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is
미국 교포로 UCLA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와 아리랑방송에서 기자, 앵커, PD로 일했다. 이후 글로벌 홍보대행사 에델만코리아를 거쳐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일했다. 2013년 수제맥주 양조장 ‘핸드앤몰트’를 창업하고 연 매출 60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2018년 세계 최대의 맥주 기업 AB인베브에 핸드앤몰트를 매각하고 현재 쓰리소사이어티스에서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대중에겐 모델 송경아 씨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백봉산 중턱.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차를 돌렸지만 이번에도 길이 막혔다. 다시 침착하게 살핀 후 경사진 골목을 따라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니 저 앞에 수십 개의 오크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을 만들고 있는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 직원들과 함께 오크통을 굴리다 나왔다는 도정한 대표는 “선별한 알코올을 두 차례 증류해 1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위스키가 된다”라며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이 증류소에서 진행된다”라고 소개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한국 사람’이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기술과 노하우’로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란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래서 브랜드 로고인 방패 문양에도 한국과 미국,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호랑이와 독수리, 유니콘이 배치됐다. 최근 ‘기원 위스키 배치1’을 선보인 도 대표는 “알코올 도수 40도에 끝 맛이 맛있게 매운 배치1은 이미 미국 등지에 해외 수출 일정이 잡혔다”라며 “한국산 싱글몰트가 언제 입고되느냐는 고객 문의가 너무 많다는 소식도 들린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Q 증류소의 규모가 꽤 큰데요. 앞쪽에 창고가 여러 개 보입니다.
A 처음 증류소를 만들고 나중에 2000여 평을 추가로 매입했어요. 지금은 총 3100여 평 정도 됩니다. 위스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스코틀랜드를 돌아다니다 맥켈란 증류소에 갔었는데, 창고가 얼마나 큰지 끝이 안보이더군요. 사업을 시작하고 3년쯤 지나다보니 숙성 창고 마련하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숙성 창고의 크기가 판매량을 좌우하거든요.
Q 연 판매량을 가늠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A 위스키 사업은 정말 예측하기 힘들어요.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얼마나 팔 수 있냐는 건데, 우리도 잘 모르거든요. 알코올 도수를 어떻게 낼 건지, 몇 년 동안 숙성할 건지, 숙성하면 증발되는 위스키량은 얼마나 되는지, 모든 걸 계산해야 합니다. 마지막엔 유흥주점과 리테일의 비중을 어떻게 맞춰서 유통시켜야 하는지까지 모든 게 쉽지 않더군요.
Q 그럼 왜 굳이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겁니까. 수입 시장은 있어도 제조 시장은 전무한데요.
A 개인적으로 이런 도전을 좋아하기도 하고, 예전에 수제맥주 사업을 시작할 때도 똑같았죠. 시장이 없었거든요. 영어 잘하니 미국에서 좋은 술 골라 수입하면 편할 텐데 왜 사서 고생이냐, 이런 말을 듣기도 하고. 그런데 제 손으로 한국에서 만들어 파는 게 훨씬 더 재미있어요.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도 위스키를 만든다는 기쁨을 주는 게 너무 뿌듯해요.
Q 한국에 없으니 만든다?
A 외국인 친구들에게 왜 한국산 위스키는 없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일본은 ‘야마자키’가 유명하고 대만도 ‘카발란’을 만드는데 우린 왜 없지 싶었는데, 이젠 때가 된 것 같더군요. 국내선 욜로(You Only Live Once·당신의 인생은 한 번뿐이다) 스타일이 트렌드가 되면서 양보다 질을 따지게 됐고, 해외선 K문화가 각광받으면서 K위스키도 승산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기원의 물량 중 절반은 수출이 진행되고 있고요.
Q 최근 출시한 ‘기원 위스키 배치1’의 수출물량입니까.
A 미국과 싱가포르는 이미 수출 일정이 잡혔어요. 4월 초에 미국에 나갈 예정입니다. 배치1은 1회차 분량이란 의미인데, 매 배치마다 물량이 다 다르게 나올 겁니다. 한정판이죠. 이번 배치1은 대략 1만 병 정도 생산했어요.
