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공덕동에서 홀로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심명순(가명) 씨는 퇴근 이후 집 근처 편의점에 들르는 게 습관이 됐다. 편의점 와인 코너에서 작은 사이즈로 출시된 와인 한 병과 밀키트로 저녁식사를 대신하는 것이다. 심 씨는 “1인 가구다 보니 따로 식사를 차리는 것도 일이라 밀키트를 이용하고 있다”며 “375㎖ 와인을 애용하게 된 건 편하기도 하거니와 가격도 비싸지 않아 나름의 가성비를 따져보고 구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심 씨처럼 와인을 즐기는 이들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팬데믹으로 홈술이 새로운 트렌드가 된 이후 저도수 술을 찾는 이들이 와인에 눈을 뜨며 가격이 적당한 ‘데일리와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찾는 이들이 많아지니 당연히 수입도 늘었다. 롯데쇼핑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와인 소매 시장의 매출은 7347억원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올해는 1조원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와인 산지별 수입량은 어떨까. 한불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0월까지 집계한 국내 와인 수입 현황을 살펴보면 프랑스산 와인이 1억4500만달러(2021년 10월 기준)를 기록하며 미국(7400만달러), 이탈리아(7400만달러), 칠레(6300만달러), 스페인(3500만달러) 등 내로라하는 와인산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와인 수입사의 한 임원은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 같은 창고형 대형마트부터 편의점까지 1만원 미만의 저가 와인이 대거 유통되며 와인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며 “와인 수입이 늘어나니 재고가 늘어 다양한 할인행사를 진행하게 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 ‘보틀벙커’
대형 와인 전문점의 등장도 국내 시장의 와인붐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다. 지난 12월 23일 롯데마트 잠실점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제타플렉스(ZETTAPLEX)’는 매장 1층 전체 공간의 70%를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로 꾸몄다. 넓이만 1322㎡(약 400평)로 국내 최대 규모다. 이곳에선 1억원을 호가하는 ‘로마네 콩티’부터 1만원대 와인까지 총 4000여 종이 판매되고, ‘테이스팅 탭’에서 8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국내 한 특급호텔 매니저는 “직접 구입한 와인을 들고 호텔을 찾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며 “레스토랑에서도 음미하며 즐기는 와인문화가 이제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2022년 주름잡을 데일리와인은 바로 이것
그렇다면 과연 올해 와인 시장을 주름잡을 데일리와인은 어떤 제품일까. 국내 특급호텔 3곳의 소믈리에에게 1만원대, 3만원대, 5만원대, 10만원대, 20만원대 이상 등 가격대별 와인 추천을 의뢰했다. 특급호텔 소믈리에가 단골 고객에게만 추천하던 보석 같은 와인리스트를 공개한다.
유승민 인터컨티넨탈 호텔 소믈리에
기념일 케이크와 함께하면 좋은 와인
유승민 인터컨티넨탈 호텔 소믈리에
‘포르투 발도우로, 화이트포트’(래뱅드메일)는 포르투갈의 주정강화 와인이에요. 기념일 케이크와 함께하기 좋은 화이트 품종으로 만들어졌어요. 달콤한 맛이 좋아 디저트와인으로 그만인데, 생크림 과일 케이크나 딸기 케이크와 썩 잘 어울립니다. 꼭 케이크가 아니더라도 과일이나 생크림이 바탕인 디저트와도 궁합이 좋습니다. 아, 가격은 1만원대예요.
3만원대 와인으론 ‘핀카 바카라, 예야’(CSR)를 추천합니다. 스페인의 화이트 와인이죠. 채식주의자를 위해 비건 인증을 받았어요. 샤르도네 50%, 모스카텔 50%로 완성됐습니다. 채소 샐러드나 올리브 오일이 가미된 요리와 함께하면 신선한 기운이 배가됩니다.
포르투 발도우로 화이트포트, 핀카 바카라 예야, 비냐 아퀴타니야 라줄리, 하이드 드 빌렌, 아모르 드 더츠 블랑 드 블랑스 브뤼 2008
‘비냐 아퀴타니야, 라줄리’(비노테크)는 칠레의 레드 와인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완성됐지요. 프랑스 1등급 와인 ‘샤토 마고’의 칠레 버전이라고 할까요. 라줄리는 와이너리의 아이콘 와인으로 칠레의 아름다운 보석에서 이름을 따왔다는군요. 부드러운 타닌과 산도가 좋아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죠. 등심스테이크나 양갈비구이 그리고 삼겹살도 좋습니다. 가격은 5만원대예요.
