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성애 씨(24)는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스마트폰 케이스를 선물했다. 25년 전 부모님 결혼사진에 자신의 사진을 살짝 얹어 완성한 이 케이스는 핸드메이드 플랫폼 아이디어스에 입점한 작가에게 의뢰해 주문 제작했다. 김 씨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에 의미를 뒀다”며 “케이스 재질부터 사진 조절까지 모두 주문이 가능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 부담 없이 선택했다”고 전했다.
# IT기업에 근무하는 전민선 씨(27)는 아침 출근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게 일종의 모닝 루틴이다. 매일 8시20분에 들러 커피를 챙겨 문을 나선다. 그런데 그가 주문하는 커피는 스타벅스의 메뉴에 없다. 전 씨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 휘핑이나 파우더를 추가할지 단맛 나는 칩을 올릴지, 어떤 시럽을 첨가할지 결정한다”며 “커스텀 주문이 가능해 아침부터 메뉴를 정하는 게 즐거운 통과의례”라고 소개했다.
이른바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맞춤제작 서비스)이 일상화된 시대. 단순한 기성품 구매를 넘어 ‘내가 직접, 나만을 위한’ 상품을 주문하거나 리폼(Reform)도 서슴지 않는 소비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에 주문제작 서비스가 강점인 국내 최대 핸드메이드 플랫폼 ‘아이디어스’는 2014년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 9년 만에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다.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의 김동환 대표는 “입점한 작가들이 직접 고객과 소통하고 제품 주문을 받아 작업에 들어간다”며 “판매량이 가장 많은 작가는 연간 약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MZ세대, 특히 Z세대의 주문이 다양한데 고객이 사용하다 닳거나 고장이 난 제품을 작가가 직접 AS까지 챙기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커스텀 주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이론상 메뉴 선택지를 모두 조합하면 라테에 한해 3880억 개의 메뉴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4분기 스타벅스의 매출을 살펴보면 전체 음료 판매량 중 커스텀 제조 음료의 비중이 60%나 됐다. 일부 커스텀 메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모객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 8월 스타벅스가 출시한 ‘시크릿 레시피7’은 전국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창작 음료 출품작 중 고객의 투표를 통해 7개 시도(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의 대표 음료 1종씩을 최종 선정해 구성했다. 일주일간 진행된 투표에 약 53만 명이 참 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선 MZ세대, 특히 Z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소비성향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과 케이스, 이어폰, 스마트워치, 기성복, 심지어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별걸 다 꾸미는 세대라고 ‘별다꾸’족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면 다이어리 꾸미기를 의미하는 ‘#다꾸’ 관련 게시물이 400여 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유튜브에선 노트북 컴퓨터를 꾸미는 ‘노꾸’를 비롯해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 ‘신꾸(신발 꾸미기)’ ‘방꾸(방 꾸미기)’ 등의 콘텐츠가 넘쳐난다.
신한카드의 빅데이터연구소 트렌디스는 MZ세대에 대해 “폰, 다이어리, 책상, 방 등 자기 물건과 공간을 꾸미는 데 적극적이고, 이들은 기성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고정된 틀을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맞게 커스터마이징한다”며 “이들은 기성품보다 가격이 높거나 배송이 지연되는 등 불편한 요소가 있어도 어느 정도 감수하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분석했다. 트렌디스는 “이러한 성향은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인스타그램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하거나 SNS에 콘텐츠를 올릴 때 직접 제작한 폰트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다양한 분야에서 이들을 겨냥한 맞춤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Z플립’ 시리즈는 ‘폰꾸’ 열풍의 주인공 중 하나다.
잠금화면, 외부액정, 스티커, 스트랩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 MZ세대의 호응이 높았다. 크록스도 별다꾸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브랜드다. 앞코 구멍에 ‘지비츠(슈즈 액세서리)’ 참을 끼워 넣을 수 있어 같은 크록스 신발이어도 전혀 다르게 꾸밀 수 있다. 네이버 쇼핑 앱에서 크록스 지비츠를 검색하면 10만여 개의 상품이 검색된다. 서브웨이 샌드위치처럼 토핑을 빼고 넣을 수 있는 김밥도 등장했다. 성수동의 ‘풀리김밥’에선 밥, 채소, 소스까지 하나하나 내가 원하는 재료로 김밥을 선택할 수 있다. 지난 11월 서울 대학로에 마련된 ‘김가네 팝업스토어’도 이러한 콘셉트를 활용했다.