Q 국내외 해외 물량을 똑같이 배분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A 저희가 수출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 때문입니다. 저희도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한국은 위스키에 붙는 주세가 셉니다. 얼추 기원 한 병이 1만원이라면 세금이 5000원이에요. 나머지 5000원으로 인건비, 원료비, 마케팅비, 유통비 모든 걸 감당해야 해요. 그런데 수출물량은 영(0)세에요. 그런 세금이 붙지 않아요. 저희에겐 수출하는 게 훨씬 낫죠. 반면 전통주는 세금을 50% 감면해주고 온라인에서도 유통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기원 입장에선 불공평하죠.
Q 쓰리소사이어티스는 해외에선 아직 신생 증류소 아닙니까.
A 2021년부터 해외에서 내로라하는 주류품평회에 참가해 수상해왔습니다. 지난해엔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2020년엔 위스키 관련 글로벌 매거진에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전 세계 증류소 10개를 꼽았는데 거기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어요. 이 모든 건 배치1이 나오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미국에서 위스키 유통사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싱글몰트 위스키가 나온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전해주더군요. K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대단합니다. 충분히 위스키 강국이 될 수 있어요.
Q 그동안 한국은 위스키 숙성에 좋지 않은 기후란 말들이 많았는데.
A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전혀 반대예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저희 마스터 디스틸러인 앤드루 샌드와 제주도, 부산, 광주, 파주까지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어디서 가장 깨끗한 물을 원활하게 쓸 수 있는지, 기후가 얼마나 좋은지를 기준으로 남양주에 증류소를 차렸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오크통의 팽창과 수축이 빨라서 숙성도 빠릅니다. 앤드루 말로는 위스키 생산에 천혜의 기후예요.
Q 일각에선 기원의 생산을 총괄하는 앤드루 샌드가 떠나면 어찌되느냐고도 하는데.
A 앤드루 샌드는 스코틀랜드의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경력을 시작했어요. 일본의 니카 증류소에서도 있었고, 직접 미국에서 증류소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경력이 44년이나 되죠. 우선은 관련한 기술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의 위스키 역사를 제대로 세우고 은퇴하고 싶다더군요. 우리 회사 주식도 좀 있고, 무엇보다 한국 여자를 만나 결혼했어요. 함께할 겁니다.
Q 전 세계에 싱글몰트 브랜드가 꽤 많은데, 현재 기원의 목표라면.
A 10년쯤 후에는 카발란급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가 더 맛있는 싱글몰트를 만들어낼 겁니다.
Q 최근 신세계와 롯데 등 이른바 대기업까지 위스키 제조에 나서면서 시장이 커지는 분위기인데요. 경쟁자들의 덩치가 꽤 큽니다.
A 우선은 증류기 문제가 클 겁니다. 저희는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직접 디자인해서 스코틀랜드 증류기 회사인 포사이스에서 맞춤 제작했거든요. 그 회사는 직접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올해 안에 증류기를 받아볼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정말 빨리 증류를 시작한다면 2024년 중순 쯤일 거고 숙성기간도 있으니 1~2년 기다려야겠죠. 그럼 2026년이나 2027년 즈음일 텐데, 그때쯤 저희 위스키는 또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겁니다.
Q 인수 제안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있긴 했는데, 다 거절했어요. 전 충분히 상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거든요. 아직은 투자금에 비해 적자인데, 올해가 지나면 흑자로 전환될 거예요. 증설해서 판매량이 늘면 그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울 겁니다.
Q 글로벌 기업 임원에서 수제맥주, 위스키 사업까지 여러 번 변신을 거듭했는데요.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A 최소한 5년에서 7년 뒤라고 생각하는데, 와인에 도전할까 합니다. 와인 전문가들이 우리 기후엔 스위트와인이 어울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충분히 명품이 될 수 있거든요.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1호 (2023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