10만원대는 ‘하이드 드 빌렌, 벨르 쿠진느’(CSR)가 좋겠군요. 미국의 레드 와인입니다. 메를로 53%와 카베르네 소비뇽 47%로 구성됐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인 ‘로마네 콩티’의 오베르 드 빌렌 가문과 나파밸리의 하이드 빈야드 가문이 혼인하며 탄생한 합작 와인이죠. 특히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은데요. 기름기가 적고 질감이 부드러운 음식과 어울립니다.
20만원대 이상은 ‘아모르 드 더츠 블랑 드 블랑스 브뤼 2008’(래뱅드메일)을 추천합니다. 샤도네이 단일 품종의 순순함을 지닌 프랑스 샴페인이죠. 사랑이라는 의미의 아모르는 더츠의 최상급 샴페인을 의미합니다. 특히 2008년은 역대급 빈티지예요. 특별한 맛을 경험해보세요. 마블링의 기름진 맛과 샴페인의 산도가 조화로운데 한우 오마카세가 어울리겠군요.
이동규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소믈리에
보쌈 한 입, 레드 와인 한잔 환상적인 마리아주
이동규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소믈리에
1만원대 와인인 ‘투썩 점퍼, 와일드 보어 메를로’(CSR)는 붉은색 스웨터(Jumper)를 입고 푸른 초원인 투썩(Tussock)을 뛰어다니는 동물이 그려진 레이블이 감각적이죠. 프랑스 레드 와인인데 다양한 동물 캐릭터는 투썩 점퍼가 생산하는 전 세계 유명 산지를 대표하는 동물들입니다. 지역 특유의 개성과 문화, 산지 정보를 추정할 수 있는 레이블은 이 와이너리만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죠. 전 세계 와인 소비 트렌드를 선도하는 영국 마켓에서 가장 핫한 데일리와인으로 손꼽히기도 한 글로벌 브랜드입니다. 라자냐, 돼지갈비찜, 피자 등 다양한 음식과 어울립니다.
‘핀카 바카라, 3015’(CSR)는 비건 와인으로 알려진 핀카 바카라의 스테디셀러죠. 이 와이너리는 스페인 남동쪽 거대한 평원과 계곡이 있는 후미야 지역에 특화된 모나스트렐 품종으로 양조합니다. 모든 와인은 친환경 재배되고 양조돼 공인된 유기농 인증을 받고 있습니다. 데일리 레드 와인으로 제격이죠. 가격은 3만원대예요. 부드러운 타닌과 신선한 과일 맛이 느껴지는 미디엄 보디 와인으로 보쌈, 목살 스테이크, 라구 파스타 등과 잘 어울립니다.
5만원대 와인은 ‘도멘 뒤 떵, 엉 떵 푸르 불레’(메종콩티와인)가 좋겠군요.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 등 레드 품종에서 탄생한 펫낫(Pet Nat·자연 기포가 은은한 레드 와인)이기에 그 즐거움이 더 크죠. 엉 탕 푸르 불레(Un Temps Pour Buller)는 ‘버블을 마시는 시간’이란 뜻입니다. 부드러운 기포가 있어 식전주로도 잘 어울립니다. 채끝 스테이크나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하면 더 좋습니다.
‘샴페인 자크송, 퀴베 넘버 744’(CSR)는 10만원대 와인으로 추천합니다. 3개의 그랑 크뤼 포도밭과 2개의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에서 생산한 포도만을 사용하는 넘버링 시리즈죠. 그만큼 자신 있다는 말인데, 2016년에 재배된 퀴베 품종을 67% 블렌딩했습니다. 자크송 샴페인은 매년 친환경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극소량의 이산화황만을 사용해 내추럴 샴페인의 선구자라 불리는데요. 청량하고 향긋한 내음이 미각을 자극합니다. 1~2년 시간이 지난 뒤 오픈한다면 그동안 더 깊어진 풍미를 즐길 수 있는데요. 캐비어나 우니 파스타, 도미 스테이크 등과 잘 어울립니다.
20만원대 이상 와인에는 ‘마운트 에덴, 피노 누아’(메종콩티와인)가 어울리겠군요. 영국의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의 웨딩 만찬에 오른 유일한 신대륙 프리미엄 피노 누아죠. 까다로운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은 부르고뉴 그랑 크뤼의 풍미를 가득 담은 왕실의 와인입니다. 마운트 에덴은 ‘캘리포니아 부티크 와인의 효시’라 불리는 곳이에요. 반세기 이상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며 월드 클래스 와이너리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잘 익은 붉은 과실 풍미와 향신료, 허브의 풍미가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부르고뉴 고가의 피노 누아와 견주어도 그 이상의 풍미를 보이는 섬세하고 풍부한 밸런스가 강점입니다. 소고기 타르타르, 참치 타다키,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와 어울리겠군요.
