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명품 ‘티파니앤코(Tiffany&Co·이하 티파니)’는 티파니 블루라 불리는 옅은 초록색 케이스만으로도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는 브랜드다. ‘문 리버’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티파니 매장 앞에서 도넛을 입에 문 채 쇼윈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오드리 헵번(1962년 작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등장 신 이후 티파니는 사랑의 상징이 됐다.
1837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뉴욕에 문구류와 팬시제품을 다루는 가게를 열며 시작된 브랜드의 역사는 올해 186주년이 됐다. 당시 찰스 루이스 티파니는 미국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유럽의 화려한 주얼리와 장신구를 수입해 판매했고, 꽤 좋은 반응이 이어지자 직접 장신구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티파니는 1878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주얼리로 금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1889년 금상, 1900년에는 대상을 수상하며 보석의 대명사가 됐다.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는 커팅에서 광택까지 무려 21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각 과정마다 숙련된 보석 감정사들의 꼼꼼한 검수가 품질을 보증하며 브랜드의 신뢰를 이끌고 있다. 고객들은 1845년부터 출판된 ‘블루북(Blue Book)’을 통해 보석을 구매했다. 제품 카탈로그인 블루북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티파니는 설립 초기부터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 정찰제를 고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엔 지금도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이 부인 메리 토드 여사를 위해 ‘티파니 시드 펄 네클리스’를 구매한다. 티파니는 이때 단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878년 티파니는 1만8000달러의 거금을 주고 세계에서 가장 큰 옐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한다. 이 다이아몬드는 무려 1년 동안 다듬어지며 128.54캐럿의 ‘티파니 다이아몬드’로 가공된다. 절반 이상의 손실을 감수한 것이다. 이 상징적인 다이아몬드는 판매되지 않고 이후 세계박람회 등에 전시되며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까지 단 4명만 착용이 허락됐는데, 1957년 티파니가 주최하는 자선행사에서 당시 사교계의 여왕이던 메리 화이트하우스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레이디 가가, 티파니의 광고 캠페인 ‘어바웃 러브’에서 비욘세가 착용했다. 현재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뉴욕 5번가의 매장에서 영구 전시돼 방문객을 맞고 있다. 그리고 올 4월 28일 ‘랜드마크(The Landmark)’란 이름으로 탄생한 플래그십 매장의 재개장을 기념해 펜던트로 디자인됐다. 티파니의 전설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의 ‘버드(Bird)’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티파니는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으로 귀족들의 보석이 경매에 쏟아져 나오자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를 매입한다. 당시 경매에 나온 보석의 약 3분의 1을 사들인 뒤 티파니의 인장을 새겨 판매했는데, 이후 뉴욕의 언론들이 ‘다이아몬드의 왕’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이후 세계적인 보석상으로 떠오르며 티파니와 다이아몬드의 밀월이 시작된다. 1886년 티파니는 6개의 프롱(Prong·뾰족하게 나뉜 갈래)에 다이아몬드를 올린 ‘티파니 세팅’을 선보인다. 밴드와 다이아몬드를 분리한 세계 최초의 디자인으로 빛이 다이아몬드 아래로 통과해 광채를 극대화했다. 이후 티파니 세팅은 결혼반지의 대명사가 됐다.
환상적인 주얼리 디자인으로 유명한 쟌 슐럼버제는 다이아몬드의 젬스톤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작품을 디자인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쟌 슐럼버제와 티파니의 협업은 1956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스케치하고 그 상상력을 토대로 좀 더 세밀한 밑그림을 그려 주얼리 디자인을 완성했다. 생전에 쟌 슐럼버제는 “나는 각각의 작품이 마치 성장하고 변화하며 자유롭고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려고 노력한다”며 “그래서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역동성을 발견한다”고 디자인 철학을 밝힌 바 있다. ‘티파니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리본 로제트 네클리스(Ribbon Rosette Necklace)’도 그의 작품이다. 쟌 슐럼버제의 섬세하고 화려한 디자인은 수많은 유명인사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특히 고대 미술기법인 파일로니(Pailonne) 에나멜링 기법을 독자적으로 부활시켜 완성한 팔찌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즐겨 착용했다. 일명 ‘재키(Jackie) 팔찌’라 불리며 지금도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티파니는 최근 영화배우 애니아 테일러 조이와 함께한 새로운 하이주얼리 캠페인을 공개했다. 새로운 광고에서 애니아 테일러 조이는 ‘슐럼버제 바이 티파니’와 ‘블루북 2023: 아웃 오브 더 블루 컬렉션’을 착용했다.
티파니는 2021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 인수됐다. LVMH는 ‘루이비통’을 비롯해 ‘펜디’ ‘지방시’ ‘불가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7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린 세계 최대 명품 그룹으로 총 162억달러(주당 135달러)에 티파니를 인수했다. 단순히 인수 금액만 놓고 보면 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었다. 양측은 공동성명을 통해 “티파니와의 인수합병은 전 세계 보석 시장에서 LVMH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국 내 존재감을 확실히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LVMH와 티파니의 첫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0월 LVMH가 주당 120달러의 인수를 제안했지만 티파니 측에서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협상을 거절했다. 업계에선 “그럼에도 LVMH가 협상 테이블을 접지 않은 건 주얼리 분야로의 사업 확장 의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LVMH가 앞으로 잠재력이 높은 보석 부문을 강화하고 미국 시장 확대를 겨냥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그동안 전 세계 보석·시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기업은 ‘까르띠에’를 보유한 스위스의 ‘리치몬트(RICHEMONT)그룹’이었다. 명품, 뷰티, 유통 등 럭셔리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보유하고 있는 LVMH에 단 하나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보석이었다. LVMH는 올해 티파니를 통한 미국 시장 공략과 중국에서의 소매업 개편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내 기존 매장 이전과 확장 등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도 진행했다. 그런가 하면 국내 시장에선 티파니의 가격 인상이 다시금 화제였다. 티파니는 지난 9월 26일부터 국내 주요 제품의 가격을 5~10% 올렸다. 앞서 2월과 6월 가격 인상을 단행했는데, 한 차례 가격을 더 올리면서 올 들어서만 3번째 가격 인상을 기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봄과 가을을 결혼 성수기라고 하는데 그 시점을 앞두고 가격이 인상됐다”며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N차 가격 인상이라 불릴 만큼 한 해 여러번 가격 조정에 나서고 있는데, 특히 선물 수요가 많은 시기에 특수를 노리겠다는 계산이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티파니]