장바구니에 선택한 재료를 들고 가면 나만의 김밥을 만들어주는 이 팝업은 한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의 핫스폿 중 한 곳이었다. BHC그룹이 선보인 미국 버거 브랜드 ‘슈퍼두퍼’에선 다양한 토핑을 추가해 나만의 햄버거를 즐길 수 있는 애드온(Add on) 옵션이 제공된다. 본아이에프에서 운영하는 ‘본죽’에서도 커스텀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죽의 입자부터 간 조절, 용량별 3가지 포장 방식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도미노피자는 국내 피자업계 최초로 맞춤형 주문 서비스 ‘마이 키친’을 선보였다. 원하는 대로 도우, 토핑, 소스 등을 활용한 피자를 만들고 주문까지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맞춤상품 주문을 넘어 기성품을 리폼해 단 하나뿐인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사례도 늘고 있다.
나이키 리유저블 쇼핑백 리폼도 그중 하나. 나이키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면 받을 수 있는 이 쇼핑백을 리폼해 자신만의 크로스백으로 만드는 방법이 한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 크로스백, 백팩, 지갑, 파우치 등 다양한 형태로 리폼한 상품이 온라인상에서 판매되자 특허청이 나서 “타인의 상표가 표시된 제품을 리폼 또는 업사이클링(Upcycling·새활용)해 판매하거나 유통할 경우 상표권 침해 또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폴로 등 글로벌 브랜드 의류도 리폼 품목이다. 바지를 치마로 만들거나 후드를 전혀 다른 옷으로 디자인한다. 기성품을 리폼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쇼핑몰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2024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를 발간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이하 코트라)는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온리유 비즈니스’라고 요약했다. 코트라는 서문을 통해 “단순히 맞춤형 상품으로도 부족하다”며 “이제 소비자들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상품을 원한다. 새로운 기술은 나노 단위로 분류되는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제품들의 탄생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커스텀 서비스는 패션·뷰티 업계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화장품 케이스부터 안에 들어갈 제품까지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조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피부 상태 진단 후 필요한 성분을 추가할 수 있는 에센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다양한 브랜드의 옷을 소비자 취향에 맞게 디자인하고, 3차원 아바타에게 입혀본 후 주문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코트라의 분석처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등 새로운 기술이 기반이 된 서비스 출시도 잰걸음 중이다. 특히 AI를 활용한 초개인화가 주목받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자체 온라인쇼핑몰 SSF샵은 2017년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한 후 유사 상품을 검색해주는 시각지능 엔진과 고객의 온라인 행동 기반 상품 추천 엔진을 탑재했다. 이를 통해 온·오프라인 고객 데이터 통합 분석, 하루 500만 개 이상 코디를 제안하는 ‘패션 큐레이션 엔진’ 등을 이식했다. LF는 LF몰에서 최적의 사이즈를 추천해주는 ‘마이 사이즈’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마이페이지에 개인 정보를 등록하면 내 정보와 유사한 다른 회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사이즈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가족이나 친구 등의 사이즈도 등록할 수 있어 선물할 때 용이하다.
화장품 ODM 전문기업 코스맥스는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인프라, AI 바탕 처방 시스템, 스마트팩토리 등을 구축해 ‘디지털 코스맥스’로 거듭나고 있다. 올 3월부터 도입된 맞춤형 화장품 플랫폼 ‘쓰리와우’는 소비자가 공식 웹사이트나 앱에서 답한 문진을 토대로 맞춤 제품을 내놓는 서비스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출시한 맞춤형 스킨케어 브랜드 ‘커스텀미’에 이어 올해 AI 맞춤형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톤워크’를 선보였다. 커스텀미는 1만8400개 레시피를 바탕으로 920개 성분을 합쳐 맞춤형 스킨케어 제품을 제안한다. 톤워크는 AI 기술을 토대로 각자 피부 색상에 맞는 총 600여 가지의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을 파악할 수 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