김성국 페어몬트 앰배서더 소믈리에
와인이 당기는 날, 7000원의 기적을 느껴보시죠
김성국 페어몬트 앰배서더 소믈리에
‘G7 레세르바 샤르도네’(신세계엘엔비·1만원대)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에요. 7000원의 기적이라 불리는 칠레산 와인이죠. 신세계엘엔비 창립과 동시에 열풍을 일으키며 연 100만 병 이상 판매된 G7 와인 중 상위 라인에 있는 샤르도네 품종 화이트 와인입니다. 시트러스와 열대과일, 스톤 프룻 등 다양한 과실미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산미 좋은 피니시가 어떠한 음식과도 어울리죠. 대형마트에서 장 보실 때 부담 없이 집어 냉장고에 두었다가 와인이 당기는 날 편하게 마시면 되는, 전혀 어렵지 않은 와인이에요. 대형마트에 있는 스시나 전, 튀김요리, 아삭한 채소 샐러드, 생선 등 육류를 제외한 모든 식재료와 어울립니다.
3만원대 와인은 이탈리아의 ‘캄파로 랑게 로소’(모멘텀와인컴퍼니) 어떠세요. 철저한 유기농법을 실천하며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주요 품종인 네비올로, 돌체토, 바르베라 품종을 블렌딩해 프룬 주스 같은 주시한 텍스처가 특징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추, 감초 등의 향신료향이 어우러져 한식 전채요리부터 향이 진한 불고기, 갈비찜까지 무난하게 어울립니다. 와인숍에 갔을 때 1만원대는 못 믿겠고, 선택이 쉽지 않다면 일단 잡으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G7 라세르바 샤르도네, 캄파로 랑게 로소, 조셉 펠프스 나파 밸리 소비뇽 블랑, 장 레옹 그랑 레세르바 비냐 라 스칼라, 에세조 그랑 크뤼 도멘 필립 파칼레
‘소비뇽 블랑, 조셉 펠프스’(나라셀라)가 5만원대 와인에 어울리겠군요. 만나기 힘들지만 눈에 보이면 무조건 일단 구매하시길 추천합니다. 2020년 빈티지는 제가 테이스팅해 본 미국의 화이트 와인 중 알싸한 감칠맛이 가장 도드라지더군요. 상한가 직전의 주식 같은 와인이에요. 쫄깃한 활어보다 숙성이 진행돼 육즙이 차오른 선어 회, 관자, 어패류, 킹크랩, 홍게, 대게 등의 갑각류와 썩 잘 어울립니다.
10만원대는 ‘장 레옹, 그랑 레세르바, 비냐 라 스칼라’(신동와인)가 있어요. 프랑스 유명 와이너리에서 포도나무를 수입해 생산한 스페인 최초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에요. 이 와이너리는 1979년 프랑스 와인 경연 대회에서 샤토 라투르를 제치고 우승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할리우드 배우이자 유명 레스토랑 라 스칼라의 공동 오너였던 장 레옹이 자국인 스페인에 설립한 와이너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 가격대의 와인이라면 품질은 물론이고 그에 부합하는 스토리도 강점이 되곤 하죠. 이 와인은 그 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습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운 스테이크 요리와 최상의 궁합을 자랑하는데, 유행하는 식으로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시어링한 후 로즈마리, 타임, 마늘 등의 향을 입힌다면 금상첨화죠.
마지막으로 20만원 이상은 ‘에세조, 그랑 크뤼, 도멘 필립 파칼레’(비티스)를 추천합니다. 자타공인 자연주의 양조자 필립 파칼레는 프리외레 로슈, 샤토 하야스, 도멘 르로아 등 최고의 와이너리에서 연수한 인물이죠. 로마네 콩티의 권유를 거절하고 자신의 와이너리를 설립해 최고급 와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자연 친화적인 농법을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 있게 선보이는 데 그의 와인 중 이 에세조는 고급 부르고뉴 와인이 보여주는 모든 향기를 조금씩 모아 담고 있어요. 시간과 숙성도, 서브 방식에 따라 그 배합을 조금씩 꺼내 놓는데, 마시고 난 뒤 입안에서 향이 지속되는 피니시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지난해 제가 즐겼던 와인 중 가장 최고점을 획득한 와인이기도 합니다. 정찬 메뉴보다 치즈·샤퀴테리 세트와 함께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