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넘는 배당률에도 부동산 시장 부진으로 소외받던 상장리츠가 최근 정책 수혜와 미 기준금리 인하 예고에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리츠는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과 은행 대출 등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해 임대수익과 시세 차익을 배당한다. 연간 배당수익률이 5~6%대인 점을 투자 매력으로 내세우지만 고금리 환경에는 높은 은행 대출금리가 자금 조달 어려움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악화한다. 그만큼 주가 할인폭도 커지게 된다.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상장 리츠의 배당수익률은 연 7.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마스턴프리미어리츠(10.66%), 미래에셋글로벌리츠(10.37%), 미래에셋맵스리츠(10.15%), 모두투어리츠(13.97%), 케이탑리츠(11.19%) 등 현재 국내 상장 리츠 23개 중 5개는 10%가 넘는 배당률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급격한 금리 인상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해외 부동산 손실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리츠주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리츠는 자금 재조달(리파이낸싱)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금리가 오르면 이자 비용이 늘어나 수익성 감소 및 배당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리츠주 10개를 모아놓은 ‘KRX리츠TOP10지수’는 지난해 초 900선을 넘기도 했지만 2월 19일 기준 775까지 떨어진 상태다.
최근 미 기준금리 피크아웃 인식이 커지면서 리츠의 할인율 역시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가 하향 안정화될 경우 상장리츠들은 유상증자를 통해 추가 자산편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용이하고 전략적투자자(SI)가 있는 경우 스폰서 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리츠 운용자산(AUM)은 93조9000억원으로 10년 전인 2013년 11조원을 돌파한 이후 급성장했다. 2001년 제도 도입 후 꾸준히 성장해 리츠 전체 운용자산은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시장 확대와 더불어 최근 정부의 상장리츠 활성화 정책이 확대되며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1일 국회에서 ‘리츠 배당확대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의 주요 요지는 배당 기준 개선과 리츠자산을 운용하는 자산관리회사(AMC) 설립 기간 단축을 위한 예비 인가제도 폐지 등이다.
그중 리츠가 배당할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할 때 평가손실을 반영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기존 부동산투자회 사법은 리츠 수익이 줄지 않더라도 자산 평가액이 하락하면 그에 따른 미실현 손실분을 빼고 배당해야 했다. 예를 들어 리츠가 100억원의 배당 가능 이익을 냈지만 50억원의 평가손실이 나면 50억원만 배당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만약 리츠가 보유한 해외 부동산 자산의 장부상 가치가 일시적으로 떨어질 경우 의무적으로 손익에 반양해 배당 가능 이익이 깎일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을 매도하기 전이라도 매 결산기에 오락가락 장부가의 영향을 받던 것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한편 이번 법개정으로 리츠가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받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다. 개정된 법인세법에 따르면 리츠는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리츠의 이익배당 한도에 자산의 평가손실분을 반영해야 하는 만큼 손실이 발생하면 투자자에 대한 배당을 하지 못하고 법인세 면제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외에도 최근 정부는 성장 초입기인 국내 리츠시장에 육성 정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앞서 국토부가 발표한 1·10 부동산대책에는 ▲리츠를 통한 도시형생활주택 공급 ▲대규모 민간 임대를 운영하는 임대 리츠 활성화 ▲운영 주체를 장기 임대 리츠로 한정하는 자율형 장기 임대 도입 ▲신도시 리츠 도입 등이 담겼다. 리츠의 각종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1·10 대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근 침체된 주택시장 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리츠 활용이 예상된다”라며 “기업형 장기민간임대를 신규 도입하고 공모형일 경우 기금융자 지원 확대, 고령자와 청년 등에 특화된 주거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모델 마련 등을 언급해 올해 다양한 자산을 바탕으로 한 공모리츠 활성화가 기대된다”라고 했다.
정책 수혜와 금리 인하 기대감이라는 두 가지 긍정적인 환경에 그동안 액면가 이하로 하락했던 상장리츠의 주가도 상승하는 모양새다. 배당확대법이 통과된 2월 1일 이후 16일까지 ‘KRX리츠TOP10지수’는 0.91%, 리츠주와 함께 인프라 종목 10개로 구성된 ‘KRX부동산리츠인프라지수’는 0.85% 상승했다.
박세라 연구원은 “올해 국내 리츠의 주가 리레이팅을 기대한다”라며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수익성 개선과 배당매력도 증가, 리츠 자산 다변화 기회 확대, 주주가치 제고 등에 기인한다”라고 평가했다.
