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로 알려진 OpenAI(오픈에이아이)의 샘 올트먼은 지난해 4월 한 생명공학 스타트업에 1억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항노화 생명공학 스타트업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Retro Biosciences)’다. 올트먼은 늙은 쥐들이 어린 쥐들의 혈액으로 다시 활성화되는 연구에 대한 논문을 읽은 후 처음으로 건강과 관련된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화와의 전쟁’에 베팅한 거물은 올트먼뿐만이 아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같은 억만장자가 관련 스타트업에 잇달아 투자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헤볼루션재단도 작년 노화 연구에 매년 1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초 출범한 알토스랩이다. 2020년 10월 캘리포니아의 로스 알토스 힐에 위치한 IT 기업가 유리 밀너(Yuri Milner)의 집에서 열린 과학회의가 설립 계기가 되었다. 회의 주제는 ‘생명공학을 이용해 사람을 다시 젊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 자리에서 많은 과학자가 동물을 다시 젊게 만들기 위해 시도한 급진적 방법들을 설명했고, 이것이 알토스랩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또한 노화 예방과 관련한 기술에 매료돼 최소 수백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토스랩은 앞서 생물학적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 기술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세포에 단백질을 주입해 세포가 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을 가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세포의 노화를 되돌리는 기술인 셈이다. 회사를 출범하기도 전에 30억달러의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핼 배런 알토스랩 최고경영자(CEO)는 “억만장자들의 투자금은 질병 극복을 위한 ‘참신한 방식(노화 억제)’에 성공하기 전까지 수차례의 실패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조스의 항노화 산업 투자는 알토스랩뿐이 아니다. 세계 최대 전자결제 기업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과 함께 2016년 ‘유니티바이오테크놀로지’에 투자한 것이 먼저였다. 이 기업은 노화 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제거하는 신약을 개발해 노화 관련 질환을 막는다는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안구 혈관에 축적된 노화 세포를 제거해 노인성 안과 질환을 치료하는 약물 ‘UBX1325’를 개발해 임상시험 중이다.
미국의 대표 빅테크인 구글도 2013년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와 함께 노화 방지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캘리코’를 설립하며 일찌감치 이 산업에 뛰어들었다. 두 회사는 캘리코에 35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는 당시 “생명 연장은 모두의 꿈”이라며 장기 투자 의지를 피력했다.영국 미디어 회사 ‘퍼스트 롱제비티’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장수 연구 기업들의 투자 유치액은 52억달러(약 6조8000억원)에 달했다.
기부도 활발하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생명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과학자에게 매년 300만달러를 시상하고 있다. 오라클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엘리슨도 노화 방지 연구에 최소 3억7000만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큰손들의 투자와 참여는 노화를 거스를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왔던 인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세계 각국은 앞다퉈 관련 연구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국립노화연구소(NIA)와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NCGG)를 중심으로 건강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노화과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선 노화 치료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면서 관련 연구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투자 러시가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치료제를 소수가 독점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격차만 악화시키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 에세이에서 수명의 대폭 연장은 인류 전체에 재앙이 될 수 있다면서 “수명을 연장하는 시술을 받은 인간과 그렇지 못한 빈자 사이 불평등이 더욱 확대되고, 독재자의 통치가 장기화되거나 기존의 가족 개념이 와해되는 등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2호 (2023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