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3086억원, 영업이익은 1864억원으로 둘 모두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김광식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LIG넥스원에 대해 목표주가 20만 원을 제시한다”면서 “가장 높은 수주잔고/매출액 비중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 대형 수주 건을 바탕으로 2025년 이후 수익성 높은 수출 비중이 증가하고, 방위력 개선비 증가에 따른 국내 매출액 성장이 예정되어 있다”고 전했다.
한국항공우주는 3월 14일 기준 PBR은 3.54배, PER은 42.71배를 기록중이다. 마찬가지로 PBR과 PER 양쪽 측면 모두 고평가 구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치다. 정동익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001년 시작된 KF-X 사업이 올해 드디어 결실을 맺을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시제기 제작 및 각종 시험평가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올해 최초양산 계약(20대, 사업비 1.5조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그동안 국내용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수리온헬기도 올해는 UAE(0.6조원)와 이라크(1.2조원) 등에 수출이 성사되면서 이러한 불명예를 벗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FA-50도 우즈베키스탄(1.1조원)에 수출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최근의 급등세에 따른 경계심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 주가도 3월 들어 주춤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3월 11일 기준 19만1300원까지 주가가 오르며 신고가를 경신했지만, 11일 당일을 포함해 4거래일 연속 파란불을 보이고 있다. 14일에도 주가가 4% 가까이 내리면서 16만5400원에 머물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더 심각하다. 3월 7일부터 6거래일 동안 내림세가 지속되고 있다. 주가도 7일 기록한 21만원보다 3만원 가까이 빠진 18만2600원에 14일 장을 마쳤다. 한화시스템도 3월 7일 이후로 5거래일 동안 주가가 내렸다.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으로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세계의 분쟁이 많아지는 가운데 무기수요가 팽창하는 흐름에 맞춰 방산 수출을 늘리기 위한 국내 지원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큰 호재다. 수출입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우리 방산업체들에는 그야말로 주마가편(走馬加鞭)의 형세가 된 것이다.
수출입은행법(수은법) 개정안은 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한국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 한도는 25조원으로 늘어났다. 한국수출입은행은 그간 해외에서 우리 기업들에 발주를 할 때 자본을 빌려주는 역할을 했다. 한국의 공적자금으로 대출을 해줘서 국내 업체들이 해외에 더 많은 무기나 장치, 건설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폴란드 무기 1차 수출계약으로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소진율은 98.5%에 달했다. 현재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무기 수출을 위해서는 법정자본금의 한도 증액이 필수적이었다. 수은법 통과 시 소진율이 60%대로 떨어져 대출 등 금융 지원에 여력이 늘어난다.
국내 방산업체는 폴란드 2차 계약 협상 및 추가 수주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정부에 18조원 상당의 무기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현지 생산 물량이 포함된 K9 308문과 천무 70대에 대한 추가 수출계약도 추진할 전망이다. 1분기 중에는 루마니아 정부와의 1조원 규모 K9 자주포 수출계약도 논의 중이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와 K2 전차 2차 계약 물량이 20조원에 달한다. 수은의 보증한도 소진으로 추가 수출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수은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국내 방산기업들은 2차 계약 협상에 나설 수 있는 기본 요건을 확보했다”며 “가격 대비 우수한 무기체계 제조 역량, 철저한 납기 준수 등을 인정받고 있는 국내 방산기업들의 수혜는 지속될 전망”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최희석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