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길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길이다. 월정사 일주문(절의 입구임을 알리는 문)에서 시작하면 상원사까지 약 10㎞ 코스다. 걸음이 빠른 이라면 2시간 반, 주변 경치에 취하면 서너 시간쯤 걸린다. 결코 만만한 거리는 아닌데, 일단 월정사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 이어진 전나무 숲길을 걷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렇게 멋진 길이 아직 8~9㎞나 더 남았다고?’란 생각에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이들이 많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라 이름난 산책로는 말 그대로 고즈넉하다. 일주문부터 약 1㎞의 길가에 전나무숲이 하늘을 가리고 섰다. 피톤치드 맞으며 조용히 숨 고르기에 이만한 산책로가 없다. 그런 이유로 산을 찾는 이들은 이곳을 광릉 국립수목원, 변산반도 내소사와 함께 국내 3대 전나무숲으로 꼽는다. 사실 이 길이 남녀노소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게 된 건 TV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2016년 말에 방영된 ‘도깨비’가 크게 한몫했다. 주인공 공유가 느릿하게 내뱉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대사의 배경이 바로 월정사 전나무숲길이다.
길의 끝에 자리한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월정사 팔각구층 석탑, 목조문수 동자좌상 등의 문화재를 볼 수 있는데, 전쟁과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재건됐다. 월정사를 둘러 본 후 뒤로 난 산길로 들어서면 약 8~9㎞ 뒤에 상원사(上院寺)가 자리했다. 지금은 종각(鐘閣)만 남고 건물은 8·15 광복 후에 재건했다는데, 현존하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36호)이 남아 있는 사찰이다. 물론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진 차로 이동할 수 있다. 시간에 맞춰 버스도 다닌다. 그런데 왜 걸어 오르냐고? 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은 같지 않다. 흔히 선재길 2코스(월정사~상원사)라 불리는데, 걷는 내내 시원한 바람에 피톤치드와 오대천의 신선한 향이 실려 온몸을 휘감는다. 마치 어서 오라고 기운을 북돋는 것처럼….
월정사를 둘러본 후 범종이 있는 누각 방향으로 나오면 길 건너에 선재길 2코스가 시작되는 입구를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전나무숲길이 무장애 산책로라면 이 길은 나무 데크와 바위, 숲길로 구성된 진정한 트래킹 코스다. 당연히 그에 맡는 복장과 신발, 목을 축일 수 있는 음료수가 필요하다. 아니 꼭 있어야 한다. 오대천을 끼고 도는 오솔길은 때로 평탄하고 가파르다. 커다란 바위가 이어질 때면 이 길이 맞나 싶을 만큼 호흡이 가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경관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단풍 드는 가을에는 더욱 그렇다.
선재길은 5개(산림철길 구간부터 조선사고길, 거제수나무길, 화전민길, 왕의 길)의 테마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 제재소 터나 화전민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일제강점기 때 오대산의 산림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상원사까지 협궤레일이 놓였다는 이야기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숲길 위엔 슬픈 사연이 그득하다.
오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은 돌다리, 나무다리, 출렁다리 등 여러 개의 다리가 이채롭다. 그 중 섶다리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잎이 달린 잔가지)을 엮어 깔아 흙을 덮어 완성했다는데, 해마다 추수를 마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섶다리를 만들고 겨우내 강을 건넜다고 한다. 이 다리들이 차가 다니는 도로와 선재길을 이어준다. 상원사까지 오르는 게 부담스럽다면 다리를 건너 차가 다니는 도로로 돌아 나오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내 몸에 맡는 코스를 택하는 것, 그게 바로 트래킹을 제대로 즐기는 첫 번째 비결이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