박 연구원은 “2022년부터 시작된 급격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지난해까지 국내 리츠사들은 리파이낸싱에 대한 어려움을 겪었다”라며 “과거 장기담보대출의 단순한 구조에서 전환 사채, 전자단기사채의 활용, 적극적인 자산 재평가를 통한 담보대출 한도 상향 등 자금 조달 방식에서 진화된 모습”이라고 했다.
실제로 신한알파리츠는 용산더프라임타워를 매각해 차익실현을 한 동시에 시청 인근 HSBC빌딩의 지분 66%를 매입했다. 신한서부티엔디리츠도 광화문G타워 매입 당시 전환사채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적극적인 자산 매각과 이 대금을 활용한 재투자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등, 과거 스폰서를 강조한 자산의 안정성만 부각됐다면, 이제는 이러한 자산관리회사(AMC)의 자산운용 능력에 기인한 개별 리츠의 성장성과 차별화가 커질 수 있는 환경이 도래했다는 이야기다.
이전보다 상장리츠에 투자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졌지만, 운용사별로 수익성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금리 인하 속도가 더뎌져 고금리 환경이 지속될수록 리파이낸싱을 통한 주가 할인율이 지속될 수 있는 만큼 옥석 가리기가 필수라는 것이 중론이다. 당분간은 지속될 고금리 기조에 대비하기 위해 차입 만기가 많이 남았는지, 또 분산되어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일례로 보유자산 일부를 매각한 후 이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대신 리파이낸싱에 사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2022년 6월 ESR켄달스퀘어리츠는 상장 시 매입한 이천1물류센터를 매입가(660억원) 대비 23% 높은 810억 원에 매각했다. 매각이익은 추가 배당에 사용하는 대신 리파이낸싱 부담을 줄이는 데 보탠다는 방침이다.
한 상장리츠 관계자는 “배당확대법으로 리츠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리츠는 적극적인 배당확대에 나서기는 어렵다”라며 “자산을 팔아 매각차익이 발생해도 대출 등의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더 많아 당분간은 획기적인 배당 상승보다는 안정성이 강화되는 수준에서 기대감은 낮춰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특히 코람코라이프인프라나 코람코더원리츠의 차입만기는 2025년 하반기로 당분간 금리 영향을 적게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꾸준한 자산 편입이나 리파이낸싱 등을 통해 금리구조를 다변화하는 점 역시 위험을 낮췄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박 연구원의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법안 개정으로 그동안 주가 할인율이 높았던 해외자산 보유 종목들이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외자산을 기초로 한 상품들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임차인을 보유하고 있는 종목이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상장리츠 관계자는 “국내보다 부동산 자산평가가 잦은 해외 부동산의 경우 미실현손실 발생 빈도가 높아 배당 가능 이익이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았다”라며 “이번 배당확대법 통과로 해외 부동산을 보유한 리츠가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라고 평가했다.
대신증권은 KB스타리츠(벨기에, 영국 오피스), 마스턴프리미어리츠(프랑스 물류센터, 오피스), 미래에셋글로벌리츠(미국 물류센터), 제이알글로벌리츠(벨기에, 미국 오피스), 이지스밸류리츠(미국 데이터센터) 등을 수혜주로 꼽았다.
대표적으로 KB스타리츠는 벨기에 브뤼셀과 영국 런던에 소재한 오피스를 기초자산으로 담고 있다. 각각 벨기에 재무부와 삼성전자 유럽 본사가 100% 임대 중이며 잔존 임대 기간도 길어 공실 위험이 적다는 것이 강점이다.
박세라 연구원은 이에 대해 “미국은 양호한 경제 수치와 하이브리드 근무 비중이 높아지면서 회사 복귀 수요 회복, 2023년 신규 오피스 공급 제한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될 것”이라며 특히 미국 부동산을 보유한 상장리츠의 배당확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에 해당되는 종목은 제이알글로벌리츠와 이지스밸류리츠를 꼽을 수 있다. 다만 그는 물류센터의 경우 아직 공급과잉 이슈가 남아 있어 2025년부터야 점진적인 회복세를 예상했다. 리츠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향후 회복 속도에 차이가 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기초자산의 성격과 지역에 따라 업황 개선속도와 자본여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싼 리츠보다 성장 가능성이 중요하기에 소형 리츠, 이해 상충 가능성이 높은 리츠, 전략이 모호한 리츠는 배제해야 한다”며 “자산이 속한 시황 우려 또는 높은 차입 부담으로 할인율이 커진 리츠 중 대형 리츠부터 턴어라운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