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일임업의 은행권 확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일임(一任)’은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다. 은행이 투자자로부터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 투자 상품에 대한 판단을 온전히 일임받아 고객을 대신해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다. 투자와 관련해 은행은 자문 업무만 가능한데 이를 투자 일임까지 확대해달라는 뜻이다. 금융권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 소비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 안정성 측면에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첫째, 예금 수취기관으로 은행에 대해 금융 소비자가 기대하는 핵심에는 원금 보장이 있다. 근본적으로 손실을 배제할 수 없는 금융 투자 업무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은행에서 투자 일임은 손실 가능성이 있다고 아무리 설명하더라도, 실제 은행 고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은행 예금 업무는 원금 손실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금액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동성을 관리,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출 업무도 원금 보존이 원칙으로 수익의 차이는 있으나 손실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은행의 핵심인 예금, 대출 업무는 손실을 허용하지 않지만, 금융 투자 업무는 손실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이다.
둘째, 본질이 다른 성격의 금융 업무를 하나의 기관에서 수행하면 소비자 보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라임, 옵티머스 같은 대형 금융 사고의 경우 과도한 위험을 추구한 투자 운용과 금융 투자 상품 설계도 문제지만, 핵심은 대중이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금융 투자 상품이 부실 판매된 것이다. 은행에서 투자 일임 업무를 진행할 경우, 본질적으로 다른 업무가 섞이면서 부실 판매에 따른 소비자 보호 문제 발생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셋째, 금융 상품 부실 판매에 따른 소비자 보호 문제는 결국 금융 시스템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은행에 손실이 발생하지 않고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은행 시스템을 위험하게 만드는 ‘뱅크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뱅크런의 핵심은 은행 손실 가능성인데, 투자 일임된 자산에서 손실이 난다는 것은 은행 지급 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경우 일임해서 투자를 맡긴 자산뿐 아니라 예금 자산에 대해서도 서로 먼저 인출을 시도하는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은행에서 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 투자 일임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금융 업무를 포괄하는 금융 지주회사가 존재해도 실제로는 각 업무 영역에 따라 금융기관이 존재하는 이유기도 하다.
투자 일임업 금융기관을 확대한다면 이를 은행에 허용하기보다는 금융지주 회사 내의 투자금융 업무 계열사가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이런 금융 계열사가 없다면 관련 업무를 하는 회사를 인수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은행에 직접 이 업무를 확대하도록 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위험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